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목의 유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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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가즈아키의 신간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무척 설렜다. 이게 얼마만인가? 제노사이드이후 11년 만의 신간이라고 한다. 그동안의 공백이 너무 길었다. 제노사이드에 공력을 지나치게 쏟아부은 나머지 휴식을 취하고 싶었던 걸까? 무려 11년이나 걸렸지만, 다행히 작가는 신간으로 독자에게 돌아왔다. 건널목의 유령이란 책이다.

 

유령이란 단어가 말해주듯, 이 책은 유령이 나타나는 심령 현상을 다뤘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설은 건널목을 찍은 사진에 나타난 유령의 정체를 추적하는 내용이다. 추리 소설이자 공포 소설이기도 하다. 공포 소설이라면 전작 K·N의 비극와 비슷한데, 차이점이 있다. K·N의 비극은 빙의에서 비롯된 이상 반응과 현상을 과학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그러나 건널목의 유령100%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진짜 유령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무서웠다. 워낙 겁쟁이라서……. 다 읽은 뒤 잠이 안 왔다. 무서워서. 결국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켠 뒤 잠들 수가 있었다. 그만큼 실감 나게 공포스러운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담력이 어느 정도 있는 분들은 마침 무더운 여름이니 이 책을 읽는 것도 좋은 선택일 듯싶다.

 

공포 소설이긴 하나 작가가 단순 재미만 추구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작가의 장기가 무엇인가. 사회파 추리 아닌가. 이 책 또한 한 여인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면서, 권력자의 치부라든가 비리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공포라는 외연의 내부를 들여다봤을 때, 은폐와 무관심이 낳은 비극적 진실의 내포가 드러난다. 심령 현상이라는 비현실적 요소에 빗대어, 작가는 사건의 평범성을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현실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 어떤 죽음은 다른 누구의 죽음이 아니라 나의 죽음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단순히 방관한다면, 점차 약자의 범위는 확장되며 희생자의 수를 늘려갈 것이다. 나는 그 범주에 제외되리라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전작 제노사이드에서 콩고와 피그미족에 주목했던 작가는, 이번엔 소외된 자, 잊혀진 자, 그리고 사회적 약자와 최하계층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자국의 과오를 과감하게 비판하고, 편견과 차별 없이 한국인을 대했던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이번에도 유효하다. 건조하고 진중한 문체에 비판적인 의식을 가진 글이지만 글을 감도는 분위기에서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나만의 감각일까. 작가의 전작들을 두루 섭렵하는 동안, 나 또한 작가에게 친숙한 정()을 느끼게 된 탓일까. 정말 건널목의 유령이 존재했다면, 작가가 낸 결말에 충분히 만족했을 것이다. ‘이름 없는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돌아본 작가의 소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 초반부에 묘사된 기관사의 운전 장면이 굉장히 디테일하다. 초반부의 단 몇 페이지를 위해, 작가는 10여 권의 철도 서적을 읽고 전문가를 인터뷰했다고 한다. 역시 치밀한 자료 조사의 대가답다.

 

+ 왜 하필 1990년대가 배경인가. 90년대 과거의 일본을 보는 것은 신선했다. 작가의 말로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심령사진을 위조하는 일이 쉬워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작 K·N의 비극에선 빙의 현상이 도시가 문명화될수록 사라져간다며 그 이유를 과학의 진보와 합리주의 사고의 대중화라고 봤었다. 이렇듯 과학의 진보는 점점 공포의 영역을 몰아내고 있다. 나중에 가면 공포가 아날로그 시대의 옛 유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 한 장의 사진에서 살인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 주인공 마쓰다. 기자가 아니라 형사를 해야 할 재목 같은데요?

 

+ 2023년 나오키상 후보작이었으나 아쉽게도 수상이 불발되었다. 작가님이 나오키상을 한 번 타셨으면 좋겠는데…….

 

+ 설마 또 후속작을 10년 넘게 걸려서 내는 건 아니겠지? 다작까진 아니어도 지나친 과작은 바라진 않는다. 작품 활동 좀 자주 해주세요……! 제노사이드같은 스케일 큰 작품을 기다려봅니다.

