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남 티롤이라고 부르는 지방은 전에도 말했지만, 오스트리아가 제1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 이탈리아에게 할양한 토지이다.
(중략)
제1차 세계 대전 후의 성 제르망(St. Germain-en-Laye) 조약에 의하면, 양국의 국경선은 남북의 강이 분수령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즉 북쪽의 인 (Inn)강 지류와 남쪽의 아디제(Adige) 강 지류가 분수령이다. 이번 발견 현장은 알프스의 가장 주된 산줄기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고 인 강에 물을 대는 지역에 속한다. 그것에 관한 한 단연코 오스트리아령이다.
그런데 성 제르망 조약 당시의 국경 설정 위원회는 ‘분수령은 일단 판단 기준이고 엄밀한 국경선은 분수령 이외의 기준으로 결정해도 무관하다‘ 고 부기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이번의 현장인 하우슬라프요흐 주변은 조약 체결 당시는 빙하가 덮여서 분수령이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기에 해당하는 지역이 되었던 것이다.
(중략)
미라 발견 지점은 결국 국경으로 부터 이탈리아측으로 94.56m 들어와 있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_85~86쪽, 94쪽



외찌라고 이름붙였던 사람은 비엔나의 칼 벤들(Karl Wendl) 기자인데, 그는 〈외짤 계곡의 설인(雪人)>이라는 의미의 외짤 (Öetzal yeti)를 줄여서 외찌라고 말한 것이다. 그는 사체라든가 미라라는 무서운 호칭을 피하고 좀더 친근해지기 쉬운 이름을 붙이려고 했었다. "이 바싹 마른 이상한 모양의 사체를 왠지 보기만 해도 이야기가 써질 것 같은, 호감이 가는 존재로 만들고 싶었다." 라고 벤들 기자는 말하고 있다. 그가 외찌라고 하는 이름을 처음으로 쓴 것은 사체 발견으로부터 1주일 후인 9월 26일의 일로서 그 이후 이 이름은 전세계를 석권하게 된다. _101~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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