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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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인>을 처음 만난 건 영화였다.

 토니륭과 제인 마치가 주연했던. 당시 19세의 제인 마치는 소설 속 '소녀'에 딱 어울리는 그런 소녀였다. 토니륭 또한 부유한 중국 남자이면서 너무나 여린 속을 지닌  '그'는 걸맞게 퇴폐적이어서 영화의 몰입도를 높였다. 영화를 본 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두 사람이 밀애를 나눴던 그 공간은 눈에 선하다. 소설에서 그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도시의 소음이 매우 시끄러웠다. 기억 속에 떠오르는 그 소리는, 너무 크게 들려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영화 소리 같다.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방은 어두웠고,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은 끊임없이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 속에 둘러싸여 있었고, 도시 안에 파묻혀 있었고, 도시라는 기차 안에 실려 있었다. 창문에는 유리창이 없었고, 발과 블라인드만이 내려뜨려져 있었다. 햇빛은 받아 보도를 오가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발 위에 어른거렸다. 늘 엄청난 사람들의 무리였다. 블라인드 때문에 그 그림자들에는 줄무늬가 나 있었다. 나막신들의 딸그락거리는 소리들이 머릿속을 때리듯 울렸고, 목소리들은 날카로웠다. 중국어는 소리를 지르며 말하는 언어여서 나는 마치 사막의 언어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이상야릇한 언어였다."

 

 그렇게 소녀는 열다섯 살 반이었을 때, 메콩 강을 건너는 나룻배에서 그를 만나 그 곳으로 갔다. 일 년 반이 지나고 난 뒤의 소녀를 두고 작가는 말한다.


"나의 삶은 아주 일찍부터 너무 늦어 버렸다. 열여덟 살에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늦어 버렸다. 열여덟 살과 스물다섯 살 사이에 내 얼굴은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변해갔다. 열여덟 살에 나는 늙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는지 어떤지는 알지 못하고, 결코 물어본 적도 없다. 다만 가장 싱그러운 젊은 날을, 생애에서 가장 축복 받은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이따금 충격적인 시간들이 후려치곤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나에게 얘기해 주었던 것처럼 여겨질 뿐이다."


 소녀는 남자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여자들을 두고 말한다.

 "욕망을 외부에서 끌어 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욕망은 그것을 충동질한 여자의 몸 안에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욕망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첫눈에 벌써 욕망이 솟아나든지 아니면 결코 욕망이란 존재하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성욕과 직결된 즉각적인 지성이거나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게, 나는 '경험'하기 이전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녀는 그를 만나는 순간부터 알고 있다. 결코 그와 결혼을 한다거나 오래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어느 식당에 앉아 남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 깨달음을 다시 느낀다.

 "갑자기 고통이 느껴진다. 아주 경미한 것이다. 그것은 그가 나에게 입힌 생생하고 신선한 상처에서 느껴지는, 빗나간 심장의 고동이다. 지금 나에게 말하고 있는 이 사람, 오늘 오후 내게 즐거움을 안겨 주었던 이 사람이 나에게 입힌 상처."
 
 마르그리트 뒤라스, 본명 마르그맅리트 도나디외는 70세에 이 소설을 발표했다. 소설 뿐만 아니라 희곡, 시나리오 등을 썼고,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연인>을 두고 자전적 요소가 많이 담겨 있어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비평도 있었다고 한다.
  "나는 한 번도 자전적인 것을 쓴 적은 없지만, 내 작품은 대부분 나 자신에 대한 것들입니다." 고 레이먼드 카버가 말한 것처럼 모든 창작물은 결국 창작자의 삶의 결과물일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예전에 샀던 책을 못찾아 2011년에 다시 사두고 끝까지 읽지 못했다. 책의 마지막 뒷표지를 덮고 내다본 창밖 5월의 연초록이 내 몸속으로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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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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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대를 걸쳐 이십 대까지 사랑한 - '사랑'이었다 - 작가는 헤세와 도스토옙스키, 까뮈 등이었다. 까뮈의 스승이기도 한 장그르니에의 <섬>이 서문은 까뮈의 글로 시작한다. 알제에서 스무 살에 처음 이 책을 읽고 받은 충격을 까뮈는 이렇게 말한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읽고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고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환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이십 대,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도 그 낯모르는 젊은 사람이었다.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다시 읽은 책이다. 이십 대에 이 책을 읽고 기억하는 구절은 없다. 하지만 아주 강렬하게 남아 있다. 이 책을 읽은 이후 '섬'이라는 말을 듣거나 글자만 봐도 숨이 멎고 발걸음이 멎었다. 여행중이었던 어느 낯선 도시의 거리 간판 이름 <섬>을 발견하고는 버스에서 내려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걸 기억한다.