 


 

법률을 만드는 것이 역할인 일본의 국회의원들이 스스로를 엄벌에 처하는 법률만은 절대로 제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p28

 

 

피해자가 양갓집 영애에다가 미인이었다면 각 언론사마다 집요하게 계속 취재를 벌였으리라. p89

 

불우한 운명에 저항하지도 못한 채 휩쓸리는 대로 살해됐던 여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기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가. () 마쓰다는 사진 속 여자에게 당신은 대체 누구냐고 물었다. p224

 

여성 그 아이는, 대체 무얼 위해 태어났던 거죠?”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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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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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엄청난 대작이다치밀한 자료 조사와 해박한 배경지식방대한 스케일과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깊은 성찰과 반성이 우러나오는 주제의식까지촘촘하게 깔린 복선과 유기적인 구성의 힘이 무시무시한 흡입력을 발휘하며 작품을 끝까지 완주하게 만든다시작부터 끝까지 완벽한 구성과 튼튼한 짜임새를 보여주는 소설참혹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이 배경인 데다가 인류의 본성과 미래에 대해 근원적인 비판을 가한다그래서 작품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무겁고 진지하다인간의 잔인함을 정면으로 비판하기에 다소 냉소적인 어투를 견지하나기본적으로 이 소설은 휴머니즘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책에서 일관된 목표는 생명의 구원이다어린 생명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의 필사적인 이야기다.

 

미국인 용병 조너선 예거는 아들의 목숨을 구하고자 아프리카 콩고의 광대한 밀림을 가로지르며 무장 세력과 치열한 전투를 치렀고일본인 대학원생 고가 겐토는 불치병에 걸린 아이들을 구하고자 자신이 잡힐 위험을 감수하며 신약을 개발한다소설은 주로 두 사람의 시점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작품의 무대는 일본과 콩고 두 나라가 대상이다. (소설에서 악의 축 역할을 담당한 미국의 백악관도 자주 등장한다.) 특히 콩고의 자연환경열대우림에 대한 묘사는 묘한 이질감과 생소함을 불러일으키는데대부분의 독자들은 콩고란 나라조차 낯설 것이다콩고 민주 공화국아프리카 중앙부에 위치한 나라이 나라의 역사는 알면 알수록 슬픈비극의 역사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특히 콩고에 대해서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아프리카에 제1차 아프리카 대전이 벌어졌었고(제 3차 세계대전이라 할 만큼 수많은 인명이 살상된 전쟁이었다), 제노사이드(대량의 인종 학살)가 있었다는 사실대학살이 벌어졌지만선진국의 외면과 무관심 탓에 국제적으로 공론화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작중에서 수만 명의 사람이 죽은 것보다 고릴라 일곱 마리 죽은 사건이 더 크게 보도된다는 일침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ㆍ 『제노사이드는 콩고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거론한다제노사이드피그미족반란군소년병 등……책을 읽은 후 관심이 생겨서 콩고를 비롯한 아프리카에 대한 정보 및 자료들을 찾아봤다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아프리카는 정말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또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에 무수한 나라들이 있건만관련 정보나 자료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것을 알았다지극히 단편적이거나 제한된 정보나 자료밖에 없다그만큼 우리나라가 관심이 없음을 증명한다예전이나지금이나.

 

내가 생각하기에 이 부분은 일본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동아시아의 선진국이 아프리카의 후진국에게 관심을 둘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경제적이나정치적이나 크게 연관성이 없음은 물론 국제적인 중요도도 떨어지는 나라니까대중적인 인지도도 비슷하다콩고는 대중의 시선을 끌만한 이슈가 전혀 없다관광자원이 전무하고 치안이 몹시 불안정해서 방문할 만한 나라가 아닌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콩고를 주목하고아프리카의 현 상황에 관심을 둔 작가의 소신과 용기에 솔직하게 탄복했다아울러 초강대국을 비판하는 작가의 용기에도 감탄했다그래서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이 책에서 언급되는 내용들은 위험 수위가 높다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전쟁 범죄와 정권 유착국제적인 고문과 정보 통제광범위한 감시와 인권 침해 등등 한 나라를 너무 노골적으로 겨냥하고 있다이 소설에 너무나도 위험한 키워드들이 가득해서 애셜론 시스템에 적발된 나머지미국에게 단단히 주의를 받은 건 아닐까그래서 작가님은 한동안 절필에 빠졌고 그래서 10년도 넘은 지금에야 신간을 출간할 수 있었다는 그런 말도 안되는 공상에 빠져봤다.

