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욘더
김장환 지음 / 비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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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욘더는 일억 원 고료 제 4회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이자, 티빙에서 제작한 동명 드라마의 원작이다. 드라마는 이준익 감독, 신하균한지민 주연의 6부작 욘더란 드라마다. 드라마가 공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책이 나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개정판이 출간된 것이다. 구판은 2011년 나왔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개정판으로 재출간된 것은 드라마 공개와 함께 동반인기를 누리고자 하는 출판사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전면 개정판에서는 2022년 감각으로 문장과 표현을 세심하게 다듬은 것은 물론 저자의 짧은 후기를 추가로 수록하였다.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접한 사람들이 대부분 드는 궁금증.

욘더가 도대체 뭐지? 이 용어는 작중 세계에서도 그 의미가 나중에 알려지게 된다. ‘욘더는 가상공간이자 장소이자, 또 하나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없는 사람, 그러니까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아픔도 헤어짐도 없는 완전한 천국, 욘더.’ 사람들은 그리운 연인 또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욘더로부터 온 초대장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주인공 김홀도 그렇다. 그는 죽은 아내, 차이후가 욘더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욘더에 가면,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 김홀은 갈등한다. 그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여기에 있을지, 아니면 욘더에 갈지.

 

 


 

책을 읽으며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했다.

놀라운 하이테크의 신기술이 구현된 세상. 극단적으로 발달한 고도의 네트워크 사회. 사이버네틱 스페이스가 존재하고 포스트 휴먼이 등장하는 근미래가 책의 배경이다. 유비쿼터스로 모든 곳이 네트워크화되면서, 사람들은 핸디(네트워크 에어)라는 수단으로 다양한 기능을 활용한다. 심지어 극심한 통증을 줄일 수 있는 수단까지 개발되었다. 예를 들어 김홀의 아내 차이후는 말기 암 환자였는데, 그녀는 브로핀 헬멧을 쓰고 통증을 견딘다. ‘브로핀 페인 디스트랙션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환자는 가상현실을 통해서 진통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이 같은 모든 설정들이 참신하고 기발했다. 2010년대에 이 세상을 구현한 작가의 상상력이 놀라울 뿐이었다.

 

사이버 세상이 배경인 만큼, SF의 성격이 강할 수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굿바이 욘더SF 소설이란 느낌이 크게 들지 않는다. SF적 용어들과 배경이 주를 이루지만, 그것이 스토리의 핵심은 아니다. 소설은 오히려 문학성이 두드러지는 특징을 가졌다. 이는 작가가 문학과 SF의 경계를 적절하게 조절한 안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SF가 낯선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절묘하게 맞췄다.

 

유비쿼터스로 모든 것이 통하는 사이버 세상. 신을 믿는 자들은 줄어들고, 아이를 낳는 이들도 갈수록 급감한다. 사이버네틱한 세계에서 구시대의 유물은 골동품이 되어버린 지 오래. 이 세상의 사람들은 추모조차 사이버 세상을 통한다. 죽은 자의 기억을 다운로드받은 인공지능 아바타를 만나며 그리움을 풀 수 있는 것이다. 한데 심지어 욘더는 단순히 추모의 공간 정도가 아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 또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새로운 경지의 차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살 수 있다면, 기꺼이 대가를 치르겠다는 사람이 분명 있지 않겠는가? 그 대가가 그 어떤 것이든.

 

김홀 또한 사별한 아내를 그리워해서, 잊지 못해서,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 대가를 치를 결심을 하게 된다. 그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읽으니, 그의 선택을 자연스럽게 납득할 수 있었다. 그의 고민과 갈등 역시. 그가 선택한 결과 또한. 결말을 읽고 김홀이 겪은 이 일련의 과정들을 돌이켜보며 생각했다. 소설은 한 가지의 주제를 강력하게 역설하고 있는 듯했다. 감정은, 인간의 감정은 결코 사이버화될 수가 없음을. ‘문학이 그려낼 수 있는 가장 하이테크하면서도 따뜻한 미래라는 당시 심사위원의 평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1. 책의 세상에서 KFC가 없어졌다고 나온다. 아니, !!

