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동물들 가운데 내가 "개"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특별한 것 같다.
오랜 시간 인간과 함께 생활해오면서 친근한 동물이기도 하고 초롱초롱한 눈을 보고 있으면 뭐라고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주인에게 충성하는
개들의 사연을 보고 듣고 있으면 말만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릴 적 추억도 한 몫하는 것 같다. 추위에 떨고 있던 강아지를 발견해 잠깐 돌봐준 적이 있는데 워낙 영특하고 예뻤던 "얌순이"가 전해
준 추억은 무척 소중하고 특별하게 자리잡아있다.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에 대한 로망은 있었지만 부모님이 원하지 않았기에 먼 꿈이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보름정도 주인이 맡기고 간
마르티스를 키우게 되었는데 그 짧은 시간동안 사람 속을 훤희 읽으며 말을 못해도 많은 것을 전해주던 "복실이"가 본주인에게 돌아가자 정말 많이
서운했다.
그래서 나 먼저 떠나버리거나 나 없이 남겨질 반려견을 볼 자신이 없기에 키울 생각은 못하지만 "개"는 나에게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존재로 자리잡은 것 같다.
1916년 생인 제임스 해리엇이 수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데는 개를 사랑하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직업이라는 판단에서였지만 막상 그 시절,
그리고 그가 일하던 푸른초원에서 그가 제일 많이 만나는 동물은 말, 소, 돼지였으며 그 다음이 개였다고 한다. 큰 동물들을 만나다 가끔씩 만나는
개는 그에게 큰 휴식이자 즐거움이 되었고 그가 만나고 돌봐 온 많은 개들과의 추억을 50세부터 글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써낸
글들은 오랜시간, 세계의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왔으며 이 책은 그가 쓴 이야기들 중에서 31편의 재밌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애견들에 관한 에세이이다.
가난한 노인이 키우던 늙은 개 보비가 암에 걸려 결국 안락사를 선택하게 되고 어려운 그의 형편을 짐작해 그냥 돌아가려는 해리엇에게 시가를
건넨 이야기, 반려견을 잃고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는 부인이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헛간에 방치된 채 엉덩이에 욕창이 생겨
안락사되려는 강아지를 데려다 멋지게 키워낸 이야기, 공을 삼킬뻔 해 죽었다고 생각한 개가 미비하게 뛰는 심장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야기,
그리고 수의사인 그의 직업덕분에 사랑하던 여자 헬렌을 아내로 만나게 된 이야기...그가 들려주는 여러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푸른 초원 대러비에
살고있는 개들의 모습과 그들을 사랑해주는 주인들 그리고 수의사로서 열심히 일해가는 해리엇의 모습이 그려진다.
읽고나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 하나는 눈에 염증으로 눈이 잘 떠지지 않는 개 미키의 사연이다.
양지기 개에서 은퇴한 미키는 늙어서 쇠약한 주인만큼 늙은 개인데 눈감기에 걸려 눈이 안보이는 거라며 태평한 주인을 대신해 주인이 즐겨찾는
펍의 단골들이 돈을 모아 미키의 수술비를 마련하고 그들의 응원 덕에 밝은세상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가장 마음이 아팠던 이야기는 동네에서 악동으로 소문한 10세 소년이 어느 날 병든 듀크를 살려달라고 헤이엇을 찾아왔다. 가망이
크지않았지만 조금의 희망에도 자신의 강아지를 살리겠다며 신문배달을 하고 착실하게 돈을 모아 강아지 치료와 먹이로 정성을 다했던 소년. 그러던 중
악화된 강아지를 보러 아이의 집에 방문한 헤리엇은 불우한 소년의 환경속에서 전부였을 강아지에게 고통대신 안락사로 편안함을 전해주게 된다.
수의사의 입장에서 만나게 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나 보람있었던 사연들, 기적을 발견하거나 슬픔을 만나거나...해리엇이 기억하는 개들과
엮여있는 추억들, 과거를 회상하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감상들을 느낄 수 있는 수의사 해리엇의 이야기들이었다. 실제 그는 책의 어마어마한
성공에도 청빈하고 온화한 시골 수의사로 살았다고 하니 책속의 그가 더 인자하게 느껴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