 

"스포 주의하세요"

 

콩고에서 조너선 예거 일행이 탈출하느냐그리고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의 치료약이 개발되느냐 여부는 소설의 중심 스토리이자 다두 문제 다 시한이 정해져 있고 시한이 지나면 생명이 위태롭기 때문에 이야기는 대단히 긴박하게 돌아간다이들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자 대적자가 무려 초강대국의 최고 권력자이기 때문에긴장감을 끝까지 놓칠 수 없다. ‘누스(NOUS)’를 말살하고자 하는 미국 대통령의 의지는 강력한 것이었다미국이 적이 되었을 때의 상황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그러나 그에 맞서는 누스는 인간을 아득하게 초월하는 지성을 가진 존재초강대국 미국이 행사하는 최첨단 과학 기술의 힘을 누스는 초인적인 지성의 힘으로 물리친다그렇기에 콩고 중앙부 밀림의 한복판에서 일본까지 오는 이 여정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열악한 교통 인프라에스무 개가 넘는 무장 집단에미국의 집요한 방해와 파괴 공작 등 갖가지 악조건들을 돌파하고 일본에 당도하는 여정은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장대했다. (그래서 영화화가 안 됐나?)

 

ㆍ 『제노사이드의 발단이 된 존재 누스’. 현생인류에서 진화한 다음 세대의 인류다현생인류를 압도하는 지성을 가진 존재의 지적 능력에 대해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제 4차원의 이해전체의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점제 6감의 획득무한히 발달한 도덕의식 보유특히 우리의 지적 능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신적 특질의 소유(p247)’. 책에서 설명한 것처럼 누스는 그 지성을 활용해서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는데그 활약에 요구되는 배경지식조차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누스를 설정한 작가는 인간종이 맞을 텐데……내 머리의 한계이겠지아무튼 누스가 만약 실존한다면우리 인간은 누스에 자비를 구하며 그의 인도에 전적으로 따라야 하지 않을까그러나 아직도 인간이 어리석은 행위를 반복하며 전쟁을 일삼는 것을 보면다음 세대로의 진화는 이뤄지지 않았나보다.

 

책을 읽으며나도 주인공 일행의 여정을 함께하는 기분이었다콩고에서 무사히 탈출했을 때 적잖이 안도했다그만큼 몰입감이 컸다는 얘기다숨 가쁘게 달려오는 여정이 마침내 끝날 때진한 감동과 여운이 몰려왔다그리고 굳건한 마음이 들었다제노사이드는 더이상 없어져야 한다제 3세계의 비극은 다시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이 지구상에는 여전히 폭력과 살육이 횡행하고 있지만사람들이 평화를 추구하는 마음을 공유한다면평화는 최대한 확장되지 않을까그렇다면 적어도 이 책이 말하는 의미가 무익하지는 않겠지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최악의 경우가 되기까지 놔둘 정도로인간이 타락하지는 않았으니까우리 인간의 지성과 도덕성을 믿는다.

 

 


 

 

예거 일행이 콩고 밀림에 진입했을 때침팬지와 원숭이들의 싸움을 목도한다원시적인 비경(秘經)의 주인들그리고 난폭하고도 잔혹한 광기의 살육 현장아기 원숭이의 고통이 어서 끝나길 바라면서한편으로 자연 환경의 순리와 법칙에 위배되는 인간의 개입에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 <하이즈먼 리포트>는 인류 멸망의 여러 가지 요인을 언급하고 있다우주적인 규모의 화재지구적인 규모의 환경 변동핵전쟁역병인류의 진화 등이다(여기서 인류의 진화가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 작가님다른 요인도 소설의 소재가 될 만한 요건을 충분히 갖췄는데 소설화해보실 생각 없으십니까제노사이드』 같은 대작을 기다립니다……!

 

이 책의 중심 소재가 신약 개발이고 등장인물들이 이공계 종사자라서이과 계열의 전공 지식들이 대거 등장한다문과인 나로선 그들의 대화가 대단히 낯설었다거울 나라의 우유반데르발스 힘공유 결합 등의 표현을 보면 이과 애들은 이러고 노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낯선 세계다……이후 본격적으로 신약 개발에 따른 전문적인 용어와 설명이 나올 때 나는 이해를 포기했다너무나도 어렵다대여섯 번째 읽는데도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나에겐 평생 상종할 수 없는 영역일 듯이 어려운 소재를 이야기로 풀어낸 작가가 그저 대단할 뿐이었다작가님 영화 감독 지망생이었다면 문과 출신 아닌가요소설가로서의 능력도 대단한데 이과 계열의 지식까지 갖췄다니 작가님이야말로 천재 아닐까요당신은 문학계의 누스입니다.