 기차 여행길에 다시 읽으면서, 글의 시작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저마다의 일생에서,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

 

 8개의 꼭지글 중에 처음의 '공의 매혹'이 좋았다.

 서문 중 옮긴 이 김화영은 이렇게 썼다.

 

 "겨울 숲속의 나무들처럼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서서 이따금씩만 바람소리를 떠나보내고 그러고는 다시 고요해지는 단정한 문장들, 그 문장들이 끝나면 문득 어둠이나 무(無), 그리고 무에서 또 하나의 겨울 나무 같은 문장이 가만히 일어선다. 그런 글 속에 분명하고 단정하게 찍힌 구두점."

 

 '또 하나의 겨울 나무 같은 문장'을 '가만히 일어서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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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 인생의 계단을 오를 때마다 힘이 되어 준 열 명의 그녀들
이화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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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던 버지니아 울프의 두꺼운 책들을 책꽂이에 꽂아버렸는데, 다시 얇은 책으로 두 권을 사면서 오래 전에 읽었던 이 책을 꺼내 다시 훑어보았다. 저자인 이화경은 "인생의 계단을 오를 때마다 힘이 되어준 열 명의 그녀들"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그녀들은 제인 오스틴, 조르주 상드, 실비라 플라스, 프랑수아즈 사강, 버지니아 울프, 잉케보르크 바하만, 로자룩셈부르크,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시몬 드 보부아르이다.

 책은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로 시작된다. 그리고 '머리말'에서 "...친구는 우리가 선택한 가족이라던가."라고 말한다.

 밑줄이 가장 많이 그어져 있는 부분은 한나 아렌트에 대한 글이었다.

 

"...말하기의 무능함, 생각의 무능함,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함(판단의 무능함)이 결합되면 전체주의와 홀로코스트가 부활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녀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통해 사유가 멀마나 즁요한지를, 인간이라면 목숨 걸고 사유해야한다는 진실을 담은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철학자이자 정치사상가인 그녀에게 "사회적 불복종은 지적 성취의 필수요건"이었기 때문이다...평전 작가 김상웅은 "지식인知識人의 글자에는 화살 시자와 창 과자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은 지식인은 진정한 의미의 지식인이 아니다"라고 했다. 철학자로 불리는 대신 정치사상가로 호명받기를 원했던 한나 아렌트. 국외자인 유대인이자 세계 내에 존재하는 아웃사이더이며, 정치적 참여를 가장 치열하게 했던 무국적자 한나 아렌트는 "세계는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전진한다"라는 괴테의 말을 철저히 실천했던 정치사상가이자 진정한 지식인이었다."

 

 진정한 '앎'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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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철학자의 돌 1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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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음이 공포로 다가온 순간이 있었다.

 어느 날, 연고를 바르기 전에 연고에 적힌 깨알보다 작은 '주의사항'을 읽어보려는데,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악몽을 꿀 때, 아무리 발버둥치고 소리를 질러도 꼼짝 할 수 없는 것처럼. 세상에 그런 순간이 올 것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순간이었다. 다초점 안경을 쓰고도 선명하게 보이지가 않았다. 특히 시력이 좋았던 나로서는 불가해한 일이었다.

 이 책의 저자 장 아메리는 그 '늙어감'에 대해 아주 냉정하게 쓰고 있다. '4판 서문'에는 앞서 책을 출간했을 때, "고작 쉰다섯 살의 이 '젊은 인간 J.A.가 늙어감이, 나이를 먹는다는 일이 뭔지 대체 알기는 하겠어? 그런데도 무슨 이야기를 늘어놓겠다는 거야?"하고 '정말 고령의 신사'가 엄혹하게 비판했던 일을 두고 말한다.

 

 "나는 텍스트를 다시 읽으면서 유쾌한 노인의 이 말이 심히 유감스럽지만 틀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내가 옳았다. 아, 이런! 나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경험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말했던 것을 강조했으면 강조했지 축소하고픈 생각은 조금도 없다. 모든 게 내가 예견했던 것보다 더욱 나빠졌을 따름이다. 몸의 늙어감, 문화적 늙어감, 음울한 표정의 사내가 다가오는 게 매일 더욱더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일 등등. 그 음울한 사내는 내 곁을 스쳐지나가며 마치 저 라이문트 발렌틴처럼 기괴할 정도로 음산하게 나를 부르곤 했다. "친구, 어서 오게...""

