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신장판 1~6 세트 - 전6권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랭크 허버트의 <듄> 속 세계에서 인류는 이미 오래전에 우주를 지배하는 종족이 되었다. 버틀레리안 지하드라 불리는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공지능 컴퓨터를 없애버린 전쟁이 끝나고, 인류는 고도로 발달된 정신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금기는 깨지라고 있는 법. 우주 곳곳에는 유전자 조작과 클론 기술을 이용해 우주의 질서에 관여하려는 세력들이 숨어있었다.



작품의 무대는 듄이라고 불리는 사막 행성 아라키스다. 전 우주적 스케일로 증식한 황제의 제국과 그를 섬기는 귀족들이 있는 세상이다.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두 귀족 가문, 하코넨과 아트레이데스가 듄에서 만나게 된다. 한 쪽은 상대를 듄에 끌어들여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 그리고 배후에는 황제가 있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듄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듄의 이야기는 레토 가문의 레토 아트레이데스와 레이디 제시카 사이에서 난 열다섯 살 소년 폴 아트레이데스로부터 시작된다.





투쟁을 멈출 수 없는 인류의 역사에 진정한 질서와 평화란 가능한가? 이것은 작중에서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고민하는 질문이다. 특히 종교와 권력이 서로 연관되어 있는지 다루는데, 1권의 핵심 인물인 폴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폴은 앞날을 볼 수 있는 퀴사츠 해더락 능력 덕에 듄의 미래를 보게 된다. 종교가 생기고 그것을 명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전쟁이 일어나는 끔찍한 미래였다. 폴은 어떻게 해서든 그 종교전쟁을 막고자 한다. 그러나 자신 혼자서는 그것을 막을 수 없으며, 심지어는 그 전쟁이 듄의 메시아인 자신의 이름 아래에 이뤄진다는 걸 깨닫고 무력감에 빠진다. 폴은 '선택받은 예언의 구세주'라는 클리셰적인 캐릭터처럼 등장하지만 곧 이러한 고뇌와 갈등을 거쳐 입체적인 캐릭터로 거듭난다.



설사 폴이 답을 얻는 데에 실패하더라도 그의 딸과 아들이 그 문제를 이어 받는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기점으로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사건의 연쇄작용은 개인의 의지로는 멈추기 힘들다. <듄>은 6권으로 나뉘어 5000년을 가로지르며 행성 듄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세력들의 행방을 다루는 거대한 서사시다.





듄에는 '스파이스'라 부르는 희귀한 자원이 있다. 스파이스는 미래를 엿보여주는 물질이기에 우주 항법에 꼭 필요하다. 오래 복용하면 노화도 방지한다. 그러나 스파이스는 치명적일 정도로 중독성이 강해서 복용을 중지하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듄 시리즈 초반에는 공기 중에서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스파이스가 풍부했다. 그래서 듄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그 행성을 떠날 수 없었다. 아트레이데스 가문도 듄에 도착한 후부터 듄에 발이 묶인 것이다. 가문의 우두머리를 잃은 아트레이데스가 중상모략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막 행성의 혹독한 환경은 물론, 토착민인 프레멘들과도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폴의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가 몸을 담고 있는 베네 게세리트 신자들은 종종 ‘마녀’라고 불리는데 경외와 두려움을 담은 표현이다. 그러나 실상 중세의 마녀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베네 게세리트는 냉철한 계산에 의해 움직이는 집단이다.



베네 게세리트는 우주의 역사에 개입해 조종하려는 세력 중 하나로 작중에는 이러한 세력들이 다수 등장한다. 누구나 의도를 숨기고 가면을 쓰고 계략 속에 또 다른 계략을 세운다. 작가는 이런 모략을 미리 드러내기도 하고, 의미심장하게 숨기기도 하면서 긴장감을 유지한다. 5000년은 거뜬히 가로지르는 방대한 역사와 시간의 흐름, 6권에 다다라 비로소 내막이 밝혀지기 시작하는 수수께끼 집단의 내부 사정 등 즐길 거리가 떨어지지 않는 이야기다.