 

제노사이드에서는 한국인이 등장한다그것도 중요 등장인물로작가는 한국인을 등장시키면서 한국인만이 공유하는 에 대해서 설명하는가 하면한일 양국간의 민감한 사안을 부각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관동 대지진과 난징 대학살을 일본인이 저지른 제노사이드라 정의하는데이를 두고 일본에서는 불편한 심기를 노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게다가 작가는 용병들 중에서 굳이 일본인 용병을 부정적인 이미지로 등장시키고그에게 가차 없이 비참한 운명을 선사한다전작에서부터 사회 비판적인 성향을 가진 작가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자국에 대해서도 이 정도까지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선과 감각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한국인의 입장으로선자국이 저지른 잘못을 과감히 인정하고 적시하는 작가의 소신에감사하고 경탄할 따름이다작가의 말처럼 시대는 변하고 있다선조가 어리석으면 후손이 고생하기 마련(p171)이라는 작가작가 같은 일본인이 있어서양심적인 일본인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피그미 족의 타고난 선량함과 평화주의를 보면서그들이 받는 가혹한 대접에 분노감이 들었다인간에게 적대적인 환경의 밀림에서 몇 만 년을 살아오며 숲과의 공존을 터득한 지혜로운 이들그런데 이들은 정부에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국적이 없다심지어 현지의 인간들은 피그미 족을 식량 취급한다사냥해서 요리한다는 대목은 끔찍했다더불어 콩고의 실태무장 집단의 잔인무도한 유린과 학살그리고 소년병의 현실에 대해서 경악했다정말이지 인간의 잔인함은 어디까지란 말인가란 생각이 들었다누스가 우리 인간종을 멸시해도 할 말이 없다이런 미개하고 비도덕적인 종족이 있겠나 싶겠지.

 

아버지의 부정(父情)이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고가 세이지의 부정조너선 예거의 부정그리고 누스 아키리의 아버지인 피그미족 에시모의 부정특히 아키리와 에시모의 이별은 애틋했다원치 않은 생이별을 해야 하는 두 사람……아키리가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유일한 장면이었다초월적인 지성을 가졌으니까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혈육의 정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누스의 냉담한 태도를 그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는 무기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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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별, 우주를 말하다 - 불가해한 우주의 실체, 인류의 열망에 대하여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 지음, 유영미 옮김, 이희원 감수 / 갈매나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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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분야 책을 여럿 읽어왔다. 그래봤자 내가 읽을 수 있는 수준은 대중적인 교양서적 수준이다. 그래도 어려워서 이해를 하지 못한 부분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읽어온 천문학 관련 책들 중에서 이해도가 가장 쉬운 편에 속한다. 한마디로 설명이 간편하다. 이해하기가 쉬운 내용들이다. 전공 서적들을 접근하기 어려운 점 중 하나가 전문용어 사용이다. 특히 천문학의 경우, 전문용어뿐만 아니라 관련이론 및 지식에 대한 난도가 높다. 이 책 또한 전문용어와 이론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책은 친절한 설명을 통해 이해를 돕고 있다.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 실생활을 응용한 예시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 천문학 책치고 컬러 사진이나 도판이 없지만, 없어도 책을 읽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물론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일관된 흐름이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은 제목이 의미하듯 100개의 별에 대한 이야기인데, 100개의 별이 다 다른 것처럼 이야기 또한 독립적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 차례대로 읽지 않고 아무 곳이나 펴서 읽을 수 있게끔 각 꼭지가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다(p9). 이 책에서 소개된 100개의 별은 천문학을 어려워하는 이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이자 안내자 역할을 한다. 각 별에 얽힌 흥미진진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관련된 이론 및 지식을 연관해서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사례와 연관된 이론 및 지식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에는 최신 천문학계의 이슈가 반영되어 있다. 여태 몰랐던 기존 지식과 함께 새로운 부분들을 업데이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책에 소개되는 100개의 별들은 각각 개성이 뚜렷하다. 몇 개의 기억나는 별만 소개해본다.