2. 최첨단의 하이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로우테크의 삶을 선택한 이도 있다. 나도 선택한다면 로우테크를 선택할래. 난 아날로그가 좋다!

3. 가족에게 자살하는 장면을 일부러 보여주는 것은 최악이다. 이해가 안 간다.

 

 인상깊은 구절

그 시점을 놓치게 되면 인간이 기술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기술이 인간을 종속시키는 일이 벌어질 거라고요. 그리고 기술 발전이 일정한 선을 넘어 인간의 통제와 예측을 벗어나면 모두가 꿈꾸는 멋진 신세계가 올지, 아니면 기술만 살아남은 완전한 파괴가 오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파악한 거죠.”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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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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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로비 터너는 의대에 진학할 예정이다. 가난하지만 명석한 그는 탈리스 가문의 후원을 받고 있다. 어머니가 그 집안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것을 계기로, 로비는 탈리스 가의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특히 탈리스 가문의 장녀, 세실리아는 함께 자라온 소꿉친구이자 대학 동문이다. 어느 날, 탈리스 저택의 분수대에서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묘한 감정을 느낀다. 둘은 서로가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가졌다는 것을 확인한다.

막 연인이 된 이들. 그들에게는 장밋빛 미래만이 있을 것 같았다. 로비에게는 전도유망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의대를 졸업하면 의사가 될 미래. 게다가 그에게는 막 연인이 생겼다. 아름답고 다정한 연인, 세실리아가. 그러나 그의 미래는 한순간에 바뀐다. 나락으로 떨어진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어떤 사건으로 인해. 그리고 그를 그 사건의 범인으로 주목한, 단 한 사람에 의해.

 

속죄의 화자이자 주인공은 로비와 세실리아가 아니다.

탈리스 가문의 막내딸이자 세실리아의 동생 브리오니가 이 소설의 화자다. 속죄는 그녀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로비의 시점에서 써봤다. 소설을 끝까지 다 읽고 난 뒤에도, 브리오니의 행위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관찰자 시점이든 주인공 시점이든, 서술자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상 어느 정도 주관성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속죄의 화자는 믿을 수 없는 화자. 어린 소녀에서 성숙한 어른으로, 그리고 노인이 되기까지 그녀의 관점은 온통 착각과 오해로 일관된다. 그렇다. 브리오니의 문제는 그녀가 잘못을 깨달은 뒤에도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헛된 망상과 아집에 사로잡혔던 어린 시절도 모자라, 그녀는 마지막까지 독자를 기만한다.

 

브리오니는 로비가 한 소녀를 강간했다는, 터무니없는 오해를 한다. 그 오해를 하게 된 이유가 있다. 브리오니는 로비와 세실리아의 애정 행각을 목격했다. 그녀는 그것이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믿었다. 앞서 목격한 분수대에서 언니의 행동- 겉옷을 벗고 분수대에 들어간 것 또한, 로비의 강요 탓에 언니가 억지로 들어갔다고 판단했다. 로비의 지나치게 외설적인 편지( 브리오니는 남의 편지를 함부로 읽었지만, 그녀는 그것이 언니를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는 그녀의 심증을 합리적으로 굳히는데 한몫했다.

그래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브리오니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로비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사촌인 롤라를 강간한 범인으로. 그녀는 확신한다. 뚜렷하지 않은, 실루엣만 봤을 뿐인데. 브리오니가 로비라고 단정한 순간, 로비는 범인이 되어버리고 만다. 피해자인 롤라는 브리오니의 말에 편승한다. 사실은 범인은 로비가 아니라는 진실을 희미하게 부정한 채. 모든 것은 브리오니가 주도하는 상황에서, 롤라는 피해자로서의 입장에 충실하면 됐기 때문이다.