<듄>은 행성의 생태학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이것은 1960년 대에 발표된 작품으로서는 드문 일이다. 작가 프랭크 허버트는 듄을 쓰기 약 15년 전에 오리건 주의 사구(sand dune)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된다. 사구를 바닷물처럼 흐르는 자연 개체로 인식하여 그것을 다스리는 법을 익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사막의 생태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대량의 수학적 데이터가 있으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 프랭크 허버트가 속한 세계의 사고방식이었다. 사막에 대한 자료 조사는 자연스럽게 생태학으로 이어졌다. "생태학은 행위의 결과에 대한 학문이다."라고 그가 읽은 200여 권의 관련 서적 중 하나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한다. 이 문장은 <듄>의 심장을 꿰뚫는 핵심이다.



"듄이라는 작품의 목적 중 하나는 생명체가 행성에 행하는 모든 행위의 결과를 상세하게 기술하는 데에 있다"라고 65년도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행성 듄은 이야기 내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작가는 이런 자연, 사회, 권력, 외교, 과학적 변화에 대응하는 듄에 사는 사람들과 듄에 묶인 세력들의 모습들을 빠짐없이 묘사하면서 주제 의식을 전달한다. 바로 이 점이 지금까지도 듄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듄의 세계관은 현실의 역사 위에 덧씌워졌다. 고대 이집트 문명이나, 히틀러 같은 실제 역사와 관련된 단어들이 언급되기도 한다. 이는 핵심 인물들이 인류 역사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선조의 기억을 체험하는 능력 덕분에 역사에는 반드시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방대한 배경지식과 정신문명, 기술적 허용에도 불구하고 듄의 평화는 신기루처럼 헛되어 보인다.



권력과 종교의 관계, 듄에서 나는 한정된 자원인 스파이스가 경제와 기술의 변화를 움직이고 행성의 환경을 어떻게 바꾸는가 등등. 작가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전부를 전달하는 매체로서 듄의 모든 것을 설계했다. 그러면서도 각 요소들은 작가의 꼭두각시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세계가 되었다. 이는 이야기를 쓰는 모든 이가 꿈꾸는 궁극의 결과물이다. 듄이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SF 소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이유는 작가가 듄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 세상의 구조, 기본 골조를 6권의 소설을 통해 철저하게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작가 사후에 다른 작가들에 의해 확장되어 온 듄 세계관은 이제 시간으로 치면 3만 4천 년 정도의 역사를 지니게 되었다.





듄 같은 장편 소설을 읽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일이다. 한번 그 세상에 발을 들여놓으면 듄은 독자의 정신을 사로잡는다. 듄은 스타워즈와 다른 후기작에 영향을 준 SF 계보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의 가능성을 발굴하고 유지하는 건 학계가 아닌 각 독자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듄>은 나와 공명하는 점이 많은 작품이었다. '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구나.'라는 감탄을 여러 번 했었다. 프랭크 허버트와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자신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적합한 그릇, 즉 작품을 찾아내 집필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도 이 작품은 언제나 내가 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을 이상과 귀감으로 남을 것 같다. 듄에서 보낸 지난 60일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스트 인 러브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흘러가는 시간에 관심이 있다면,

우리가 대화 없이 보내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고 싶다면 지금이 기회야.”

152쪽.







“나를 다시 보는 걸 그렇게 못 견디겠니?”

“그런 뜻이 아니라 아빠를 잃는다는 게 그만큼 힘든 일이었다는 뜻이에요. 아빠가 차지한 자리가 워낙 컸으니까. 엄마는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했지만, 다른 말은 생략하고 넘어갈게요. 나는 아빠의 자리가 그렇게 컸는지 몰랐어요.”

45쪽.




누군가의 부재로 인해 일어나는 온갖 감정 중에서 가장 큰 것은 그들이 남겨둔 빈자리를 마주하는 순간에 오는 사무치는 그리움이다.