 

1. 실패한 별

 

별은 수명을 갖고 있다. 별은 에너지를 생산함으로써 빛을 발한다. 빛을 낼 수 없으면 별(항성)이 아니다. 그건 행성이다. 별은 가진 에너지를 소진하면서 빛을 낸다. 에너지를 소진할수록, 별의 생애는 마지막을 향해간다. 가진 질량에 따라 별은 단계를 밟고 다양한 모습으로 종말을 맞는다. 적색 왜성, 백색 왜성, 그리고 무시무시한 블랙홀까지. 참고로 우리의 태양은 백색 왜성이 될 예정이다. 

항성과 행성. 이 둘의 구분은 앞서 말했듯 빛을 낼 수 있는 여부에 따라 갈려진다. 그런데 둘 사이에 또 다른 존재가 있다. 갈색 왜성이라 부르는 존재다. 별과 행성의 중간쯤 되는 천체다. 별과 비스름하게 빛나기는 하지만, 밝기가 훨씬 약하고 수명도 길지 않는 존재들. 1995년 에스파냐 천체물리학 연구소 팀이 갈색왜성 테이데1’을 발견함으로써, 공식적으로 갈색왜성의 존재를 증명하는데 성공했다.

현재 발견한 갈색왜성은 우리 은하에서만 몇만 개라고 한다. 갈색왜성을 통해, 항성과 행성을 가르는 명확한 경계선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주에는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 천문학의 이론과 공식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 바로 천문학의 묘미다.

 

2. 방랑하는 행성 

지구는 태양계에 속해 있다. 항성이 있고, 그 항성을 중심으로 행성들이 돌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우주의 법칙. 그런데 그 법칙을 거부하는 행성들이 있다. 어느 별에도 속하지 않은 채 방랑하는 행성이 우리 은하에만 무려 4,000억 개에 이른다(p92).

 

왜 이들은 별을 떠났을까. 태양도 초창기엔 수십 개의 행성을 갖고 있었다고 예상한다. 행성들은 서로의 중력으로 인한 불안정한 궤도 탓에 서로 충돌했다. 달도 45억 년 전, 지구와 다른 행성의 충돌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었다(p93). 충돌 결과 지구와 7개의 형제 행성들은 태양 옆에 남았다. 다른 행성들은 파괴되었거나 혼자서 우주를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지구가 다른 행성과의 충돌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우리 인류에게는 무척 다행인 일이다.

 

3. 흑색 왜성 

흑색 왜성은 현재까지는 이론적으로 존재하는 별이다. 차갑고 어두운 죽은 천체. 별이 당도할 수 있는 마지막의 마지막. 흑색 왜성은 백색 왜성의 다음 단계로써, 백색 왜성이 한참이나 먼 시간이 흐른 뒤 도달하는 단계다. 백색 왜성은 별처럼 빛을 내지는 못해도, 여전히 뜨거운 물질로 이루어진 어마어마한 질량 덩어리(p150). 그 열이 식으려면 걸리는 시간이 최소 1,000조 이상. 138억 년 된 우리 우주의 시간으로서도 아득한 시간이다.

 

4. 회춘한 별 

청색 낙오성이라 불리는 게자리 40. 이 별은 밝고 파르스름한 빛을 내고 있다. 푸른 색을 내는 파란 별은 젊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별이 위치한 성단의 다른 별들은 이미 오래 전 적색거성이 된 상태. 모든 별이 같은 시기에 태어났을 텐데 왜 이 별은 젊을까?

 

회춘 비결은 다른 별에 있었다. 근처에 있는 쌍성으로부터 물질을 뺏어오는 것이었다. 다른 별이 먼저 죽어가고 있을 때, 그 죽어가는 별에서 흘러나오는 물질을 가로챈 것이다. 게자리 40은 더 강력한 회춘 요법을 사용했다. 다른 별과 충돌해서, 하나의 큰 별로써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이다. 게자리 40회춘한 별이라 불리는 이유다.

 

5. 초록 별 

우리는 하얀 별, 붉은 별, 노란 별, 파란 별을 볼 수 있지만, 초록 별은 볼 수 없다. 초록 별은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관측된 바가 없다. 초록 별은 어ᄍᅠᆯ 수 없이 희게 보인다. 그 이유는 별이 흑체이기 때문이다(p309).

흑체는 자신에게 도착하는 모든 광선을 흡수하면서, 복사에너지를 방출한다. 별은 여러 색깔의 빛으로 된 복사 에너지를 방출한다. 붉게 빛나는 별도 늘 파란빛, 노란빛, 초록빛을 방출한다(p309). 방출하는 복사선의 빛에 따라 별의 색깔이 달라지는 것이다. 태양은 초록 파장의 빛을 방출하는데, 우리 눈에는 초록색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 눈 때문이다. 눈의 수용체는 붉은빛, 노란빛, 파란빛 등의 다양한 빛을 각각 구분해서 보지 못한다. 여러 색의 혼합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태양을 희고 노란빛으로 인식하게 된다.