브리오니의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녀는 로비를 직접 목격했다고 말한다. 브리오니의 말에 따라 로비는 체포되고, 감옥에 간다. 의대생으로서 빛나는 미래는 사라졌다. 로비는 창창한 나이에 죄인이 되고 말았다. 오직 세실리아만이 그의 결백을 입증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로비가 범인으로 확정된다. 이후, 경찰은 로비에게 수갑을 채워 끌고 간다. 브리오니는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는데, 끌려가는 로비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는 세실리아를 발견한다. 브리오니의 시점인 탓에 독자는 둘의 대화를 알 수 없다. 그녀는 세실리아가 로비를 비난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는 독자는 브리오니의 추측이 억측임을 잘 알 수 있다. 과연 로비의 회상을 통해 드러나는 두 사람의 대화는 비극적인 그들의 운명만큼 애틋했다. 슬프게도, 브리오니의 오해가 불러일으킨 두 연인의 비극은 이제 시작이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로비는 병사로 차출된다. 36개월의 감옥살이 끝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소모품의 처지로 끌려나온 것이다. 로비는 패잔병이 되어 적지에서 탈출하는 상황이다. 독일군의 공습이 수시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그는 필사적으로 버틴다. 그런 그를 지탱해주는 것은 단 하나, 세실리아의 편지였다. 세실리아의 편지는 그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녀가 매주 보내는 편지가 아니었더라면, 감옥 생활도 버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로비가 끌려간 뒤, 세실리아는 가족과 의절했다. 그녀는 간호사가 됐다. 브리오니의 거짓 증언은 로비뿐만 아니라 세실리아의 운명까지 바꾼 것이다. 로비가 군에 가는 대신 조기 석방되었을 때, 잠시간 두 사람은 간신히 해후한다. 하지만 그 순간은 짧았다. 30분 만에 그들은 헤어져야 했다. 로비는 입대해야 했고, 세실리아는 병원으로 돌아가야 했으니까. 서재에서의 짧은 추억만이 유일했던 그들의 사랑은, 또다시 이 짧은 순간을 추억으로 버텨야 할 운명이었다. 로비에게는 한 가지 목표만 남았다. 무죄를 입증하고, 세실리아와 결혼하여 당당히 살아가는 목표. 마침 그는 브리오니가 무죄 입증을 도울 의사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가 증언을 번복한다면, 로비의 억울한 오명 또한 벗겨질 수 있지 않겠는가.

 

브리오니가 무죄 입증을 돕겠다고 했을 때, 로비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것은 그를 위한 일이 아니라고. 애초에 그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으니까. 그것은 그애 자신을 위한 것이었으며, 양심상 도저히 견디기 어려워지자 자신의 범죄에 대해 면죄부를 얻으려는 것(p323)이라고 생각한다. 브리오니에게도 참작할 여지가 있긴 하다. 그녀는 당시 어린애였다. 그렇다고 해서, 로비가 그녀를 용서해야 할까? 로비의 말대로, 모든 어린애가 그렇게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태도로, 시간이 지나도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 회의를 갖지 않을 만큼 지독할 수는 없다.  

로비의 말이 맞다. 그렇기 때문에 브리오니가 속죄의 대가로 무슨 일을 해도 의미가 없다. 그녀가 간호사가 돼서 힘든 나날을 보내든, 작가가 돼서 속죄의 글을 쓰든, 그것은 다 자기위안에 불과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로비의 망가진 인생이 회복되기라도 하던가? 브리오니의 생각대로 답은 단 하나. 유일한 해결책은 과거를 되돌리는 것(p403)밖에 없는데. 

브리오니는 자신이 한 짓을 깨닫고 후회한다. 전쟁중, 그녀는 용기를 내서 세실리아와 로비를 찾아간다.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진실을 말하고 고백하겠다고 말한다. 속죄를 하기 위해, 그녀는 글을 쓴다. 그녀가 쓴 그 글이 이 소설이다. 책 초반부 서술에서 나왔던, 브리오니의 자전적 소설. 1935년 찌는 듯이 무더운 어느 여름날 아침에 직접 목격한 일을 소재로 한 편견 없는 심리적 사실주의를 표방한 작품(p67).

 

속죄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어린 브리오니가 로비를 고발한 사건, 2부는 로비가 병사로 전쟁 중에 겪는 일, 그리고 브리오니가 간호사로서 겪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2부는 브리오니가 로비와 세실리아를 만나서 용서를 구하며, 속죄를 하겠다는 다짐으로 끝을 맺는다.

 

※ 스포일러가 있어요!

