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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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호회 모임에서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을 봤다. 영상 감독 일을 직업으로 하는 그는 자신의 애장품 중 하나라며 같이 보기를 원했고, 덕분에 처음 그 영화를 봤다. 영화라는 장르로서 줄거리는 크게 의미 없는, 시종일관 음악이 흐르는 영화였다. 그러나 아주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세상의 모든 아침’ OST를 들을 때마다 전율했다. 드디어 세상의 모든 아침을 책으로 읽게 되었다.

파스칼 기냐르. 1948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베르뇌유쉬르아브르(외르)에서 태어나 1969, 말 더듬는 존재로 문단에 데뷔했다. 나만의 우스운 습관 중에 하나는 어떤 인물 이야기를 접할 때, 내 나이와 비교해보는 것이다. 17살이 차이, 현재 80. 현존하는 작가 중에 가장 많이 연구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한다. 뒤쪽 연표는 꽤 자세하게 작가의 생을 보여준다. 대대로 언어학자와 음악가를 배출한 집안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5개 국어를 습득하고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면서 자랐다니,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리라. 옮긴이는 류재화로 현재 고려대학교에 출강하고 있으며, 파리 3대학 소르본누벨에서 파스칼 키야르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소개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연표 앞쪽에 <옮긴이의 말>이 이 책을 읽는 재미를 한층 더해 주었다.

  요즘 소설을 읽으면, 독자의 입장에서 읽긴 하지만, 작가적 입장에서 글의 구성이나 문체 등을 살펴보게 된다. 이 책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소설로서의 줄거리나 재미를 추구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다만 실존했던 한 음악인의 삶을 소설적 장치를 빌어 보여주고 있다. 영화가 그 영상이 주는 미학적 감동이 컸다면, 소설은 작가의 비올라 다 감바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이 일품이다. 글을 쓰고자 하는 입장에서 매혹적인 글쓰기의 모범이 돼 주었다. 장편소설치고는 짧다. 얇은 한권의 소설책이어서 가뿐하게 읽어낼 수 있었던 책속의 몇몇 구절을 다시 음미해본다.

11 그의 제자 가운데 하나인 콤르 블랑은 그가 인간 목소리의 모든 굴곡을 모방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가령 젊은 여인의 탄식에서부터 중년 남성의 오열까지. 앙리 드 나바르의 전장에서의 외침부터 그림 그리는 데 열중하는 아이들의 부드러운 숨소리까지.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거친 헐떡임부터, 기도에 몰입한 한 남자의 장식음 거의 없는, 무음에 가까운 저음까지.

15 그는 언어에 대한 애착이 거의 없었다. (여기서 공감이 되면서, 작가의 이런 표현에 웃음이 나왔다.)

74-75(마랭 마레가 열정적인 삶을 산다는 스승 생트 콜롱브한테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 왜 연주하는 작품을 출판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 그게 무슨 말인가? 나는 작곡을 하지 않네. 난 절대 악보를 쓰지 않아. 내가 가끔 하나의 이름과 기쁨을 추억하며 지어내는 것은 물, 물풀, , 살아 있는 작은 송충이 같은 헌물일세.”

(마레가 다시 묻는다.)

선생님의 물풀, 송충이 안에 음악이 어디 있는데요?”

활을 켤 때 내가 찢는 것은 살아 있는 내 심장 조각이네. 내가 하는 건 어떤 공휴일도 없이 그저 내 할 일을 하는 거네. 그렇게 내 운명을 완성하는 거지.”

118 (생트 콜롱브가 홀로 오두막에서 중얼거릴 때, 오두막 벽 그늘에 숨어있던 마레가 듣고 스승과 제자가 마지막 연주를 하는 장면이 시작되기 전에 나누는 대화다.)

콜롱브 : , 누구요? 고요한 이 밤에 한숨을 쉬는 건가?

마레 : 궁을 도망쳐서 음악을 찾는 이요.

콜롱브 : 음악에서 무엇을 찾으시오?

마레 ; 회한과 눈물을 찾습니다.

……

마레 : 선생님, 마지막 수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콜롱브 : 내가 첫 수업을 해도 되겠소?

……그것은 어려운 일일세. 음악은 말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저 거기 있는 거라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반드시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지.

……

마레 : 그럼 침묵입니까?

콜롱브 : 그건 언어의 반대말에 불과하네.

……

콜롱브 : 자네 자신을 태우게나.

언어가 버린 자들이 물 마시는 곳. 아이들의 그림자. 갖바치의 망치질. 유아기 이전의 상태. 호흡없이 있었을 때. 빛이 없었을 때.

 

<옮긴이의 말>

 

 (이 책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파스칼 키냐르에 대해 옮긴이인 류재화는 키냐르가 현재진행형의 상실에 매료당해 있다고 했다. 덧붙여서 쓴 글이 인상적이다.)

127 음악이 시간이라는 길게 누워 흐르는 강을 껴안고 함께 가는 것이라면, 언어는 강물 위로 튀어 오르는 잉어처럼 시간을 이따금 박차고 나온다. 음악이 현재진행형의 상실이라면, 언어는 완료형의 상실이다. 음악이 진행 중인 사랑이라면, 언어는 끝나버린 사랑이다. 인간의 언어에 늘 되말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과 오기가 배여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아침≫ 소설은 첫 문장부터 상실로 시작한다. “1650년 봄, 생트 콜롤브 부인이 죽었다.” 생트 콜롱브는 비올라 다 감바의 현을, 저 낮은 제7현을 뜯는다. 망자를 불러내기 위해서는 산 자의 온몸이 숙여져야 한다. 양다리 사이에 악기를 놓고 온몸을 악기에 밀착하는 비올라 다 감바의 고안은 분리된 두 개체의 완전한 합일을 위한 몸짓이다. 그것은 사랑하기의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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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시나리오를 작가인 키냐르 자신이 직접 각색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레의 비올라 다 감바의 연주를 이 영화의 음악 감독이자 연주자인 조르디 사발이 직접 연주했다고도. 젊은 마레는 늙은 마레를 연기한 제라르 드빠르디유의 아들 기욤 드빠르디유인데,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잠시 멍해졌다. 갈래턱이 인상적인 제라르 드빠르디유는 프랑스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었는데, 마레역을 부자가 같이 연기했다니,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

  그리고 고악기인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할 수 있었던 인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루소가 있었다는 사실도 재미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참 대단한 인물임에는 틀림없구나 하는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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