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년 남한산성 항전일기 - 왕은 숨고 백성은 피 흘리다
나만갑 지음, 서동인 옮김 / 주류성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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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 남한산성 항전일지]

 

역사는 반복되는가

인류에게 희망은 있는가

왜 인간의 기억력은 이리도 허약한가 라는 질문부터 떠오르는 게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느끼는 감정이다.

 

시간적으로 살펴보자. 임진왜란이 끝난 시기가 1598년도이다. 병자호란은 1636년도이다. 두 전쟁의 기간은 고작 38년이다. 임진왜란이 끝난지 겨우 38년만에 다시 병자호란이 일어난 것이다.

 

임진왜란전에 충분히 침략전쟁에 대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파벌 내지 기득권 싸움에 매달린 권력자들에 의하여 결국에는 백성들의 재산과 목숨이 망가지게 되었다. 임진왜란후에 전쟁당사국들인 중국과 일본은 기존의 왕조 혹은 권력이 교체되어 나가는 과정이었는데 조선만 같은 왕조가 계속 유지되었다. 중국은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서 도쿠가와 막부로 정권이 교체되어 나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어떻게 조선이 계속 같은 권력이 지속될 수 있었는가는 별개의 논의로 하자. 국제정세의 변화속에서 한 나라가 어떻게 유지되고 번영을 누릴지에 대하여는 조선말의 상황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니까.

 

다만 임진왜란이 끝난지 40년도 안되서 참혹한 전쟁을 다시 불러일으키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봐야 한다. 나는 조선 정치체제 혹은 이데올로기에서 유교(라기 보다는 성리학)가 갖는 허황된 명분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본다.

 

명나라가 쇠퇴하고 청나가가 세를 크게 불리는 과정에서 당대의 권력자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유교 혹은 성리학으로 대표되는 공맹의 사상이라는 조선의 이데올로기는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넘어왔고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라는 명분을 겉으로 내세운다. 그에 따라 청나라와 명나라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치는 광해군을 몰라내는 인조반정이 일어난다. 수구 기득권세력은 공맹의 사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나라와 백성의 이익보다는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한다. 명분을 앞세우지만 그 속은 철저하게 이익을 챙기는 권력의 모습을 나는 이 책에서 보았다. 김상헌과 최명길의 주장 어디에서도 나라와 백성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인다. 철저하게 왕조와 기득권의 유지외에는 다른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신들이 비록 죽는다 해도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그러나 다만 전하께서 기어코 명나라에 죄를 지으셨으니 신들이 실로 부끄럽습니다.”

 

이는 척화파인 오달제와 윤집이 인조에게 직접 한 말이다. 백성의 안위와 나라의 위태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야기 아닌가. 명분은 300년동안 지켜왔던 명나라와의 예속관계와 임진왜란에서 국가위기를 구해준 나라로서의 명나라를 이야기하지만, 왕조와 권력이외에 백성들을 위하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구해준 은혜가 있다하여 지금의 나라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 당연한 명분일까. 38년전에 겪은 것을 다시는 겪지 말아야 할것임에도 그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는 권력자들의 모습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겹쳐보는 것이 이상한 일일까.

 

한국전쟁에서 나라를 구해주었다고 하여도 지금 현재의 나라를 위태롭게 만드는 상황에서도 명분과 의리에 매달리는 것이 병자호란을 대하는 위정자들의 태도와 무엇이 차이가 날까.

 

결국 언제나 국제정세속에서 국익을 우선으로 백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위정자와 그를 따르는 나라만이 번영과 안정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이 책에서 얻는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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