 

 


 

3부는 브리오니가 일흔일곱 번째 생일을 맞은 시점에서 진행된다. 그녀는 혈관성 치매를 앓고 있다는 선고를 받는다. 제정신을 유지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놀라운 고백을 한다. 사실 브리오니는 그때 두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두 사람, 세실리아와 로비를. 만났다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있었던 일이었다. 브리오니의 소설에서나 존재하던 행복한 결말이었다. 로비와 세실리아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다. 브리오니는 말한다. 로비는 패혈증으로 죽었고, 세실리아는 폭격으로 죽었다는 냉혹한 사실주의를 차마 독자들에게 알릴 수 없었다고.  

심지어 이 소설은 출판되지 못했다. 명예훼손에 걸리기 때문이다. 브리오니의 공범자들이 동조를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피해자였던 롤라는 진범 마셜과 결혼했다. 부호인 남자에게 시집간 덕택에, 롤라는 호사스러운 생활을 누렸다. 브리오니의 소설이 출간되면, 롤라는 자신을 강간한 남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이 공개되고 만다. 롤라와 마셜 부부의 재력은 소설을 출간할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 결국 진상은 밝혀지지 않는다. 로비의 누명은 벗겨지지 못했다. 그리고 비명에 간 두 연인과 달리, 세 공범자들은 오래오래 산다. 마셜과 롤라 부부는 평생 해로했고, 브리오니 또한 결혼해서 성공한 작가로서의 삶을 살았으니까…….

  사실 나는 속았다. 브리오니의 행복한 결말. ‘편견 없는 심리적 사실주의라는 교묘한 말에 속았다. 브리오니가 두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사실인 줄 알았다. 행간을 놓친 탓이다. 마지막 문장의 느낌이 묘해서 다시 천천히 읽어봤더니, 진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브리오니의 친절행복한 결말에 분개했다. 속죄라는 제목부터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정말 브리오니는 이 소설을 씀으로써, 속죄를 했다고 생각했을까? 브리오니는 자신의 소설에서 연인들을 살려두고 마지막에 다시 만나게 한 것은, 그들에 대한 친절이자 망각과 절망에 맞서는 투쟁(p521)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나는 브리오니가 대단히 뻔뻔하다고 생각했다. 자기에게 유리한 식으로 윤색해서 만든 변명과 기만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했다.

 

브리오니는 소설가의 역할, 그리고 소설에서 차지하는 작가의 위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 자신이 상상 속에서 한계와 조건을 정한다. 신이나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p521

  브리오니는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모양이다. 작가의 전지성이 갖는 면책 특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책임을 진 양 말이다. 그러나독자의 입장에서 나는 여기에 동조할 수 없다. 소설은, 작품은 작가 혼자만의 것이 아니므로. 독자도 엄연히 소설의 참여자로서, 창조적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으므로. 그렇기 때문에 속죄에서 브리오니가 속죄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책을 읽은 독자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속죄의 문체는 호흡이 길고 유장한 흐름을 가진 만연체에 가까운데, 번역이 잘 된 덕분인지 가독성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만연체의 성격을 가진 대신, 작가의 묘사는 디테일하고 섬세한 특징을 가졌다. 특히 로비와 세실리아,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순수하고 관능적이다. 작가는 친구라는 장벽을 넘어서 연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두 청춘이 성애에 눈을 뜨는 과정을, 그 순간을 묘사해내는 데에서 작가의 세심한 필치가 더욱 빛을 발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작가는 전쟁의 참상을 핍진하게 그려냈다. 로비가 적진을 탈출하는 과정, 그리고 브리오니가 부상을 입은 병사들을 간호하며 목도한 광경들은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다. 전쟁이라는 대서사 앞에 개개인이 겪는 비극의 면면이 잘 드러났다고 본다. 한편으로 전쟁이 아니었다면, 두 연인의 비극적 결말이 바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지 않을까, 가정해 봤다. 개인의 비극과 시대의 비극이 교차하고 확장하는 점에서, 원숙한 구성 및 서술의 완성도를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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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래도 세실리아가 끝까지 그를 믿고 사랑했다는 것이, 로비에게 위안이 될 만한 유일한 일 아니었을까? 세실리아마저 그를 믿지 않고 범인으로 생각했다면 로비는 감옥에서 얼마나 더 끔찍했을까. 지옥 같은 감옥, 그리고 전쟁의 한복판에서, 그를 지탱할 수 있게 해준 유일한 빛이자 희망은, 오직 세실리아뿐이었다. 두 연인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이 소설에 색채를 더해주는,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2.  속죄는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다. 국내에는 어톤먼트란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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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 이즈 이탈리아 This is Italia (2023년 최신판) 디스 이즈 여행 가이드북
전혜진.윤도영.박기남 지음 / TERRA(테라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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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의 팬데믹으로, 여행이 중단됐었기 때문에 여행 최신 정보도 3년 간 끊긴 상황이었다. 가이드북도 19년 이후로 최신간이 나오지 않은 상태……어쩌지 난 가이드북이 필수인데!! (여행 떠나기 전 출간된 가이드북은 다 보고 가는 사람)

