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화를 말하다 - 분노를 다스리는 지혜의 가르침
달라이 라마 지음, 이종복 옮김, 툽뗀 진빠 편역 / 담앤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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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사람들은 화가 많다. 그것은 불특성다수에게 행해질때도 있고 자신의 주위사람들에게 행하여질때도 있다. 내가 화라는 감정을 감지하고 지켜보게 된 계기가 된것은 책을 통해서였다. 어느 순간부터 화가 나면 분출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지켜보던 부모님과 외할머니는 내가 화를 조절하지 못한다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러면 나는 당당히 얘기했다. 화를 참으면 내 몸에 병이 생기니까 밖으로 분출을 해야 내 건강에 좋은거라고. 우리집의 종교는 불교이다. 이 책에서 달라이라마도 말하듯이 나는 어디가서 종교가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불교라고 이야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불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불교의 가르침을 생활속에서 하고 있지도 않은 듯하다. 행하는게 있다면 내 기준의 사회윤리적인 행동들과 법을 지키는 정도? 우리 할머니와 엄마가 불교니까 나도 불교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아마도 지구 상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꽤 되지 않나 싶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우선 달라이 라마라는 인물이 궁금해서 였다. 뉴스를 통해 알게 된 달라이라마는 티벳에서 인도로 망명을 했다는 기초적인 지식만 알고 있었지만 중국의 중국은 하나라는 사상에 피해를 받고 있는 티벳(피해자)의 영향력있는 분이 가해자인 중국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갖고 있는지 또 그 분이 이야기하는 화는 어떨지에 대해 알고 싶었다.

우선 이 책은 티벳불교를 기반으로 씌여졌기에 비종교인 혹은 비불교인이 읽기에는 어려운 전문용어(불교언어)들이 많이 나온다. 참고로 책에 나오는 불교 용어들은 책의 뒤쪽 부록편에 용어 설명이 되어 있어 이 부분을 먼저 읽어 용어에 익숙한 상태로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그렇지 않으면 읽을때 마다 막힐 수가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샨띠데바의 《입보리행론》(입보살행론) 제6장 인욕품 전문을 가지고 달라이 라마가 16시간에 걸쳐 강의를 한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특히나 일부 게송만을 설명(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게송을 하나하나 훑으면서 그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또 그 가르침이 그 장에 맡는 명상에 대한 설명을 함께 하고 있고 강의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기에 현장에 있던 청중과의 대화도 함께 실려 있다.

샨띠데바는 고통과 괴로움에 대해 '긍정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라도 있다면, 괴로움의 긍정적인 측면에 주의를 집중하라고 조언하면서 이를 인내의 첫 번째 특징으로 마무리 짓는다. 그는 괴로움이라는 경험은 잠들어 있는 우리를 일깨워 준다고 말한다. 괴로움은 또한 다른 이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괴로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함으로써, 타인에 대한 진정한 자비심을 일으키도록 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괴로움이야 말로 악함에 대한 두려움을 우리 안에 깃들게 하기 때문에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하다.

화를 극복하려는 노력에 필요한 열쇠로는 첫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화의 부정적인 측면을 심도깊게 이해하는 것이다. 화가 어떤 유해한 결과를 불러올지 생각해 보는 것이 특히 유효하다. 두 번째는 화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기반이 되는 인과관계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것이다.

불만족, 불만, 그리고 화 사이의 인과적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면 샨띠데바가 조언하는 화를 다스리는 방법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접근법은 이미 폭발한 화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화의 원인이 되는 잠재적 불만족을 찾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샨띠데바는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색을 강조한다.

달라이 라마는 '증오가 진정한 적이다. 증오가 내부의 적이다' 라고 말한다. 절대로 화가 증오가 되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중요한 원칙은, 마음의 유연성에 대한 믿음이다. 마음은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지닌다는 가정이 바로 마음의 유연성이다. 화와 같은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제시할 때도 그 감정들을 억눅러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화라는 강력한 생각이 일어날 때, 바로 그 순간 화를 일으킨 사람은 화에 압도당하고 내면의 평화와 평정심을 잃어버리고 만다. 화가 내면에 자리 잡으면 화를 내는 사람은 긴장하고 초조해지며 식욕을 잃고 잠도 제대로 못자게 될 것이다. 우리의 존재 목적은 행복과 성취라고 생각한다. 불교적 입장에서도 행복이나 성취의 네 가지 요소를 말할 때, 종교의 궁극적 열망인 윤회로부터의 해방과 깨달음이라는 목표를 논외로 하면 나머지 두 요소는 세상에서 기쁨과 행복을 성취하는 일이다. 기쁨과 행복을 더 제대로 경험하는 데 필요한 진정한 열쇠는 마음의 상태에 달려 있다.

