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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All 예수로 충분합니다
튤리안 차비진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의미를 말씀에서 다시 찾으라 한다면 나는 갈라디아서 3장 3절이라고 하겠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3:3) 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진즉 삶은 육체의 바벨탑을 쌓아가는 형국이라는 웃지못할 현실을 깨닫게 한다.
저자의 고백이 남일 같지 않았다.
나역시 세상의 욕심과 나의 명예를 위해 나만의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면서 주님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
늘 핑계와 회피만 할 뿐, 예수님을 나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늘 평안과 기쁨보다는 두려움과 불안,초조했고,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늘 결과에 연연해 할수 밖에 없었다.
임마누엘의 주님을 누리지 못하는 바보같은 삶이 었다.
감사하게도 그런 내 삶에 소망이 사라져 버렸다. 지금에서야 감사할 일이지만 내가 전부라고 생각했고,
하나님께서도 이것만은 나에게 허락하셔야 한다는 나의 그 1%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얼마나 버텼던가.
부끄럽지만 나의 1% 자존심이였다. 누구보다도 우월하고 싶었다.
예수를 믿어도 사람앞에서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전도할때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늘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최근 나의 명예를 깎는 일만 생겼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내 명예가 실추되는 일의 연속으로 너무 괴로운 시간들이
나를 예수님으로부터 떠나게 했다. 자존심이 상하고 괴로웠다. 사람의 원망과 불평들이 하나님에게로 이어졌다.
왜 나를 이렇게 만들어버리셨는지 기도하고 묻기보다 들을 생각없이 따지기만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어쩔 수 없는 상황을 허락하셔서 주님앞으로 이끄셨고 4일간의 힘겨루기끝에 나의 항복을 받으셨다.
주님께 항복 할 수 밖에 없도록 나에게 부어주시는 은혜가 너무 감사했ㄷㅏ. 저자도 이야기했지만
율법주의를 굴복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뿐이다.
내가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오로지 주님의 은혜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껴야만 내 삶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책은 그 은혜를 이야기한다. 그 은혜만으로 충분하냐고 물으며 예수면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나름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길게 하다보면
왠지모를 공허감을 느끼고 나눌때가 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으며 살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에서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교회생활에서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나아가 인생의 낙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예수 더하기 '그 무엇'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예수님도 좋지만 그것에 만족할 수 없어 일을 벌리기 시작한다.
명분은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전혀 복음과 상관 없는 것들을 만들어낸다. 실예로, 교회 안에서 성경공부반은 없지만
악기교실은 진행하고 있는 아니러니한 현실이 그렇다. 선교와 전도라는 이름으로 성경을 떠나고 예수를 떠나 또다른 무엇을 찾아가는 것이
지금의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야기한다.
예수님만으로 충분하고 예수님만이 소망이라고 말이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실때, 마르지 않은 샘물이 내 안에서 흘러가고, 우리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다른 어느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그 마음이 예수님만으로 채워질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더, 더, 더!" 의 세상의 기조를 따르지만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음 "빼고, 빼고, 빼서, 오직 예수만 남는 것!'이다.
불순물들을 제거 하고 나중엔 결국 '나'까지 죽어지고 예수로 사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 인이다.
우리가 입으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 그대로 살아내는 것 그것이 신앙이다
주님 한분만으로 나는 만족해!라고 말은 쉽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말 처럼 살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명품백이 좋은 차가 더 넓은 집이 유혹하는 그 손길들을 뿌리 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빈곤한 삶을 선택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이외에 덧붙히기 했던 것들을 떼어낼 수 있냐는 것이다.
더 좋은 학교, 더좋은 직장, 더 예쁘고 잘난 배우자 보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자하는 결단을 했는가 말이다.
이것은 결코 주님앞에 우리가 희생하고 포기하라는 강요가 아니다.
어느 목사님의 설교에서 처럼 다이아몬드를 줄테니 손에 든 유리구슬을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데 그게 눈에 보여지지 않는 것이니 우리는 보여지는 유리구슬을 내려 놓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과 교제하며 날마다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이라면 더이상 유리구슬은 빛나 보이지 않는다.
"바다를 본 사람에게 호수는 더이상 물이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지금 매어있는 '그 무엇'으로 부터 벗어나길 주님은 원하신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이 나를 자유롭게 하고 나를 충만하게 하시는 분임을 알길 원한다.
예수님은 나를 떠나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고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를 먹이고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신다.
그 예수님을 만나고, 그 예수님으로 말미아 암아 살아가며,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이땅에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천국은 보여지는 공간적인 의미로만이 아니라 내 안에 임재되어지고 누려지는 실제적의미라고 생각한다.
예수님만으로 충분함 삶으로 고백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소망한다.
반복되는 삶속에서 "이제는 예수님을 믿어도 다른게 없어"라고 좌절하고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소망이되고 기쁨이 될 것이라 확신하며, 다시금 우리를 일으켜주시는 주님의 손길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