작년엔 유독 죽음과 관련된 책들을 자주 보았다. 유품 정리사의 삶에 대한 책 제목도 두 세권 이상 기억에 남아있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장례식에 갈 일이 생기거나, 아니면 누군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가족의 죽음에 대한 가장 편안하고도 따뜻한 이야기는 마르크 레비 같은 작가가 써내는 종류일 것이다. 그의 데뷔 소설 《저스트 라이크 헤븐》은 동명의 로맨틱 코미디로 제작되었는데, 이 책 《고스트 인 러브》와 비슷한 점이 눈에 띈다. 먼저 죽은 사람이 산 자를 찾아온다는 점이 그렇다.



2000년대 초반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전성기 때 볼 수 있었던 영화 시나리오를 연상시키는 내용이다. 여기엔 우주 전쟁도, 악의 품은 귀신도, 고리타분한 정치도 나오지 않는다. 제목 그대로 사랑에 빠진 유령이 나온다.



5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와 사후세계의 영원이 걸린 부탁을 한다. 생전에 일생일대의 사랑이었던 여인의 장례식에 가서 유골함을 빼내고 아버지의 유골과 합쳐달라는 것. 아들은 아버지의 영혼이 보이는 것도 혼란스러운데 그 여인이 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에도 당황하는데… 과연 아버지의 부탁을 무사히 들어줄 수 있을까?




“정리해볼게요. 내가 모르는 아빠의 여자 장례식에 가서, 그 가족들 면전에서 화장한 유골을 훔치라는 거네요, 나더러.”

“정확해!”

75쪽.







이 작품은 로맨틱 코미디지만, 가장 기억에 남은 부분은 아버지와 아들의 사소한 다툼과 화해 장면이었다. “그러는 너는 내가 즐겁게 사는지, 내가 행복한지, 내가 괜찮은 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냐"며 아들 토마에게 아버지 레몽이 소리치는 장면이 있다. 당연하지만 가장 먼저 부모님 생각이 났다.



토마처럼 세상을 떠난 이를 다시 만나는 기회를 얻는 사람은 아마 없겠지만

현재라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주어진다. “길을 열어주고 끊임없이 돌아봐주는(278쪽)”, 때로 영감의 원천(이 책의 제목처럼 말이다)이기도 한 존재에게 충실할 기회가.




“그러는 너는 내가 즐겁게 사는지, 내가 행복한지, 내가 괜찮은 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니?”

“나는 어린애였잖아요!” 토마가 외쳤다.

“지금은 컸잖아. 그때 나는 사무치게 고독했어.” 아버지가 소리쳤다.

51쪽.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 삶과 책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편소설 하나를 잘 읽으려면 그 글을 따라가고, 행동하고, 느끼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사실상 그 글을 쓰는 것만 빼고 다 해야 한다. 읽기는 작가의 정신과 능동적으로 협력하는 작업이다. 모두가 빠져들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133쪽.






2014년 내셔널 북 파운데이션 수상식 날이었다. 영국의 판타지 작가 닐 게이먼이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글을 쓰는 작가"라며 공로상 수상자를 소개했다. 어슐러 르 귄이 단상 위에 등장했다. 청중은 숨을 죽이고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아마 적당히 감사의 말을 전하고 내려가겠지,라고 예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르 귄은 '적당히'나 '뻔한'이란 수식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작가였다.



당시 미국 출판업계 시장엔 잘 팔리는 아이디어를 섞어서 양산하라는 압박에 작가와 편집부가 흔들리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관계자 중에는 그런 방식을 주도하고 있는 주주와 기업가도 있었다. 그 앞에서 르 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본주의가 출판 예술의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방향을 경계하는 연설을 한 것이다.


