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도서관 기행 - 오래된 서가에 기대 앉아 시대의 지성과 호흡하다, 개정증보판
유종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언젠가, 영화 [올드보이]에 빗대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사방이 책으로만 둘러싸인 방이라면, 거기 갇혀서 군만두만 먹고 살아도 좋겠다"라고. 지금도 책을 좋아하지만, 지금보다 더욱 책에 빠져 살 때 했던 무서운(?) 상상이다. 현실에서 이렇게 '사방이 책으로만 둘러싸인 방'과 가장 가까운 형태를 한 곳은 어디일까? 서점이나 도서관, 출판사의 창고(?) 등이 그럴 것이고, 나를 포함한 보통 사람들에겐 이 중 도서관이 가장 친근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나는 도서관에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책은 다이어트 걱정이 없는 마음의 양식이니, 마음껏 욕심 부려도 좋다는 생각에 책을 읽지 않고 열람실 책상에 앉아 빼곡한 서가를 쳐다만 보고 있어도 흐뭇해진다.

 

 이러한 책과 도서관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새로 생기면 꼭 발도장을 찍거나, 다른 지역에 갔을 때도 기회가 있다면 도서관을 기웃거리고 온다. 도서관마다 분위기는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특화된 기능의 도서관이 아니고서야 사실 외양은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신문이나 어느 책의 한 귀퉁이에서 외국의 유서 깊은 웅장한 도서관을 보면 절로 눈길이 간다. 게다가 그 도서관을 둘러싼 역사와 의미를 새로이 알게 되는 재미도 쏠쏠하다. [세계 도서관 기행]도 그랬다. 저자가 국회도서관장이었던 시절 도서관과 관련한 국제 협력 업무의 일환으로 돌아봤던 세계 곳곳의 도서관에 대해 소개하는데, 일반 여행이 아닌 공식적인 방문이어서 실무자의 생생한 안내가 곁들여진 덕분에 어느 한부분도 놓칠 수 없는 요소로 가득 차있다. 완전히 전문적이라기엔 좀 뜨뜻미지근하기에, 전문적인 기행문과 일반적인 여행기의 어느 사이에 위치한 글이라 생각하고 책장을 열면 좋을 것 같다.

 

 [세계 도서관 기행]은 일반 여행기에서 도서관 소개를 하면 풍경이나 이용자들의 모습 등을 주로 그리는 것과 달리 그 도서관의 역사와 기능 등에 중점을 두었다. 도서관이 어떠한 이유로 지어져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지역사회에서 해당 도서관이 어떤 역할을 하며 이용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어떤 효과를 내는지 등에 대해 실무자의 설명을 빌어 이야기한다. 여기에 꽤 많은 사진 자료가 더해져 '눈호사' 또한 제대로 누릴 수 있다. 특히 매 도서관을 소개할 때마다 거의 빠지지 않는 사진은 빼곡한 서가로 가득 찬 열람실인데, 거대한 원형 돔 아래 둥그런 벽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책과 그 안에서 각자 일에 열심인 이용자들의 조화를 보고 있자면 도서관이 보여주는 매력에 빠져드는 것과 동시에 왠지 모르게 불끈 솟아오르는 공부에 대한 의지(?)가 느껴진다. 또한 그 도서관을 이용했던 역사적 명사들에 얽힌 이야기, 도서관과 그 앞에 설치된 동상 주인공과의 연관성 등 도서관에 대한 사연을 엮어서 이야기하는 스토리텔링식 소개도 눈길을 끈다.

 

 이런 식으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도서관, 독일의 베를린국립도서관, 프랑스의 미테랑국립도서관, 미국의 뉴욕공공도서관과 한국의 규장각 등 각각의 특색이 선연히 드러나는 도서관들을 글로써 여행하다 보면, 새삼 도서관의 고마움을 깨닫게 된다. 별 생각 없이 편리하게 이용했던 도서관의 시설과 수많은 책들, 특히 전자화되어 더욱 용이하게 접할 수 있게 된 자료들에 지식과 정보의 나눔을 위해 노력한 이들의 땀방울이 배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나니 이제는 도서관의 요소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세계 곳곳에서 웅장하거나 소박한 모습으로 인류의 지적 재산인 역사와 철학, 문학 등을 품고 있는 도서관을 따라 여행하고, 도서관의 매력을 멋지게 때로는 아름답게 표현한 다양한 수식을 보며 과연 도서관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얼마간을 곱씹은 끝에 '이거다' 싶었던 말은 '오래된 미래'다. 길게는 수천 년, 짧게는 수십 년 동안 인류가 쌓아 온 지적 소산의 집약체인 도서관은 곧 현재의 배움터인 동시에 인류가 미래로 지혜롭게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의 '오래된 미래'를 한 바퀴 여행하고 나니 책에 대한 애정은 더 깊어지고, 도서관을 찾는 발걸음에는 설렘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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