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를 물질이자 구조로 보는 것과 인간의 극심한 고통을 줄이는 일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마찬가지 이유로 인간의 극심한 고통은 그저 하나의 교육 수단이 된다. 해부학 교수들은 이런 관계의 한쪽 극단에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시신과의 유대감을 잃지 않는다. 해부 실습 초기에 나는 비장 동맥을 쉽게 찾기 위해 기증자의 횡격막을 길고 빠르게 갈랐는데, 우리를 감독하던 교수는 내 행동을 보고 깜짝 놀라며 크게 화를 냈다. 내가 중요한 조직을 망가뜨렸거나, 핵심적인 개념을 잘못 이해했거나, 이후의 해부 작업에 지장을 주어서가 아니라, 너무 무신경한 태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별다른 말없이 자신의 슬픔을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냈고, 그 표정은 그 어떤 강의보다도 내게 의학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