그날 연설이 불러온 관심에 대해 르 귄은 이 책에 이렇게 적었다. "고무적이었다. 사람들은 정말로 책에 신경을 쓰고, 어떤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걱정한다는 사실이 말이다."(14쪽)



르 귄이 6개월간 준비한 6분이 채 안 되는 짧은 글인데 이 책에도 전문이 실려있다. 영상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르 귄은 종이책이 사라지는 '책의 죽음'보다, 자본주의에 의해 상상력이 이용당하는 것을 더 위협적으로 보았던 것 같다. 그 우려가 현실이 되어 저작권을 둘러싼 분쟁과 작가들의 창작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 소식이 간간이 들려온다.




우리는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고, 자본주의의 힘은 벗어날 수 없어 보이지만…… 그렇게 치면 왕들의 절대 권력도 그랬지요. 인간이 만들어 낸 권력이라면 인간이 저항하고 바꿀 수 있습니다. 그 저항과 변화는 예술에서 시작될 때가 많고, 그중에서도 우리의 예술, 말의 예술일 때가 많아요.

201쪽.






책에는 어슐러 르 귄이 잡지에 투고한 서평과 작가에 대한 글이 잔뜩 실려있다. 서평을 읽으면 낯선 책을 만날 수 있고, 익숙한 책도 다르게 보인다. 하물며 르 귄 같은 거장의 서평이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좋아하는 작가들, 인상 깊게 읽은 책들에 대한 르 귄의 해석과 감상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작품이 언급되면 그 책을 다시 읽어보거나 독서 일지를 찾아보기도 했다.



《이중 도시》는 국내 유일하게 출간된 차이나 미에빌의 작품이다. 물리적으로 겹쳐져있는 두 도시와 서로를 못 본 척해야 하는 사람들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관계가 나오는 탐정 소설이다. 작년 독서 일지를 찾아보니 '소재는 마음에 들었지만 갈수록 실망스러웠다'라고 적혀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 르 귄이 남긴 차이나 미에빌의 다른 두 작품에 대한 평가가 너무나 좋았다. 앰버시타운과 세 번의 폭발 순간이 국내에 출간될 날이 올까? 아니면 어떻게든 찾아서 읽어야 할까.



이미 읽은 책들이 있다면 르 귄의 글을 읽는 재미는 배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책들, 예를 들어 절판되었거나 국내 미출간된 책들이 있다면 기대에 부풀어 탐색을 시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어둠의 왼손》 40주년 서문에서 르 귄은 말했다. " 나는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에 변화가 일어나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그렇게 쓴 것은 당시의 변화 중 일부에 해당한다."



그녀가 내 나이였을 때 세상은 지금보다 더 병들어있었고 삐딱했다. 판타지와 SF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고, 여성 작가들도 소수였던 시대였다. 장르 문학이 리얼리즘 문학 보다 못하다고 평론가가 무시하고 학계가 고립시키던 시대였다. 글에서 느껴지는 고집, 강인함, 사려 깊음, 애정은 그런 시대의 변화와 함께한 80여 년간의 인생에서 나왔다.



버지니아 울프와 60, 70년대 여성 작가들이 어슐러 르 귄의 작가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르 귄은 판타지와 SF를 쓰는, 오래 쓰고 싶은 모두의 우상이다. 내게 어슐러 르 귄은 풍부한 감성과 세계관하면 떠오르는, 정치 · 사회 · 젠더 이슈에 관심이 많고, 무신론자이며, 고양이를 사랑하는 작가다. 무엇보다도 공명하는 작가다.



남겨둘 시간이 없다고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한번 어슐러 르 귄을 알게 되면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것이기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핍 윌리엄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이 단어들을 빼앗길 수 없었다.

그것들이 나를 설명해주기 때문이었다.

110쪽.








