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나에게 집중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 남들처럼'을 삶의 기준처럼 여기고 살아가지 않을까?
'제가 해보니 나름 할 만합니다.'는 대한민국에서 성별이 남자로 태어난 작가가 40대에 시작한 전원생활, 독립서점, 가사 노동, 채식을 하면서 느낀고 겪은 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위에 나열한 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비주류의 삶',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삶' 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가 해보니 나름 할 만합니다.' 는 1부. 도시 생활자가 시골에 터를 잡고 살아보니 에서는 전원생활과 독립서점의 이야기를 2부. 어느 날부터 괜찮지 않아서 에서는 가사 노동과 채식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으로 하고 있다. TV 프로그램인데 북유럽이라는 책을 추천해주고 기부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이 있었다. 재밌게 보던 프로그램인데 지금은 끝나서 아쉬웠는데, 북유럽이라는 프로그램 이름이 너무 센스가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방송 1회때 "북유럽이라는 독립서점이 있다. 그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 뭐 이런 내용을 이야기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이 그 북유럽 서점 주인이 쓴 책이라니.. 빨리 읽어보고 싶었다.
전원생활과 독립서점은 나의 꿈이기도 하다. 제주도에서 살면서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데.. 어린시절을 단독주택에서 살아서 그런건지.. 그때의 기억이 좋아서 그런지 아직도 단독주택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다. 그리고 독립서점은 몰라도 서점을 하면 좋아하는 책도 하루 종일 읽을 수 있고, 뭔가 서점이 주는 따뜻함이 마냥 좋아서 나도 서점을 하고 싶다 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요새는 전원생활과 단독주택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 미디어에서 많이 다루고 있다. 단독주택과 아파트의 장단점을 비교해 당신이 알고 있는것이 전부가 아니다 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저자가 전원생활을 선택함으로써 주위에서의 걱정은 물론이고, 자신들이 포기해야 하는 것에 대한 접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시작을 한 것이다.
저자가 딸의 교육을 시작으로 집값 등 으로 너무 자신의 선택이 너무 이른게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할때, 저자의 부인분의 말이 가슴에 남았다.
시기마다 추구하는 가치와 매력은 달라지기 마련이며, 그때 중시했던 것이 지금은 별게 아니게 되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전원생활을 하기전에 집값이 오름으로써 좀 더 갖고 있다가 나중에 전원생활을 시작했다면 조금 여유가 더 있지 않았을까?라든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도시생활을 더 해야 했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욕심이 많아져 조금만 더 모으자, 조금만 더 모으자, 이런 식으로 점점 목표가 멀어져 갔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여행을 하고 싶어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돈을 모으다 보니 돈을 모으는것이 목표가 되어 여행을 포기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마디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것은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기 때문에 추구하는 것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작가가 만약 그런 생각이었다면, 전원생활을 시작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취하지 못한 것까지 미련을 두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좋은 선택을 할수 있도록 돌아온 길을 살피고 궁리하는 것이면 되는 것이다.
'나중'이란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허상일 뿐 닿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중을 위해 버려도 되는 현재는 없다. 현재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삶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인생이다. 아니 지금 이 순간이야 말로 인생인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나중을 위해 현재를 포기하며 살고 있는가. 무턱대고 미래에 대한 계획없이 현재만을 사는 것도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미래에 대한 확고한 목표가 있다는 것은 현재 진행하는 것에 대한 확고한 목표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전의 나의 스타에 대해 내가 품었던 선망과 신뢰가 사실은 그가 아니라 나로부터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각성. 그래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학창시절 소위말하는 빠순이였던 나. 지금은 그때의 열정은 사라지고 추억만이 남아있다. 어린시절 나의 스타가 시간이 지남으로써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실망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나는 나의 스타에 어떤 면을 좋아했던 것인가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의 추억만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것을 보면 나는 그때의 나의 열정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나이때에만 가능한 그런 마음.
작가는 말한다. 너무 빤한 소리임에도, 과연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면, 그래서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면 세상을 직시할 수 없다.
가부장제도.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남녀차별
남자다움과 여자다움. 작가가 가사 노동을 전적으로 시작했을때 주위의 시선들이 어땠을지 대략 짐작이 간다. 그럼에도 꿋꿋히 자신의 신념을 믿고 나아가는 저자의 모습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집마다 성향이 조금 다르겠지만 우리엄마는 나에게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다. 1남1녀 중 장녀였던 나는 아주 곱게 자랐다.
엄마는 시집가서도 할 일을 굳이 벌써부터 할 필요 없다고 하시며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다. 심지어 엄마, 아빠는 맞벌이를 하셨는데 엄마는 일을 나가면서도 나와 동생의 아침, 점심, 저녁까지 철저하게 다 챙겨주셨고, 심지어 간식까지 챙겨주셨다.