 정말 초록색 별을 보고 싶다면, 초록 파장의 빛만 내는 별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하다(p311). 아쉽게도 초록별은 우리 상상 속, 혹은 SF 영화에서나 찾을 수 있는 별인가 보다.

 

6. 트라피스트-1

트라피스트-1이라 명명된 이 별보다는, 이 별에 딸린 행성이 더 중요하다. 2017, 이 행성 은 제2의 지구로 소개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천문학의 최대 관심사가 무엇일까?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찾는 것 아닐까? 지구처럼 생명체가 서식 가능한 행성을 찾는 것은 인류의 가장 큰 화두 아닌가.

이 행성은 가능성이 높은 행성이다. 서식 가능하다고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서식 가능 지역에 있는 행성이다. 이 행성이 추후 서식 불가능한 행성으로 판명되더라도, 발달된 과학은 언젠가 제2의 지구를 찾아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별과 우주에 얽힌 다양한 이론과 학설을 소개하고 있다. 밝혀진 부분도 있고, 밝히지 못한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 인류가 밝히지 못한 부분들, 모르는 부분들이 더 많다. 시간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과연 우리 인류가 우주가 가진 비밀을 100% 다 알아낼 수 있을까. 아득한 시간의 흐름 속 펼쳐진 우주적 공간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덧1. 천문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여성 천문학자들도 큰 기여를 했다. 그녀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남성 천문학자들의 보조 역할에 그쳤다. 관측 데이터를 기록하고 수학적 계산을 하거나 망원경을 정리·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단순하고 지루한 일을 반복하는 가운데, 그녀들은 데이터 속에서 법칙을 발견하고 이론을 확립했다. 캐롤라인 허셜, 헨리에타 레빗, 세실리아 페인. 남자 천문학자들에 버금가는 위대한 여성 천문학자들이다.  

 

덧2. 별과 달리 행성은 빛을 낼 수 없다. 때문에 별과 달리 멀고먼 거리의 행성들은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 행성을 직접 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 불가능에 가깝다고 표현한다. 그래도 천문학자들은 행성을 관측한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행성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관측된다. 행성이 별을 지나갈 때 흔들림이나 간격을 통해 존재를 확인해 온 것이다. 이외에도 별의 내부를 확인하는 데 성진학을 활용한다든가, 천문학자들은 광대하고 무한한 우주의 모든 것을 직접 볼 수 없는 대신, 다양한 간접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진리를 밝혀내는 데 매진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들의 노고가 특별하게 다가왔다.

 

덧3. 책에 들어가기 전, 이런 말이 나온다.

"수많은 세계가 우리의 발견을 기다리고 있다. 우주는 광대하고, 무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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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이 파리 - 여행을 즐기는 가장 빠른 방법, 2023년 최신 개정판 인조이 세계여행 11
김지선.문은정 지음 / 넥서스BOOKS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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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1월에 프랑스 파리를 간다!

글을 쓰는 시점에서 비행기를 타기까지 딱 한 달 남았다……♥

원래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 출간된 가이드북을 다 보고 간다. 오랫동안의 팬데믹 때문에 여행 가이드북도 오랫동안 중단된 상태였다. 이제 여행 재개가 되니까 최신 가이드북이 점차 간행되고 있다. 넥서스의 <인조이 시리즈> 또한 코로나19를 반영한 최신판을 내고 있다. 그 최신판 중 첫 타자가 《인조이파리》라는 사실!!



 

22년 최신판으로 출간된 《인조이파리》!

판형과 디자인은 지난 <인조이 시리즈>의 것을 그대로 따른, 익숙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 《인조이파리》의 특징을 살펴볼까요??

 


 

일정별, 테마별로 코스를 추천하고 있다.

파리는 신혼여행으로 많이 가는 곳이니만큼, 신혼 부부를 위한 로맨틱 코스도 수록되어 있다! 나는 신혼 여행을 가는 것은 아니지만, 괜히 찍어봤다. ㅋㅋ

 


 

 

코로나19로 현지 상황이 많이 달라진 만큼, 가이드북도 최신 정보를 반영하였다.

