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 씩씩한 실패를 넘어 새로운 길을 만드는 모험
김수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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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목만으로 위로가 된다. 그래. 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2. 운전할 일이 많던 시절, 운전하며 SBS 라디오를 주로 듣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SBS 아나운서 라인에 대해 내적 친밀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원래 S 본부 아나운서 라인이 뛰어나서인지 몰라도 박선영, 배성재, 장예원 등 꽤 쟁쟁한 아나운서 선배들 사이에서도 김수민 아나운서는 촉망받는 막내였다. 이 선배들과의 티키타카에서 얻은 수망구라는 별명도, 입사 3년차에 그녀는 아마 장예원의 바통을 이어받아 S 본부의 얼굴이 될 후보 1순위였을 것이다. 때마침 그 잘나가던 선배들이 모두 프리를 선언하고 생각보다 빨리 메인이 되겠구나 싶었는데 그런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퇴사를 선언했다. 프리도 아니고 말 그대로 퇴사였다. 왜??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김수민 아나운서의 대답이자, 그녀가 추구하는 삶의 기록이다.


3.

위태롭다. 위태롭다. / 땅에 금을 긋고 / 그 안에서 종종걸음. /

가시나무여 가시나무여 / 내 가는 길 막지 마라. 내 발길 구불구불 / 내 발을 해치마라. /

산 나무는 스스로를 자르고 등불은 스스로를 태운다. /

계수나무를 먹을 수 있어 잘리고 , 옻나무는 쓸모 있어 베인다. / 

사람들 모두 '쓸모 있음의 쓸모'는 알고 있어도 '쓸모 없음의 쓸모'는 모르고 있구나.

-<미친 사람 접여의 노래> 중에서(<장자>, 218쪽 p. 108)


퇴사할 즈음 그녀가 읽었다는 장자의 한 구절이다. 우리는 모두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살아간다. 그런데 이 '쓸모'에 집착하다 보니 결국 우리는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서로를 나누게 되고, '쓸모 없는'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사사로운 것을 좇다 곧잘 나를 잃어버리곤 한다. 장자는 우리게 '쓸모 있는'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았다. 세상의 자질구레한 유용성에 목메지 말고 내게 맞는 시기를 기다리라고 한다. 

'쓸모 없음의 쓸모' 진짜 내가 세상에 필요한 곳을 찾아 가는 기다림의 시간. 

그녀는 이 시간을 되찾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무엇에도 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인생을 받아 들이고 사랑하겠다고 한다. '쓸모 없음의 쓸모' 그녀가 찾겠다는 그 시간이, 이 이야기가 나는 참 좋았다. 


4. 책은 퇴사를 즈음 하여 그녀가 겪은 일들, 생각한 것들 그리고 앞으로 그녀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해 잠잠하게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MZ라고 하고, 누군가는 치열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하고, 누군가는 또 다른 이유라고 했는데 그녀는 이런 세간의 이야기를 이렇게 쿨하게 넘긴다.


"학교로 돌아가 대졸자가 된 다음 대학원을 갈 생각이에요!" 라고 했더니 대학원생이 되려고 그만둔다는 말이 돌았고, 남자친구 있느냐는 질문에 "있어요!" 했더니 결혼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누군가는 이 모든 소문 중에 무엇이 진실이냐고 직접 묻기도 했는데 다 일정 부분 사실이라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니까 다 맞 고 다 틀린 말이 있다. 소문이 원래 다 그렇지, 뭐.(p.41)


소문이 다 그렇지 뭐. 맞다. 사실 내가 결정했다면 누군가의 수군거림은 다 '그렇지 뭐'하고 넘겨버리면 그만인 것들이다. 아마 그 수군거림도 받아들이는 내게 나 큰 일이지 그들 입장에서는 하룻저녁 술안주로 떠들어제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지난해 내 결혼식에 오고서도 명절에 만나 '결혼은 했느냐' 묻는  먼 친척의 사사로운 질문과 비슷한 부류 아닐까. 알면서도 늘 기분 나쁜 이 수군거림에서도 좀 자유로워져야 할 텐데.


5. 너무 늦은 나이라는 없다지만 사실 이미 난 틀려버린 나이일는지도 모르겠다. 사표를 확 던져버리진 못해도 내 삶에서, 나를 찾아가려는 노력을 다시 경주해야겠다는 작은 용기가 생겼다. 그러다 안되면 도망치지 뭐. 그래 도망치는 게 어때서. 의미 없는 삶을 견디고 버티는 것보다 도망치는 게 더 낫다. 맞다. 나도 예전에 이렇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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