 

 그러니까 저자는 이 책을 1968년에 출판하고, 그 후 10년이 지난 1977년에 이렇게 쓰고 있다. 그리고 다음 해 그는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다.

 

 "처음부터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살아있음과 덧음이 흐르는 시간...일단 반항을 시작한 사람은 다른 이들과 어울릴 수 없다."(P.51)

 

 "이로써 생각함이라는 위험지대를 벗어나 습관이라는 편안함으로 후퇴하는 것일까?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마치 시간을 잘 아는 양 행동하는 사람은 그렇다고 대답하리라."(P.52)

 

 "몸은 가지지 않아야 완전히 소유한다. 다시 말해서 느껴지지 않는 몸이 건강하다."(P53)

 

 "곧 내가 '나 아닌 나'가 되는 깊은 충격이 노화의 진실이 아닐까. 젊은 시절에는 당연하다고만 여겼던 게 돌연 낯설기만 한 것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소름끼침은, 우리 인간의 근본 정서 가운데 일부인 소름끼침은 거울 앞에서 물러나 평소 일상에 뒤덮여 하루 일과를 감당하느라 잊힐 따름이다...그럼 돌연 나는 나이면서 내가 아니라는 것, 곧 '나 아닌 나'가 평소 익숙한 나를 문제 삼으면서 충격과 경악이 고개를 든다."(P. 61)

 

 "늙어감의 기본 상태라는 게 있다면 이 상태는 비참함과 불행함이라는 단어로 어느 정도 압축해서 표현할 수 있으리라. 비참하다는 말은 어떤 고통이 치유될 수 없을 것이라는 어렴풋함 의식이 가져다 주는 답답함이다. 그리고 불행함이란, 그것을 전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실존의 공간을 채우는 어떤 '확신'이다.

 

 2년 전, 이 책을 읽고 수첩에 옮겨 둔 글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결코 상품이 될 수 없는 '늙음'과 '죽음'이 아닌가. 외면하지 않고 직면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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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 사랑과 자유를 찾아가는 유쾌한 사유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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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주 작가의 책을 읽기 시작하게 만든 책이었다. 아니다. <장자 :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이 먼저였는지도 모른다. 암튼 이 책은 철학의 문학적 접근에 끌려 읽었다. 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 말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진짜 집과 암호에 대한 생각을 잊게 되었습니다. 철학자 아도르노의 이야기를 음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주저 <부정변증법>에 등장하는 구절이었을 겁니다. "대상을 인식한다는 것은 자물쇠들을 여는 것과 같고, 그 열림은 하나의 개별적인 열쇠나 번호가 아니라 어떤 번호들의 배열에 의해 이루어진다."라는 취지의 생각이었지요."

 "막상 살아가다 보면 어떤 문도 열지 못하는 나약한 상태라는 것을 종종 깨닫게 됩니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암호를 스스로 만들어내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알려주는 암호로는 우리가 들어가고 싶은 문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보다 먼저 암호를 다양하게 배열해서 문을 열려고 했던 작가들의 분투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습니다."

 

 바로 지금이 그런 때 중의 한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는 이즘이.

 

 책은 '이성복과 라캉'에서 시작하여 '허연과 까뮈'까지 열 네 개로 이루어져 있다. '프롤로그'에서 라흐마니노프 연주회에 갔었던 일화를 들려준다.

 

 "...집중은 자신을 떠나서 관심을 가진 무엇인가로 건너가는 상태니까 말입니다. 영어로 관심이나 흥미를 뜻하는 'interest'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사실 이 단어는 '사이'를 뜻하는 라틴어 '인테르inter'와 '존재함'을 뜻하는 '에쎄esse'로 이루어진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이에 존재함'으로써 'interest'는 나와 타자 사이에 존재하게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집중은 바로 내가 나와 어떤 타자 사이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집중의 상태는 완전히 나로 머물러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타자로 건너가서도 안 됩니다."

 

 "인문학은 다른 학문과는 달리 '고유명사'의 학문입니다.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들은 자기만의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노래하거나 논증합니다. 그들의 시와 철학에는 유사성은 있지만 공통점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김수영의 시와 신동엽의 시, 그리고 바흐친의 철학과 바르트의 철학이 유사하지만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시인과 철학자는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데 성공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들의 궁극의 유사성은 바로 그들이 자기만의 제스처와 스타일을 완성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블로그로부터 시작해서 여기 서재까지 오면서 생각했던 일도 그렇다. 수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글들, 과연 나는 어떤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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