우리가 화가 났을때를 대입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다. 어떤일에 화가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그 생각에 온종일 휘잡혀 있으면 그 화는 가라앉기는 커녕 더욱더 커져 내 몸과 마음을 갉아 먹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심한 경우에는 몸의 이상이 생겨 병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샹카학파와 니야야학파의 "자아"는 독립적이고 절대적이며 영원한 존재의 삼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샨띠데바는 27게송에서 어떤현상과 사건도 자기의 의지대로 일어나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27~31게송까지)

불교의 인과에는 예외가 없다는 만유인과법을 중심으로 논파하고 있다. 만일 원초적 물질이나 자아라는 것이 영원불변하다면 이 현상 세계와 어떻게 상호 작용할 수 있는가? 그 둘 사이는 어떤 관계인가? 현상세계와 원초적 물질, 혹은 자아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어떻게 현상 세계의 조건성을 설명할 수 있는가? 만일 자아나 원초적인 물질이 영원불변하다면 어떻게 이것이 다른 것을 발생시킬 수 있는가? 어떤 것이 다른 것을 발생시키려면 그 자체가 생성된 것이어야 한다.

증오, 화는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감정이다. 그럼 그것은 왜 나타나는가? 그것은 집착에 따른 것인데 집착으로 인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화가 있다. 그럴때 우리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화라는 감정은 당연한 것이기에 그 감정을 일으키는 것을 없애거나 화를 더욱 키우는 것들. 화의 연료가 되는 것들을(집착,불만,마음의불쾌함) 멀리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그런것들은 수련과 명상을 통해 얻을 수 있으며 인내와 감내, 자비가 필요하고 그로인해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니까.

이 책은 화의 근원과 화로인해 일어나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키는 방법을 이해시키고 있다. 화는 나이다. 라는 생각에 빠져 그 순간 자신을 파멸에 빠뜨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 감정에 빠지지말고 그 순가 자신이 왜 이런 감정에 휩사이게 되었는지. 혹은 타인이 왜 저렇게 화가 나있는지를 관찰하고 그 감정의 연료를 더 이상 제공하지 말고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와 청중의 대화에서 이야기가 생각난다.

[불료에서는 세 단계, 혹은 세 종류의 지혜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경청하여 배우는 단계로 여러분이 어떤 것을 읽거나 듣는 기초 단계입니다. 첫 번째 단계를 거치며 우리는 어느 정도 이해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듣거나 읽어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이후 한 논점이나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사색해서 이해를 보다 명확하게 하는 단계입니다. 그러면 그때 어느 특별한 느낌이나 경험을 하기 시작합니다. 세 번째는 "명상을 통해 얻는 지혜"라고 부릅니다. 한 주제를 지성을 통해 명확하게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명상으로 지혜를 체득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책을 읽은 기초 단계에 있다. 이것에 멈추지 않고 두번째 단계인 이 주제를 계속 생각하고 개념을 뚜렷히 한 후, 명상으로 그 뜻을 새기게 되는 것이 알게 된는 것이다.

화에 대해서 잘 알아야 우리는 그것을 조절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화가 나는 감정이 나라는 생각에 휩싸여 휘둘리지 말고 잘 컨트롤 하는 것으로 우리의 인생의 목표인 행복하게 사는것이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닐까?

화를 분출하는 것이야 말로 내 몸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했던 나였다. 그러나 그 불출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와 상처를 입히고 그로 인해 나는 나쁜 업보를 쌓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몸을 지킨다는 행위는 오히려 내 몸을 병들게 하였다. 어찌 보면 그로인해 나의 분노 분출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으니 나에게는 일어나야 했었던 일이 아니었나 생각을 해본다. 그 일을 겪고 좀 더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하게 되었고 명상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에 나에게는 배움을 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한것은 아니다. 나 역시 병이 생기고 왜 나한테 이런일이 생기냐는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났고 그 일 이외에도 많은 상황에 나는 그 상황을 원망하고 화를 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화를 낸다고 해결되는 상황도 아니고 좀 더 나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니 우리가 살아가면서 인간관계에서의 화를 조절하는게 쉽지않지만 짧은 시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라도 나의 인생의 목표 '행복하자'라는 목표를 이루기위해서 앎을 구하고 명상하며 그리고 내면의 나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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