그런데 이게 웬일? 테라출판사에서 발빠르게 가이드북을 냈다.

2022~23년 최신판!!

《디스이즈이탈리아》, 《디스이즈스페인》, 《디스이즈파리》 시리즈를 낸 것이다!! 코로나19로 달라진 현지의 최신 정보를 반영해서!! 책을 보며 느낀 몇 가지 특성 혹은 장점을 설명해본다.

1. 여행하기 좋은 방법 또는 팁, 정보 제공


자유여행을 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팁이나 정보가 상세하다.

예를 들어, 자동판매기? 티켓 구입하면 되는 일인데 뭐가 어려워? 라 생각하며 수월하게 여행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난 세세하게 알지 않으면 어리둥절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이라;;; ㅋㅋ 그런 면에서 사진까지 첨부해서 일일이 방법을 상세하고 자세하게~~ 알려주는 점은 매우매우 고마울 따름이다. 무척 유용한 정보다!

2. 코로나19 상황 반영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한 최신 정보를 반영한 것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이모저모 코로나19로 바뀐 점들이 책에 소개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로 음식점 상점 등이 많이 문을 닫은 현재의 상황에서, 현재 영업하고 있으면서 갈 만한 음식점들을 추천해 준 점도 매우 도움이 될 것 같다.


3.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 소개




《디스이즈이탈리아》의 또다른 강점이자 장점! 이탈리아의 남부 풀리아 지방의 바리를 소개했단 점이다!! 이 바리는 다른 가이드북에 없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마테라, 레체란 곳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여행가기 전까지, 여행 중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 출판사로부터 제품을 받아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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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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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으로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무라타 사야카편의점 인간으로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일으켰던 이후그 이후로도 무라타 사야카는 평범의 궤를 벗어난 전개와 서사를 통해 독자적인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편의점 인간이 출간되었을 당시뜨거운 화제가 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었다그때 읽었었지만 최근에 다시 읽게 되었다그 이유는 작가의 최신작 지구별인간을 읽었기 때문이다지구별인간의 신선하고 파괴적인(?) 결말이 잊히지가 않는다그래서 전작인 편의점 인간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편의점 인간은 190여 쪽 남짓한 분량이다내용도 평이해서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다그러나 책에 나타난 캐릭터성과 사상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주인공인 후루쿠라는 소시오패스로 분류될 수 있는데그녀는 세상에서 정하는 규범과 상식에 벗어나 있다어릴 때부터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최대한 세상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후루쿠라그녀가 정상에 가깝기 위해 선택한 곳은 편의점이었다편의점에서 일함으로써 비로소 세상의 정상적인 부품이 될 수 있었던 후루쿠라. 18년 째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며그녀는 그런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그녀는 보통 사람들과 다름을 자각하고 있다하지만 그 다름에 대해서 특별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통과의례로 여겨지는 것들취직하고 결혼하고 출산하고 육아하는, ‘일반적인’ 삶의 단계그 일반적인 단계를 따라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를편의점 인간은 묻고 있다아울러 편의점으로 상징화되는규격화된 현대사회의 모습을 강력하게 풍자하며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분명 편의점 인간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신선하게 다가왔겠지만(그때의 기억이 흐릿하다), 지금 다시 읽으니까 적응이 됐다내용을 알고 있어서 그럴 수 있겠지만무엇보다도 지구별인간의 기억이 매우 강렬하다지구별 인간을 읽고 나서 읽으니까 이땐 작가가 독자를 많이 배려(?)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맛으로 구분하자면 편의점 인간은 순한 맛지구별 인간은 마라 맛제목도 같은 인간으로 끝나는데다가 표현과 주제의식이 비슷해서 두 책을 세트로 읽어도 될 듯싶다또한 부품’, ‘톱니바퀴’, ‘공장’, ‘세계’, ‘도구’, ‘세포’ 등의 표현은 무라타 사야카의 세계를 정의하는 개념어로써 정착될 듯한 느낌이다.

