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천도교 역사의 재조명
황선희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어떤 책인가?

서양의 학문과 종교를 서학이라는 명칭으로 배척하던 조선 시대에, 그에 대응하는 민족적 종교를 창시하여 학문적으로 발전시켰으니, 이를 두고 동학이라고 한다. 동학은 천도교로 이어져 우리 민족의 고유 사상으로 자리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다양한 종교의 보급과 철학적이고 학문적인 분야에서도 뒤져 그 대중성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 책은 동학과 천도교를 학술적으로 풀어서 그 역사를 짚어보고 있다. 대학교재로나 쓰일법한 어렵고 딱딱한 문장에다 원문을 인용할 때의 많은 한자어와 의미를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다양한 용어와 문장은 읽는 이를 부담스럽게 하여 학술적인 책으로 평가하게 하지만, 실상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역사에 있어서 동학과 천도교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시대에는 다양한 사상의 등장으로 대중화에 실패한 결과를 가져왔지만 동학이란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흔적을 남겼고 그간의 세월을 거치며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왔는지를 되짚어봄으로써 지금과 같은 가치관의 부재 시대에 다시 한번 그 의미를 되새기자는 것이다. 이 정도라면, 어려운 내용을 가볍게 훑으며 대략 살펴보는 정도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 아닐까?

2. 그 내용을 보자면

오랜만에 제법 어려운 책을 집어 들었다. 과연 이 책을 어떻게 읽고 어떤 식으로 평가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던 끝에, 학교에서 과제로 받는 요약 보고서의 개념으로 접근해 보았다. 즉 어려운 내용이 죽 이어지지만 실은 그 어려운 내용 모두를 이해하고 기억할 필요는 없이 이 책이 강조하는 핵심만을 추려보자는 것이다. 물론 그 접근법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접근한 방법은 큰 구성을 파악하고 세부적 내용의 요약을 발췌하여 정리한 후에, 간단하게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교훈만 뽑아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하 내용은 이 책에서 간추린 부분별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자세한 내용과 동학의 학술적 원문이나 선인들의 말을 살펴보려면 당연히 책을 직접 읽어볼 것을 권한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동학의 사상에 대한 연구와 민족 운동으로서의 의미를 정리한다. 앞의 것이 1부이고 민족 운동에 관한 내용이 2부를 차지한다. 먼저, 사상의 연구 동향을 짚어본다. 동학 사상 연구는 "종교와 철학 분야"에서 주로 이루어졌는데 종교계의 문제 의식은, 신앙 차원에서 포교를 위한 교리 이해를 돕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사상적 관점에서 동학사상의 본질과 성격을 규명하는 것이다. 한편 철학계에서는 인본주의 측면에서 동학사상 전반을 취급하였다.

1980년대 이전 연구를 보자면, 최제우의 후천개벽사상이 가장 대표적이다. 보국안민과 광제창생의 이상사회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 사상을 니체의 허무주의와 비교한 것은 흥미로운데, 니체는 현실적인 참여를 포기한 반면 최제우는 현실 참여를 의도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를 통해 갑오동학농민운동을 현실적 실천 행위로 규정하여 당위성을 강조했다.

90년대 역사철학적 시각에서 사회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이 시기 김창수의 견해가 특징적이다. "동학사상은 후천개벽이라는 반봉건적 사상을 기반으로 하므로 종교로 출발했지만 성격은 현실 부정적이고 변혁과 저항의 논리를 지닌 혁명 원리로 발전할 가능성을 지녔으며 동학은 민중적 기반 위에 선 민족 종교이고 그 사상은 근대 민족사상"이라고 정의했다. 즉 90년대는 최제우, 최시형의 동학사상을 분석하거나 개괄적으로 성격을 규정하는 경향이 있고 동학 사상을 다른 학문에 다양하게 적용하려는 것이 대부분이고 천도교의 인내천사상 연구는 미흡했다. 저자는 이에 관한 연구를 이제부터 본격화할 차례라고 이야기한다.

동학사상 연구의 두 가지 문제점은, 동학사상과 동학운동에 관한 상보적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과 대부분의 연구가 최제우 최시형의 동학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천도교 시기의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제우는 서학에 대한 반감이 높고 위기 의식이 고조된 당시의 시대에 서학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동학에 의한 정신 무장이라는 생각에 따라 동학을 창도했다.  그는 서학을 천운과 결부시켜 비판하는 동시에 원시유학의 권위에 도전하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탈중화(중국을 벗어나는 사상)를 표방하였다. 유교의 사회적 기능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지적하고, 봉건 사회의 타락한 윤리를 부정하고 새로운 사회 질서를 요구하며 인간성의 회복과 이상향의 건설을 추구한 혁명적인 역사관을 제시했으며, 이 동학사상의 핵심이 바로 후천개벽사상이다. 유교 이념에 따른 신분 차별을 부정하고 명분에만 급급한 조선의 성리학을 비판하여 형식적인 유교 이념을 거부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군자는 지벌이나 문장에 의한 것이아니라 도덕적 심성에 달렸다고 했다. 누구나 한울님을 내면화하여 도성덕립이 가능하며 인간 평등도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시천주사상은 천주인 한울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이는 서학에서 말하는 창조주로서의 천주와는 다른 개념이다. 천주의 존재를 믿되 강령 체험을 필수 조건으로 한 것도 특징적이다.