주인공 에즈미 니콜이 태어난 해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찬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단어를 제보하는 엽서를 보내면 사무실에서 그것들을 전부 검토하고 분류하면서 중요한 단어들을 골라냈다. 사전 책임 편집자 제임스 머리의 조수였던 아빠 덕분에 사무실에 마음껏 드나들 수 있었던 에즈미는 어느 날 책상 밑에 버려진 단어를 발견한다. 'Bondmaid'였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에즈미는 그것을 숨겨 집으로 가져온다. 여성 노예라는 뜻의 그 단어를 구출한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이 책은 에즈미가 어떻게 사전 편집자가 되는 꿈을 꾸게 되었는지, 사전 편찬 작업에서 누락된 단어를 수집하기 시작했는지를 그린다. 사전 편집자들, 시장의 하층민들, 조판공들,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젊은 군인 등 에즈미가 도중에 만나게 되는 다양한 인물을 통해 단어와 언어, 여성의 삶에 대한 고찰을 끌어낸다. 작가는 때로 질문이나 행동으로 계속해서 부딪히는 인물을 등장시켜 에즈미를 고민에 빠뜨리고, 성장시킨다. 나아가 독자에게도 생각거리를 제시한다.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까지 500여 쪽 내내 집중력이 흐려지는 일 없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훌륭하게 전달하는 그 힘이 놀라웠다. 이게 작가의 첫 장편이라니, 부러웠다. 특히 프롤로그를 잊을 수 없었다.



엄마 릴리의 이름이자 백합이라는 뜻의 단어가 영어사전 편찬 작업에서 누락된다. 아빠 해리가 그 단어를 벽난로 속으로 던져 버리는데, 다섯 살 에즈미는 그걸 구하려다가 손가락에 화상을 입고 만다. 그 화상 자국은 훗날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또래들에게 놀림거리가 되곤 한다. 이 장면은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이 지식을 추구했을 때 대가로 치러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에즈미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암시하는 장면이다.







이 책을 읽기 전만해도 나는 언어의 주인이란 그것을 쓰는 사람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만약 그 말이 주인을 대변하지 못하는 기능을 상실한 것이라면 어떨까? 그래도 그것이 진짜로 주인이 있는 언어가 되는 걸까?



에즈미가 열네 살에 생리를 시작했을 때 사전에 나오는 '월경혈'이나 '생리'의 용례를 아무리 찾고 읽어봐도 그 단어는 에즈미 본인이 느끼는 고통과 혼란을 답해주지 못한다.



조판공이었던 개러스는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전쟁터로 나간다. 그곳에서 '슬픔'과 '공포'라는 단어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낀다.



"내가 뭔가 쓸모 있는 일을 한다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슬픔'이라는 말을 조판해봤자 슬픔은 사라지지 않아요. 제드 어머니는 사전에 뭐가 적혀 있든 느껴지는 걸 느끼실 거예요."

"하지만 어쩌면 그분의 느낌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게 도울 수 있을 거예요."

내가 한 말이기는 했지만 나 자신도 설득이 안 됐다. 어떤 경험들에 대해 사전은 오직 거기 가까운 말들을 제공할 뿐이었다. '슬픔'도 그중 하나임을,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436쪽.


​​


머레이 가문의 시종이자 에즈미의 친구인 리지는 에즈미가 처음으로 구한 단어 'Bondmaid'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여자 노예라는 이 단어는 처음엔 리지라는 존재를 정의하며 속박하는 단어로 느껴진다. 이처럼 언어는 그 한계가 뚜렷한 발명물 혹은 현상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것에 매달려야 하는가?



이 외침에 답해 준 것은 리지였다. 에즈미가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에 들어갈 단어들을 수집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리지는 'Bondmaid'에 자신만의 정의를 내리며 단어의 한계성을 스스로 뛰어넘는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매달 일어나는데 당하는 사람이 이유를 모를 수 있지?

85쪽.



에즈미가 생리를 시작했을 때 고통의 이유를 모른다는 것에 경악을 했던 반면에 내 첫 생리는 담담하게 지나갔다. 왜?라던가 어떻게?라고 물을 생각도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 달마다 심해지는 통증과 함께 내 몸에 서서히 쌓여가는 것이 있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불신과 분노였다. 그래서인지 육체의 감각은 여성의 몸으로 태어난 나에겐 굉장히 중요한 것들이다.



