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에라자드 -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없지
나히드 카제미 지음, 김지은 옮김 / 모래알(키다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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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아내를 죽이는 무도한 왕이 있었다. 더 이상 왕에게 시집보낼 젊은 여성이 없자 늙은 신하의 딸 셰에라자드가 왕비가 되기를 자청한다. 첫날밤 셰에라자드는 왕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목숨을 부지한다. 오늘날로 치면 ‘절단 신공’의 스킬로 막 재미있어 지려는 대목에서 멈춘 것이다. 하루, 이틀이 지나 천일이 될 때까지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에게 천일야화라 잘 알려진 『아라비안나이트』는 바로 셰에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이다.

소설가 정용준은 산문집 『소설 만세』에서 스토리보다도 이야기를 전달하는 ‘텔러’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하며 뛰어난 스토리텔러의 예로 셰에레자드를 언급한다. 이야기의 힘은 강렬하다. 셰에라자드는 담대한 용기로 승부를 걸어 자신뿐 아니라 수많은 여성들의 목숨을 구했다. 왕의 폭력을 멈추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이야기였다. 그림책 『셰에라자드』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셰에라자드를 재해석해 ‘읽고 쓸 줄 알기 훨씬 전부터 이야기와 사랑에 빠진’ 어린이로 소개한다.

셰에라자드에게 이야기는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였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언제 어디서나 이야기가 있는 곳을 찾아냈다. 어느 날 셰에라자드는 공원에서 슬픈 얼굴을 하고 있던 아이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내와 아이를 잃은 뒤 폭정을 일으킨 왕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그 이야기를 듣기 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 셰에라자드가 왕을 만나러 간 것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셰에라자드는 왕에게 ‘세계에서 가장 화가 많이 난 어느 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노여워하던 왕은 차츰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자기 자신을 객관화한다. 누군가는 이야기를 허황된 것으로 치부하거나 가벼운 흥밋거리로 소모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때로 한 사람의 삶과 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야기를 향유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성찰하고 타인의 삶과 세상에 대한 시야를 확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실로 돌아온 셰에라자드는 왕을 만난 일 또한 한 편의 이야기가 될 거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언젠가 멋진 작가가 될 셰에라자드의 모습이 기대된다. 이 그림책을 보는 동안 이야기의 본질과 매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 삶에서 이야기는 어떤 의미였는지 돌아보게 되었고.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먼 미래에도 이야기의 힘이 유효할 거라고 믿는다.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없지’라는 이 그림책의 부제처럼 이야기는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끝없이 이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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