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집, 개정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 책을 읽는 데에 몰두하는 사람을 '책벌레'라 놀림조로 부르곤 하는데, 이보다 두루 쓰이진 않지만 비슷한 표현이 하나 있으니 바로 '간서치(看書癡)'다. 볼 간에 글 서, 어리석을 치 자를 써서 책만 보는 바보라 하는 뜻인데, 지나치게 책을 읽는 데만 열중하거나 책만 읽어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별명을 일찍이 얻어 지금까지 다독에 박학으로써 이름을 떨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책에 미친 바보>의 주인공 이덕무다.

 이덕무는 영정조시대의 문인이자 실학자였던 인물로, 책과 글에 관한 대단한 열정과 욕심으로 점철된 생을 살았다.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당대의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박제가, 박지원, 유득공 등과 교류하면서 책 한권이라도 더 읽고 글 한 줄이라도 더 쓰는데 몰두했다. 이 같은 다독(多讀) 다작(多作)을 통해 이덕무는 늘 자신의 행동을 뒤돌아보며 게으름을 배척하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일에 머뭇거리지 않았고, 책을 읽고 생각하면서 세상일의 이치를 깨닫는 일에 즐거움을 느꼈다. 이러한 노력이 바탕이 된 그의 박식한 면모와 곧은 기품을 알아 본 왕의 눈에 띄어 규장각에서 검서관으로 일하며 다양한 책의 정리와 편찬에 공을 바치기도 했다.

 <책에 미친 바보>는 이같이 평생 책과 글을 벗하며 세상을 노닌 이덕무의 소품문(수필)과 짧은 편지글, 평론 등을 추려 국역한 책이다. 서얼 출신으로 마땅한 생계 수단도 없어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고, 없는 형편에 부모님과 아우들을 거둘 걱정에 근심하면서도 그는 한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갖가지 책을 구비해놓고 한가롭게 읽을 형편은 못 되는지라 열심히 책을 빌려 읽는 가운데, 친구에게 따로 편지를 써, 혹 남에게 책을 빌려 읽거든 혼자 읽지 말고 자신에게도 순서를 달라는 부탁을 할 정도였다. 또한 글을 읽고 문장의 뜻을 깨닫기 전에는 쉽게 책장을 넘기지 않았고, 심지어 몇 번이고 필사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책에 관해선 완벽주의자에 가까웠던 그는 또한 고증주의를 표방하여, 책을 통해 어떤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앞뒤를 꼼꼼히 따져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의 책에 대한 태도를 보면 그가 마냥 딱딱하고 어려운 글만 썼을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주로 척독(짧은 편지글)에서 그 점이 드러나는데, 친구에게 자신의 매우 개인적인 근황에 대해 재치 있게 풀어내거나, 마치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단 음식에 대해 투정하는 듯한 이야기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듯 담백한 뜻을 담은 책임에도 아쉬움이 있었다. 더욱 깊이 읽기를 원하는 사람을 위한 주석이나 이덕무 연보,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책을 잘 정리하고 국역하기 전의 원문을 부록으로 백여페이지에 달해 구성한 점은 좋았다. 하지만 본문 중 문장부호가 제대로 정렬되지 않아 어지러운 느낌을 주는 편집이 아쉬웠다. 가장 아쉬운 것은 약간 거친 듯한 문장이었다. 글을 옮기는 과정에서 좀 더 물 흐르는 듯한 느낌으로 윤문했다면, 당대의 문장가였던 이덕무의 유려한 필치가 더욱 잘 드러났을 것 같다.

 혹자는 말한다. 책 이외에도 세상엔 다양한 문화와 지식 등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수단이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굳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골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을 시간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문화를 향유하는 그 시간도 책 읽는 시간만큼이나 값질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생각도 비단 책 자체에만 국한되지 않은 이덕무의 이야기를 읽으면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싶다. 세월의 흐름에도 바스러지지 않고 나름의 진리를 스스로의 몸에 퇴적하며 손에서 손으로, 머리에서 머리로 전해지는 것이 책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이유는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 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 (51쪽)」라는 이덕무의 말처럼, 이러한 책을 읽고 글을 가까이 함으로써 평생의 배움을 바탕으로 현명하게 생각하고 깨달을 줄 아는 삶을 살 수 있는 것 아닐까. 책만큼 사람의 정신을 맑고 건강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생각해 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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