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신 쿠숀에 펼쳐 놓은 책표지 ..
엎드려서 책을 보다가 잠시 라면이라도 끓이러 갔나 봅니다.
아멜리 노통( 아멜리 노통브 라고 하면 왠지 자장면이라고 하는 느낌 ) 의 책들을 읽으면서 한번도 번역자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는데 .. 이분이었군요
저의 평소 독서습관대로 라면 책 읽기 전에 한 번, 다 읽고 나서 한 번 더 .. 그렇게 번역자의 글을 읽었을텐데요.
'오후 네 시' 의 그 느낌에 어느 정도가 번역자의 몫이었을까요.
파스칼 브뤼크네르 의 '새 삶을 꿈꾸는 식인귀 .. ' 들의 느낌도 그러했겠지요.
나의 느낌이 온전히 작가와 나 사이의 느낌만은 아니었군요 호오 ~
이렇게 묶여나온 책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네요.
번역자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도 같이 ..
그렇게 읽혔던 글들을 모아놓은 이 책을 다 읽고 덮을 때쯤에는 ..
원저자는 사라지고 번역자와 나 사이의 느낌만 남아있습니다.
내가 번역자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 ..
신기한 경험, 수려한 문체, 읽었던 책에 대한 새 느낌, 아직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설레임
무지개색 쫀드기를 한줄 한줄 떼어먹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었습니다.
수려함과 화려함으로 포장된 감정과잉이나 현학도 조금 느껴집니다만
저자를 살리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번역자에게 이정도 특권은 주어질 수 있을 것 같네요.
살다간 흔적, 원작을 사랑했다는 흔적 정도는 남겨야지요 소심한 크로마뇽인의 벽화처럼 ..
새로운 발견, 새로운 즐거움이 있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