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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흔히 남녀의 우정은 영원할 수 없다고 한다. 결국 언젠가는 어느 한쪽의 마음이 사랑으로 기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도 아니면 이미 처음부터 누군가는 호감 이상의 감정을 애써 우정이라 포장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 이라고.
'나'에게 재희는 어떤 의미였을까. 스무살 그들은 처음 만났다. 우연히 이태원에서 남자와 키스하는 모습을 들킨 '나'는 '돈은 없어도 의리는 있는' 재희와 비밀을 공유하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재희였기에, 그리고 '나'였기에 두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스스럼 없이 서로의 애인 얘기나 시시때때로 변하는 감정, 그밖에 내밀한 속내를 나누며 그들은 끈끈한 우정을 이어간다. 학과 남학우들의 악의적인 소문에도 아랑곳없이 때로는 가족보다 더 따뜻하게 서로를 챙긴다. 각자의 개성과 자존감을 지지하며 제멋대로, 자유롭게, 마음껏.
이들의 관계는 때로 재희 남친의 오해를 사서 갈등을 빚기도 하고 재희의 결혼식에서조차 대학 동기들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의 집을 아무렇잖게 오가다 결국 재희의 오피
세상에 온전히 뿌리 내리기엔 어딘지 불안하기만한 20대. 나 역시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와 재희의 우정이 애틋하게 다가왔다. 재희의 결혼식이 끝나고 재희와 함께한 지난 날을 떠올리는 나의 회상은 그래서 유난히 시리고 쓸쓸했다. 물론 재희가 결혼했다고해서 이들의 우정이 끝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허구라 하기엔 너무나 핍진해서 세상 어딘가에 반드시 재희가 있을 것 같다. 그 시절 '나'에게 재희가 있었고 재희에게 '나'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 그리고 나에게는 누가 있었을까. 가만히 흘러간 이름들을 추억해 본다.
서평 이벤트를 통해 <재희>를 만났다. 2019 제 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통해 <우럭한점우주의맛>을 접한 뒤였다. 두 작품 다 새 소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다른 두 편이 궁금해서 책을 구매하기로 한다. 박상영의 소설은 때로 자조적이지만 능청스럽고 넉살이 좋은데다 경쾌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그 이면에 굉장히 여리디 여린 진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