그 당시 나는 왜 엄마 혼자서 하는 그 많은 집안일을 같이 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어릴때는 그렇다치더라도 커서는 친구들과 놀기에 바빴으니...철이 없기는 정말 없었구나...하며 반성을 하게 됐다. 결혼초반 가사노동을 하게 되면서 나는 우울함을 자주 느꼈다. 해도 티안나는 집안일들. 일을 한다는 이유로 외식을 빈번하게 했고 나보다 좋은 요리실력을 갖고 있는 신랑덕분에 가사 노동을 분담해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엄마는 어떻게 가족의 도움없이 거기다 일까지 하면서 완벽하게 해냈을까? 정말 나이가 들면 들수록 엄마를 존경하게 된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그것이 남녀차별, 혹은 남에게 상처가 되는 말이라는 것을 잊고 행동하고 이야기 할 때가 있다. 어린시절의 나도 엄마의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게 아닐까? 그 부분에 있어서는 오히려 엄마가 더 깨어있었던 것 같다. 여자아이는 머리가 길어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뒤로 한채 커트머리도 했었고, 내 이름부터가 우리때에는 남자아이들의 이름이 많았다. 나와 이름이 같은 친구들은 다 남자아이들이었고, 여자는 본적이 없었다. 지금은 물론 중성적인 이미지를 갖는 이름이 더 좋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엄마가 선택한 나의 이름이다. 뭐.. 어렸을때 나도 여자아이 이름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하기도 했지만, 남자아이이름과 혼동되는 것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난 에피소드를 만들어주기도 했기에 나는 내 이름이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아주 맘에 든다. 특히 어른이 되고 난 뒤에는 더 맘에 든다.
채식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막연하게 언젠가 나도 채식을 하겠지? 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과연 내가 채식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없지않아있다. 어쨌든 채식을 하는 사람. 이라고하면 날씬하고 요가를 할것같고 자연주의 삶을 사는 그런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나 또한 갖고 있었다. 저자는 고기를 먹지 않음으로써 늘어난 탄수화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보상심리. 생각해보면 나도 그럴것 같다. 고기를 먹지 않은 만큼 다른걸 더 먹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당연히 하게 되겠지. 그런데 탄수화물을 많이 먹어서 좋을 건 없는데, 채식을 한다고 다 건강한게 되는 건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채식을 하게 된 목적이 건강인 사람이 있을것이고, 동물복지차원으로 채식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식습관이 얼마나 건강에 좋은지 또는 해로운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다만 평생 주저하지도 의심하지도 않았던 욕망 하나를 중단함으로써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나를 보존하면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작은 실천으로부터 다른 종의 존엄을 지키며 환경과 동물권 등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살피는 시선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내겐 중요하다.
고착된 인식을 아무런 의심 없이 수용하고 전형성에 기대어 단정하고 재단하는 일은 널려있다. 인간은 한 가지 개성으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다. 내 모든 개성의 총합이 바로 지금의 '나' 이다.
사회에서 보는 비주류들이 선택하는, 혹은 소수들의 그룹을 바라보는 많은 수의 남들은 그들을 평범하지 않다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바라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심지어 참견까지 한다.
- 내가 바라는 일은 상대로부터 어떤 전형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그 자체로 바라보는 것이다. 내가 가진 개성과 역사 전부를 합친 결과물로 지금의 나를 인정받고 싶듯이 상대 역시 그만의 개성과 역사가 존재할 것이다.
누군가를 그 자신으로 바라보기에 앞서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하려 드는 무서운 인식에서 벗어나고 싶다. 항상 노력하고 경계해야 겨우 가능해질 것 같다. 아니면 내색하지 않겠지만 머릿속으로는 평생 혼란스러워할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뱌라보지 않고서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없어서는 어떠한 변화의 기회도 찾아오지 않는다. 같은 의미에서 현재 상황에 대한 의심 없이는, 다른 버전의 삶에 대한 동경과 의지 없이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운 수 밖에 없다. 내가 꿈꾸는 삶은 그저 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거였다. 그것이 내 유일한 총체적인 꿈이었다. 그러기 위해 원하는 일을 하고 좋은 습관들을 계속 만들어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나를 위하고 타인을 위해서 익히고 간직할 좋은 습관들은 얼마든지 차고 넘쳤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를 더하면 전날보다 오늘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 터였다. 삶은 그저 과정일 뿐이니까.-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나의 인생추구방향이다. 나도 이제 곧 40대에 접어들게 되는데, 나의 관심사에 대해 미리 행하고 계신 작가님의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의 프롤로그에 '산다는 게, 그저 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여정이길...'이라는 멘트부터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리는 너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고 있다. 내 인생을 내가 살아야 하는데, 남들의 시선을 기준삼아 그것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제가 해보니 나름 할 만합니다.'를 읽으며 나 또한 나도 모르게 무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당연하다는 나의 생각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다수의 의견으로 장착된 사회문화가 정말 맞는 것인지 비판하는 사유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책을 통해서 뉴스를 통해서 주위를 둘러보고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다시 한번 내가 갖고 있는 생각에 의문을 갖고 그러면서 내가 진짜 바라는 나의 삶의 방향이 뚜렷해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