 

용기 있는 자들이여기이하고 충격적인 무라타 사야카 월드에 들어오시지 않으시렵니까신선한 모험이 될 것이라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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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라하의 자기모순적인쉽게 말해서 내로남불 태도와 행동을 보면서 허탈한 웃음을 짓게 되었다여성 동지들의 분노를 불러올그의 발언을 모아봤다.

 

첫눈에 반할 정도로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자기 것으로 만든다이건 옛날부터 전해오는 남녀의 전통 아닌가요?” p103

당신 같은 여자는 처녀라도 중고예요너저분한.” p110

“(당신도 밑바닥 중의 밑바닥이고이제 자궁도 노화되었을 테고성욕 처리에 쓸 만한 외모도 아니고그렇다고 해서 남자 못지않게 돈을 벌고 있는 것도 아니고그러기는커녕 정식 사원도 아닌 알바생. (인간쓰레기죠.” p126

 

2. 여동생을 포함한 가족들이 대인배라는 생각이 든다.

 

3. 편의점에서 볼 때 후루쿠루는 모범적이고 유능한 인재다그야말로 편의점에 최적화된 인재라 할 수 있다열심히 일을 했으니까 점장으로 승진할 법도 한데편의점 본부는 왜 이런 인재를 점장으로 발탁하지 않은 건가?(불편한 편의점의 사례가 생각났다.)

 

인상깊은 구절

 

나는 세계의 부품이 되어 이 아침이라는 시간 속에서 계속 회전하고 있다. p9

편의점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교체되고 있을 뿐줄곧 같은 광경이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p109

하지만 제 인생이 강간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남의 인생을 똑같이 공격하면 마음이 다소 개운해지는 지도 모른다. p110

시라하의 제수 제발 참아주세요알바와 백수가 아이를 낳아서 어떻게 하려고요정말 그만두세요당신들 같은 유전자는 남기지 말아주세요그게 가장 인류를 위하는 길이에요.”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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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인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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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세 단계의 인지 수용 단계를 거쳤다.

첫 번째 단계착각이다제목과 표지와 초반부 전개를 보고 단단히 착각했다화사한 색감의 표지디저트와 마법봉이 놓여 있는 표지다거기에 지구별 인간이란 제목이라니장르가 판타지인가란 생각을 했다그런 뒤 책장을 펼치니까 주인공 남녀 둘이 서로를 마법소녀와 외계인이라고 믿고 있다판타지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몽상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그리나 보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전개가 진행될수록 내 추측은 철저하게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 소설은 판타지가 아니다마음이 따뜻해지는 힐링 소설도 아니다오히려 지독히도 현실적인 소설이다지구인과 외계인마법봉과 마법 주문은 그저 소재에 불과할 뿐오히려 이 소재들은 현실성을 극대화한다지구별 인간은 환상을 빗대 현실을 강력하게 비판 혹은 풍자한다.