최시형은 시천주를 재해석하여 인간을 천주에 하듯 섬기라는 사인여천사상을 발전시켰다. 만물과 만사에 천주가 내재하므로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천주가 되므로 인간을 존중하고 자연을 애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세속적 일상을 시천주 행위로 격상시켜 민중이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양반의 권위에 도전한 것이다.

또한, 동학의 민족종교로서의 의미를 정리하고 있다. 7가지 계율을 정하여 지킬 것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군자로서의 인격 도야를 위한 수심정기의 일상적 윤리로서 천주에 대하여 지극한 성경의 실천을 중시한 것이다. "후천개벽을 위해서 물리적 힘으로 현실 개혁에 임하는 것보다 현실 극복의 정신적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전통 사상에 익숙한 조선사회에서 동학을 민족 민중종교로 토착화하고자 종교 의식 외에 유불선 사상을 일부 인정하면서 포용하는 입장에서 교리의 정리가 필요하였다. 유교의 인의예지와 삼강오륜의 실천을 계승하고 불교의 윤회사상을 계승하며 도교의 무위자연사상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손병희는 동학 교리의 철학적 재구성에 착수하였고 이 때부터 근대사상으로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권위주의를 부정하고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동시에 화민속성에 의한 문명개화를 이룩하는 일에 동학교단이 주체가 될 것을 역설했다. 본격적으로 대중의 의식 개혁운동을 전개하여 현실의 모순과 정치 부패를 일소하고 신앙의 자유를 추구하며 자주 자강을 이룩하는 개화 운동에 목표를 두었다. 1902년 삼전론과 명리전을 발표하면서 개화운동을 전개, 그러나 아쉽게도 동학을 국교화하여 정치사상으로 하자는 주장 역시 전근대적 정치의식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보인다.

1920년대에 이돈화가 주축이 되어 서구의 근대철학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진화론에 의거하여 인내천을 논증하는 작업이 시작되었고 천도교의 교리를 현대사상화하는 과정에서 인내천신앙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 천도교의 현실 신비주의적 종교성을 부각시키고 인내천을 후천개벽의 사회사상으로 공론화하여 청년지식층을 천도교로 유인 흡수하였다. 이는 천도교에서 삼대 개벽사상으로 정리되는데, 기성사회의 도덕적 제도적 부조리에 저항하는 반항도덕과 현실 상황을 분석 비판하는 사람성자연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정신개벽을 이루는 것이다. 민족개벽은 민족의 생활 정도와 문화를 향상 발전시키는 것이 목적이지만 궁극적으로 세계일가주의를 지향한다. 현실적으로 사회는 개인에 대하여 책임을 다하기보다는 오히려 역기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런  사회적 기현상은 사회가 권력으로 개인을 지배한 데서 야기된 상황이므로 사회적 모순을 비판하고 사회개벽을 제창하자는 것이다.

2부에서는 민족운동으로서의 동학과 천도교의 의미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주로 1890년대 갑오동학농민운동의 성격 문제를 놓고 논쟁을 계속해왔으나 동학은 종교로 출발하여 종교 철학 및 사회사상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정치성이 강화되었으므로 이를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논리다.

갑오동학농민운동을 동학으로부터 분리하고자 하는 논쟁이 계속되어 왔으나(네 가지 논점) 아직까지 결론은 내리지 못한 상태인데, 저자는 이에 대해 종교로서의 동학이 민족운동에 참여함으로써 사회적 기능을 할 수 있었던 근거와 농민운동 당시의 동학의 사회사상화 단계를 파악하고 사상적 관점에서 해답을 찾고자 했다. 보국안민 광제창생을 위해 후천개벽운동을 추진했고 교리를 철학적으로 체계화하였으며 농민운동 과정에서 근대 민족운동의 성격을 찾을 수 있으므로 민족주의 운동의 일환에서 동학측이 주도한 정치 사회운동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1910년대 3.1운동에 대해 천도교의 의미를 정리하고 있다. 천도교는 민족적 자주정신과 사회개혁사상을 함축하고 있었으므로 민족종교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천도교측에서는 민중시위운동을 계획하고 있었고 1918년말에 구체화되기 시작하여 3대원칙을 통해 평화적 독립운동 방법을 채택한다. 당시 교주의 권위, 조직, 자금 조성에서 유리했던 천도교가 3.1운동을 위한 민족연합전선의 결성을 주도했는데, 3.1운동의 정신은 비폭력적 민중시위운동으로 천도교의 후천개벽이라는 종교적입장과 교정일치의 사회적 입장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3. 의미를 되새기다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3.1 운동의 정신과 동학의 정신은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학계에서는 다른 시각으로도 볼 수 있겠으나 적어도 이 책에서 주장하는 논리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통해 동학이 끊임없이 민족사상과 근대화에 기여를 해왔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고대로부터 중세를 거쳐 디지털 현대에 이르기까지 철학과 종교, 사상의 발전은 계속되어 왔다. 어떤 것이 진리요 진실이고 어떤 것이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인지를 부정하기에 앞서, 적어도 우리 민족의 종교와 사상, 역사의 근간을 이루어온 동학에 대한 재조명은 민족 정신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마치 다양한 가치관에 묻혀 잊혀져가는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이처럼 새로운 시각에서 동학을 되짚어보는 시간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