예를 들어 운영일과 시간, 요금 등의 정보는 22년 기준 최신 정보를 반영한 것이다 또한 노트르담 성당의 경우, 2019년 화재로 내부 관람은 불가능하다는 정보가 있었다. 아직도 복원 공사를 하고 있구나…….이번에 갈때 노트르담은 외부만 구경하는 걸로……!! ㅜㅜ

 

 


 

미술관, 박물관에 대한 안내 및 정보도 충실하게 수록되어 있다.

한글로 표기된 지도는 물론이고, 필수 작품들에 대한 내용도 상세하게 수록했다. 루브르를 갈 때 매우 유용하겠는걸? 생각보다 다양한 작품들에 대한 해설이 많았다.

 



 

 

《인조이파리》에는 파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파리 근교 도시에 대한 안내 정보도 있다. 필수 코스인 베르사유 궁전은 물론, 몽생미셸 수도원, 루아르 일대의 고성들, 디즈니랜드 등등 소도시 및 테마파크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특히 스트라스부르의 경우, 웬만한 파리 가이드북에는 잘 없는 지역이다. 게다가 최근 교통편 개선으로 2시간 20분으로 단축되었다는 정보는 매우 유용했다! 이전 검색하기론 3~4시간 걸리는 걸로 나왔는데, 불과 2시간 20분이라니!! 이번 파리 여행에서 스트라스부르를 꼭 다녀와야겠다!!

 


 

 

프랑스에는 명품 브랜드가 많은 거 아시죠?

여자들의 로망, 샤넬과 디올 등등이 있는 곳! 가이드북에서 알게 된 깨알 같은 최신 정보 하나 더!! 22년 디올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과 함께 디올 갤러리에 대한 안내 정보가 있었다. 가이드북을 보지 않았더라면 미처 몰랐을 뻔했다!! 디올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컬러별로 구성된 디올 제품 미니어처가 전시되어 있는 포토존도 있어서 패션을 사랑하는 여성 여행자들이라면 꼭 방문해야 할 핫플레이스일 듯싶다!! 나도 반드시 갈거다. ㅋㅋㅋ

 

 

아무래도 곧 여행을 가다보니까 가이드북을 정독할 수밖에 없었다.

가이드북에 소개된 다양한 관광지들에 대한 정보를 보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 계획을 짜봤다. 가이드북 덕분에 보다 더 효율적인 여행 동선을 짤 것 같다. 그리고 코로나19로 달라진 정보 습득 포함, 새로운 관광지에 대해 알게 돼서 무척 기분이 좋다. 파리에 갈 때 필수로 가지고 갈 《인조이파리》! 실제 여행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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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뢰성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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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키상 수상을 포함해 일본 미스터리 4대 랭킹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10>,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10>,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신기록을 세운 소설흑뢰성화려한 타이틀답게 출판사에서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하고 있었다리뷰 및 피드도 활발했다역사소설의 왕도와 미스터리의 정수를 모두 성취한 걸작이라고 한다내게 있어 역사+미스터리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조합이라……호기심을 가지고 읽었다.

 

이 책은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게다가 책의 주인공은 가장 유명한 전국시대의 삼걸이 아니다삼걸은 이름만 언급될 뿐직접 등장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주인공은 한때 오다 노부나가 휘하의 무장이었던 아라키 무라시게다소설은 그가 노부나가에 반기를 들고아리오카 성에서 농성을 하는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한편 무라시게를 설득하기 위해 오다 측에서 군사(君師구로다 간베에가 찾아오는데무라시게는 간베에를 감옥에 가둔다.

 

초반부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다이 책진입 장벽이 높겠다는 생각전국시대라는 배경이 안그래도 낯선데다가전국시대 당시의 인명?지명?관직 등이 독자를 매우 혼란스럽게 만든다예를 들어 주인공 아라키 무라시게는 과거에 불리던 이름이 따로 있었고관직명으로 지칭되기도 한다한데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또 전국시대의 유명 인사들이 등장하지만유명세를 떨치기 전의 이름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하시바 지쿠젠이 단적인 예다이후 히데요시란 이름이 나오지만그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임을 한번에 알아차리는 독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또한 이야기는 아라키 성을 주 무대로 진행되므로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무라시게의 사람들이다초반부터 부하들이 대거 증장해서헷갈렸다처음 등장했을 때 인물이 소개된 부분을 출판사 측에서 등장인물 표를 제시해줬다면 더 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경우에는 이미 대망을 독파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전국시대에 대해 약간의 배경지식이 있어서인지내용이 무척 흥미로웠다전국시대의 역사적 흐름을 배경으로그 사이의 공백을 채운 작가의 절묘한 상상력에 감탄하며 읽었다역사적 미스터리를 소설적 상상력으로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작가의 솜씨가 일품이었다탄탄한 구성과 정교한 서술이 돋보이는 각 장그리고 그 과정들이 응집된 결말에 탄복했다인과가 움직이기 시작했고마침내 인과가 돌아온다수미상응의 완벽한 구성구성과 전개가 완벽했다평단의 호평이 이해가 갔다.

