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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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각종 문학지와 신문 등에 발표했던 작품이 실려 있다. <그리움을 위하여><그 남자네 집><마흔아홉 살><후남아, 밥 먹어라><거저나 마찬가지><촛불 밝힌 식탁><대범한 밥상><친절한 복희씨><그래도 해피 엔드> 단편소설 아홉 편이다.

 이 책 이전에 작가의 <못 가 본 길이 더 아름답다>가 읽은 유일한 책이다. 이십 대 도스토옙스키와 헤르만 헤세, 카프카, 까뮈 등 해외 소설가들에게는 열광했지만 국내 소설가들은 대표작 정도 읽었다. 그 중 박완서 작가의 소설들은 왜 그리 내게 오는 데 오래 걸렸는지 모를 일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원낙 유명해서 있는 줄도 모르고 구입하는 바람에 집에 두 권이나 있어 여러 번 손에 들었으나 끝내 다 읽지 못한 채다.  김민철의 <꽃으로 박완서를 읽다>에서 인용문으로 나오는 <그 남자네 집> 부분에서 집에 있던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를 찾아내 마침 그 소설이 있어서 먼저 읽다가 그만 반했다. 박완서의 소설로는 처음 읽은 셈이다.

 주인공이 몇 살인지는 분명하게 나오지 않지만 아파트에 살다가 땅집으로 이사 간 후배집을 찾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의 처녀 적 마지막 집이 있던 곳도 같은 동네였고, 그 동네 있던 그 남자네 집의 남자와 주인공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재와 과거가 자연스럽게 뒤섞여 오히려 절묘한 긴장감을 줘 역시 대가답구나 싶었다.

 "안감대를 남쪽으로 남쪽으로 한없이 따라가면 개천이 어디론가 숨었다가 또 나타나곤 하면서 살곶이 다리와 살곶이 벌판이 나온다."는 앞부분의 묘사가 일단 좋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남자는 궁기를 가장 참을 수 없어했다. 궁기를 좋아할 사람은 없지만 그는 좀 유별나서 특정 냄새를 못 참는 것처럼 즉각 생리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그의 턱 운동은 철저하고 집중적이었다. 그러나 하나도 게걸스럽지는 않았다."

 "화음이 잘 맞는 웃음소리였다."

 "딱 고 길이에 분량을 맞춘 것처럼, 그 거리는 얼마 안 됐다. 따라서 그의 이야기도 간결하게 요약된 것이었다."

 "나는 마치 길 가다 강풍을 만나 치마가 활짝 부풀어오른 계집에처럼 붕 떠오르고 싶은 갈망과 얼른 치마를 다독거리며 땅바닥에 주저앉고 싶은 수치심을 동시에 느꼈다."

 "나미 쳐다보고 부러워하지 않는 비단옷과 보석이 무의미하듯이 남이 샘 내지 않은 애인은 있으나마나 하지 않을까. 그가 멋있어 보일수록 나도 예뻐지고 싶었다. 나는 내 몸에 물이 오르는 걸 느꼈다."

 "그 암울하고 극빈하던 흉흉한 전시를 견디게 한 것은 내핍도 원한도 이념도 아닌고 사치였다. 시였다."

 "서양 여자의 속눈썹을 연상시키는 정교하고 섬세한 솔이었다 부드러울 것도 같고 빳빳할 것도 같은 그 솔에 닿으면 전류가 통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음반을 어루만지고 싶어서 그러는지 먼지를 닦으려고 그러는지 분간이 안 되는 그의 골똘하고도 탐미적인 손놀림 때문일 것이다."

 "향기 짙은 흰 라일락을 비롯해서 보라빛 아이리스, 불꽃 같은 영산홍, 간드러지게 요염한 유도화, 홍등가의 등불 같은 석류꽃, 숨가쁜 치자꽃, 그런 것들이 불온한 열정 - 화냥기처럼 걷잡을 수 없이 분출했다."

 등의 문장들에 밑줄을 긋다가 

 "그런 꽃들을 분출시킨 참을 수 없는 힘은 남아돌아 주춧돌과 문짝까지 흔들어대는 듯 오래된 조선 기와집이 표류하는 배처럼 출렁였다."

는 문장에서 잠시 책을 덮고 박완서의 다른 책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소설 막바지에 주인공의 결혼에 대한 결정을 TV 내용으로 싹 정리해준다.

 "...거기서 보여준 건 새들이 짝을 구하는 방법이었는데, 주로 수컷이 노래로 몸짓으로 깃털로 암컷의 환심을 사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니까 그저 그렇고,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자기가 지어놓은 집으로 암컷의 환심을 사려는 새였다. 그런 새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수컷은 청청한 잎이 달린 단단한 가지를 물어다가 견고하고 네모난 집을 짓고, 드나들 수 있는 홍예문도 내고, 빨갛고 노란 꽃가지를 물어다가 실내 장식까지 하는 것이었다. 암놈은 요기조기 집 구경을 하고 나서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집을 골라잡기만 하면 짝짓기가 이루어진다.

 그래, 그때 난 새대가리였구나."

 마지막 문장에서 풉,하고 웃고 말았다.


 그 다음으로 <그리움을 위하여>에서 주인공의 사촌 동생의 입말에서, 진짜 끝내준다 싶었다. 옥탑방에서 물에 적신 옷을 입고 더위를 견뎌내던 사촌 동생이 사량도에서 겪었던 일을 들려주는 내용 6쪽이나 내쳐 이어진다. 얼마 안 가 또 사촌 동생의 얘기를 들려주는데, 마치 밤중 잠자리에서 여동생의 얘기를 실제로 듣고 있는 듯했다.


 책 뒤쪽 김병익의 해설도 좋았다. 박완서의 활자화된 소설을 가장 먼저 본 독자였을 거라며 시작해서 박완서의 작가와 작품 세계에 대해 해설하고 있다. 그 중에 

 "나는 여기서 비로소 우리에게도 박완서에 의해 '노년문학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내가 말하는 노년문학은 그냥 작가가 노년이라는 것, 혹은 단순히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노인이라는 것 이상의 것으로, 노인이기에 가능한 원숙한 세계 인식, 삶에 대한 중후한 감수성, 이것들에 따르는 지혜와 관용과 이해의 정서가 품어져 있는 작품 세계를 드러낼 경우를 말한다."

말에 깊은 공감을 했다.

 

 읽기 위해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은 박완서의 책과 그의 딸의 책을 눈으로 훑어본다.

올겨울 추위는 유별나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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