 

두 번째 단계연민과 분노다주인공 나쓰키의 어린 시절은 책에서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분량이다그러나 그 어린 시절은 나쓰키의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한편스토리의 진행에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데서 결정적이다나쓰키는 어릴 때부터 학대를 당했다학대는 정신적·육체적 학대 모두를 망라한다그녀는 가족들에게 감정 쓰레기통 취급을 당한다나쓰키의 엄마는 나쓰키를 구박하는데그 구박의 정도가 정도를 벗어난 수준이다나쓰키가 뭐를 하든 부정적이다신체 비하는 기본행동의 모든 것이 부정과 비난의 대상이다심지어 그녀는 타인에게 공개적으로 딸이 못났다고 흉을 본다엄마가 딸에게 가스라이팅을 한 것이다하도 가스라이팅을 당한 끝에나쓰키는 자존감이 바닥이다엄마의 말에 잠자코 긍정하는 나쓰키엄마의 말처럼 자기는 못나고 멍청하다는 나쓰키의 말이 왜 이렇게 슬프던지심지어 나쓰키의 아빠나 언니도 엄마와 비슷한 족속이다특히 나쓰키의 언니는 가식적이고 제멋대로인이기적인 인간이다나쓰키의 가족은 가족이라고 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이런 가정에서 자라난 나쓰키에게 동정과 연민이 갔다.

 

나쓰키를 괴롭게 한 것은 가족의 학대뿐만이 아니다나쓰키는 학원 선생님에게 성폭력을 당한다그 문제의 장면에서 나는 제대로 화가 났다나쓰키의 입장에서 겪은 그 장면이 읽기가 괴로웠다모든 성폭력과 성희롱은 최악의 행위임은 분명하나어린 아이가 당하는 경우는 유독 더 힘들다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그리고 더 화가 난 것은나쓰키 엄마의 반응이었다힘들게 고백한 나쓰키에게엄마는 네가 이상하다며 나쓰키의 잘못으로 몰고 간다그것도 모자라 나쓰키를 비난하며 머리를 때리는 엄마잘못했다고 반복하는 나쓰키날 버리지 말고죽이지 말라는 그녀의 하소연에 마음이 아팠다엄마 맞아어떻게 딸에게 그럴 수 있지엄마의 반응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국 나쓰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을 것이란 정언 명령에 얽매여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그녀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자신을 도구이자 공장의 부품으로 간주하도록 만든 현실마법 소녀라 생각하고 지구를 떠날 꿈을 꾸게 만든 현실현실은 나쓰키에게 유독 냉혹했다.

 


 

 

세 번째 단계충격이다우선 책에서 인간과 사회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과 비유가 충격적이다나쓰키는 이렇게 생각한다세상은 공장이고인간은 공장을 위해 노동하는 도구이자 부품에 불과하다공장의 유지를 위해 인간은 새 생명을 생산’ 또는 제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인간은 공장에 세뇌되었고 공장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노예다공장이 지배하는 세계그 세계가 있는 별이 지구다나쓰키는 자신을 외계인으로 생각하므로공장을 관찰자적인 시선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본다그러나 그녀는 지구에 살고 있는 이상 지구인지구별인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반대로 나쓰키의 남편은 외계인이 돼서지구를 떠나고 싶어 한다.

 

 

 

 

과연 나쓰키는 외계인이 될 것인가, ‘지구별 인간이 될 것인가그에 대한 답은 결말에 나와 있다이 결말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다상상 이상으로 충격적이라결말에 대한 잔상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윤리의식에 가치론적인 문제까지 연결되니머리가 복잡해졌다나쓰키의 선택이 옳은 것일까그 선택에 쉽사리 동조하지는 못하겠다그러나 그녀의 성장 환경을 생각하면그 선택의 배경에 대해서는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이렇게 심경의 변화를 거치며 읽은 소설도 참 오랜만이다나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범주와 경지에서 전개된 소설파격적이고 급진적이며 전위적인 문제작소설에 드러난 문제의식과 실험적인 시도를 보면일본 현대 문학의 계보를 잇는 유의미한 작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결말의 경우 일반 독자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조심스럽게 해본다.

 

 

 

 

 

 

1. 문학적 허용으로 받아들일 부분이지만그냥 한 번 지적해본다. ‘지구별 인간이란 제목은 과학적으로 오류가 있다지구는 별이 아니다행성이다지구가 별이라면인간은 살 수 없다너무 뜨거워서. (과학으로 생각하기에서 습득한 지식의 활용이다.)

 

2. ‘탈출닷컴이란 사이트우리나라에도 이런 종류의 사이트가 있을까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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