 

또 소설은 주요 등장인물의 내면 심리를 묘사하는 부분에서도 나무랄 데가 없다아라키 무라시게와 구로다 간베에두 인물의 심리를 쫓는 것도 책을 읽는 또다른 재미였다특히 주인공 무라시게는 결말을 생각하면 참 모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작가는 그 모순이 캐릭터성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결말이 합당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심리 묘사에 공을 들였다아라오키 성의 성주이자 아라키 가문의 당주로서 굳건하고 강직한 모습을 보이던 무라시게그가 시간이 지날수록 흔들리고 번민하다가결말 부분에서 의외의 모습으로 변모하는 장면은 어떤 의미에서는 전율이었다.

 

구로다 간베에도 흥미로운 인물이다그는 작중에서 싱그러운외모가 아름다운 무사(p18)라고 묘사된다그랬던 그가 지하감옥에 갇히고 난 뒤가혹한 환경에서 버티느라 몰골이 말도 안 되게 변해버린다간수에게 맞아서 머리에 끔찍한 흉터가 생기고 오랫동안 움직이지 못한 탓에 절름발이가 되어버린다안타까웠다……한데 간베에의 진가는 외모가 아니라 두뇌에 있다무라시게는 성내에서 기괴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간베에의 지혜를 빌리러 지하감옥으로 내려간다간베에는 안락의자형 탐정에 가까운데무라시게의 말만 듣고 사건의 진상을 맞추는 비범한 통찰력을 보인다역사가 곧 스포간베에의 미래를 알고 있는 이상 느긋한 마음으로 그의 활약을 지켜보았다그의 비범함은 특히 결말에서 빛난다또한 무라시게와 달리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해피엔딩을 맞이한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땐 무협소설인가했던 흑뢰성(‘흑뢰성은 간베에가 갇힌 감옥을 의미한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가 활동 20년이 응축된 기념비적인 걸작이라 생각한다요네자와의 책으로는 왕과 서커스를 읽었을 뿐인데그때에 비한다면 작가로서의 기량이 절정에 올랐음을이 책을 보며 느꼈다흥행성과 작품성을 거머쥔 보기 드문 작품이다간만에 묵직한 중량감을 제대로 느끼며 읽은 역사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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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국시대 문화

 

무사에게 투구는 중요했다신분을 증명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또한 무사들에게 전투에 있어 수훈을 세우는 방법 중 하나는 투구 쓴 무사의 목을 치는 일이었다그것도 직접 칼로 쳐야 했다활과 철포는 확인할 길이 없으므로 수훈으로 인정받기가 어려웠다투구 쓴 머리를 베는 것은 이름 있는 적을 쓰러뜨렸다는 최고의 증거(p189). 반면 졸병은 아무리 쳐도 공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조금 씁쓸했다.

한편 무사가 가져온 투구 쓴 머리는 사화장을 해야 한다오물을 씻어내고 보기 좋게 꾸미기 위함이다적이라 해도 그 대우는 같았다작중에서는 적의 벤 머리가 흉상(凶相)으로 변한 것이 문제가 되는데흉상을 묘사하는 부분은 꽤 오싹했던 장면이었다.

 

2. 이 소설에서 가장 중대한 적으로 등장하는 오다 노부나가적이므로 그의 잔인한 행적들이 부각되어 나타난다그런데 그 잔인한 행적이 거짓이 아닌 사실이라는 점어쩌면 결말에 제시된 노부나가의 최후 또한 이 소설에서 강조하는 인과가 적용된 경우일 수도 있겠다.

 

3.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딱 한 번 언급된다.

 

4. 전국시대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참 많구나작가님다음엔 아케치 미쓰히데를 주인공으로 해서혼노지의 변을 다뤄보심이 어떠하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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