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욕망을 본능과 연결시킨다면 대단히 제한적이 되지만 충동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면 만족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왜냐하면 원초적 만족의 기억들은 실제 기억이 아니라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신화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어떤 설명할 수 없는 만족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절대로 되풀이 될 수가 없다 보니 끝없이 만족에 도달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석학적 순환이 요구된다. 전체를 아우르는 끝으로서의 죽음에 대해서 앞서 생각하고 이해할 때 지금 현재 삶의 의미가 이해되고, 현재의 부분의 의미가 이해될 때에야 궁극적으로 인생 전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죽음은 필수적이다. 죽음이 없다면 삶의 의미는 확정되지 않고 이해될 수도 없다. 죽음을 회피하고 모르는 체하려는 현대인들은 그래서 일상이 허전하고 불안하며, 의미의 상실 속으로 던져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렇게나 찍은 아이들 사진에서 옛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나에게 뒤집어씌워진 본질을 하나씩 벗어내고 어떠한 규정과 억압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면, 나에게는 단지 세 가지만이 남게 된다. 그것은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규정되지 않고 절대적으로 자유로우며 실존하는 존재다. 사르트르는 이에 대해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저주는 부정적인 의미라기보다는 인간의 숙명에 대한 강조적 표현이라고 하겠다.
마음을 머무르는 법.
대부분의 불자들이 이렇게 어마어마한 금광엔 관심이 없고 절에 와서 잡석이나 줍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불법을 공부함에 더 큰 욕심을 내길 권합니다. 마음을 머무르는 법, 금광을 찾아야 하지요. 이런 이치, 이런 소중한 보석을 찾는 것이 우리가 불법을 공부하는 참다운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