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옛 이야기 속 여우들은 간을 못 먹어 안달일까. 2022년 바캉스 프로젝트로 기획된 『여우 요괴』가 킨더랜드에서 새롭게 출간되었다. 바캉스 프로젝트 버전 『여우 요괴』와 비교해 보니 판형이 커졌고 표지 그림이 달라졌다. 속표지도 따로 있다. 천년 동안 도력을 닦은 여우요괴가 인간의 간 999개를 먹고 앞으로 1개만 더 먹으면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설정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대부분 옛 이야기에서 여우의 소원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책 속 여우요괴는 어떤 소원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만나는 것들마다 죄다 간을 빼먹는 바람에 ‘귀신이고 호랑이고 나발이고’ 모두 여우요괴를 두려워한다. 여우요괴가 못 먹어본 건 오직 사람의 간뿐. 그래서 전국 팔도에서 간 크기로 소문난 김생원을 찾아간다. 간 큰 인간답게 김생원은 여우요괴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그림책의 장르는 놀랍게도 ‘호러 로맨스’. 김생원도 만만찮은 인간이 아니라 여우요괴에게 심지어 ‘밀당’을 한다. 지금 간을 먹어도 좋으나 자신의 간을 더 크게 해줄 수 있다고 몇 가지 제안을 한 것이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공포물에서 갑자기 꽃분홍 로맨스로 장르가 전환되는 장면에서는 알 수 없는 혼란을 느끼게 된다. 여우요괴도 그랬을 것이다. 스윗한 김생원의 매력을 어떻게 거부할까. 『100만 번 산 고양이』에서 수많은 삶을 반복한 고양이가 사랑하는 흰 고양이를 잃고 영영 환생하지 않은 것처럼 여우요괴도 그토록 바라던 마지막 소원을 이룬다. 그리고 간절한 그 마지막 소원 덕분에 자신의 존재를 완성한다(훌쩍). 우리는 누구도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라면, 누군가를 만나 서로에게 기대는 것이라면, 지금 당장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