육체란 사회가 나라는 사람의 정체를 파악하는 시작점이기에 정체성과도 맞물려있다. 고통이나 쾌락은 육체를 통해 전해지고 그런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 가치관이 된다.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누락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언어를 쓴다. 그러니까 언어와 사회와 육체는 내게 있어선 떼려야 뗄 수 없어 보이는데 이 책에서 그 역학관계를 보았다.



개인과 사회가 만들어낸 단어는 정의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그 단어에 고려되어야 할 가치가 결여되어 있을 때, 여성이 동등하게 존중받지 못한 사회에서 쓰는 단어와 표현이 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쟁이나 출산 같은 경험 앞에선 단어가 얼마나 무력한지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작가는 소외된 사람들의 잃어버린 단어들을 향한 에즈미의 열정, 역사를 개척하는 여성들의 용기, 타인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 또한 언어를 통해 전달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따스함에 얼마나 많이 구원받았는지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장면 소설, 향
김엄지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기의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144쪽.





나는 《겨울장면》의 표지를 좋아한다. 초현실적인 느낌도 나고 얼음 호수의 빙판 아래에 물에 잠긴 형상들을 관찰하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자아내는 내용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보고 있지만 보이지 않고, 듣고 있지만 들리지 않는, 찾고 있지만 찾지 않고, 살고 있지만 살아내지 못하는 붕 떠있는 현실이 빙판 아래의 풍경이다. "작가의 품을 떠난 작품은 각 독자 곁에서 새로운 의미를 혹은 삶을 부여받는다"라는 말이 떠올랐고, 나는 그 말에 따라 작품을 느껴지는 대로 받아들이면서 읽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겨울장면》은 현대인이 현실에 대해 느끼는 분열된 감정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여기엔 여백이 많다. 주인공 R의 관점으로 서술되지만 R과 독자 사이는 소원하다. R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R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정확히 설명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공중에 떠 있기는커녕 핸드폰, 이어폰, 충전기, 콘센트 구멍, 스위치, 센서, 뭐 그 밖에 더 많은 것들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는 게 아니라 현실에 너무 붙잡혀 있죠. 각자의 현실들이 판이하게 다를 뿐이겠지요. 이제는 개개인이 서로의 현실을 이해하기에는 서로 너무 멀죠. 그 거리가 발밑에 허공처럼 아득하게 느껴질 수는 있겠습니다. 한 공간에 모여 앉아 있다 해도요. 각자 고개 숙이고 집중하고 있는 영상물만 해도, 그 콘텐츠라는 것들이 요즘 얼마나 분야가 무궁무진합니까?

125쪽.







눈에 보이는 지문보다 그 사이 공간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중심으로 읽어야 하는 텍스트가 있다. 주인공과 서사가 뚜렷하게 정해진 장르물의 세계에서 살다가 이런 작품을 만났을 때 예전 같으면 길 잃은 아이처럼 울상을 지었을 것이다. 길잡이와 이정표는 별로 없고 혼자 소설 안을 표류하는 느낌. 지금의 나는 《겨울 장면》을 읽으며 그 점에 반가워했다.



뒷부분에 실린 작가의 에세이는 마치 겨울 장면의 평행 세계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드는 글이다. 에세이 안에서 작가가 완성한 원고를 "이 미친(151쪽)" 이라 부르는데 아마도 이 책의 원고가 아니었을까. 에세이가 먼저 쓰였는지 아니면 원고가 먼저 쓰였는지 혹은 두 세계가 동시에 서서히 만들어졌는지 모르는 일이다. 창작의 세계란 이렇게나 흥미롭다.



글을 쓸 때 또 다른 창이 필요하다.

글을 쓸 때 또 다른 창을 내다보는 또 다른 내 눈이 필요하고, 물론 또 다른 눈을 달고 있을 또 다른 나의 머리통이 필요하다.

155쪽.





작가정신 작정단 6기 자격으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