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2월
평점 :
출간되는 책의 출판사 소개글을 읽으면서 괜시리 이야기를 예상하며 그려보곤 한다. 때로는 그 예상과 비슷하게 전개되기도 하고 때로는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전개에 더 흥미롭기도 하고...
이 책의 소개글을 읽으면서 예상한 스토리는 사고로 아내를 잃은 남편이 뒤늦게 아내를 사랑했음을 깨닫고 뒤늦은 후회를 한다로 예상했는데...막상 책을 읽으면서 느낀 분위기는 예상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폭발하는 감정없이...특별하다는 사건없이 잔잔한 일상속에서 고백하듯 던져지는 표현들로 슬며시 전달되는 감정들은 뒤늦은 사랑보다는 뒤늦은 미안함이 더 큰게 아닌가 싶다.
유명한 인기 소설가 사치오는 여고동창생과 매년 떠나는 여행길을 나선 아내 나쓰코가 버스사고로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게된다. 아내임을 확인하러 가서도...아내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사치오는 울부짖는 다른 유족들과 다르게 담담하며 함께 떠난 아내의 친구 유키의 남편 요이치가 이성을 잃고 버스회사 관계자들에게 화를 내는 것과 대조적이다. 나쁘지 않았던 부부사이였지만 그만큼 벌어져있던 틈이 깊었던 걸까?? 다만 아내의 사고가 일어나던 그 시간에 다른 여자와 있었다는 사실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평소와 다르지 않게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사치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친구 유키의 남편 요이치로부터 연락이 오게되고...
아내와 엄마의 부재를 실감하며 트럭운전으로 아이들을 챙기기 힘든 그의 상황과 어린 동생을 챙겨야하는 아들 신페이가 명문중학교 입시를 포기한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사치오는 덥썩 일주일에 두번 아이들의 방과후를 책임지겠다고 선언한다.
자식도 없는 삶을 선택해 살아온 사치오는 그렇게 신페이와 아카리의 또 다른 보호자로 함께하게 되고 서서히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로 자리잡으며 희한한 가족구성원에 속해간다.
요이치가족에게 새로이 중요하게 인식되는 인물이 등장하자 묘한 질투심까지 느끼게 되는데...
그렇게 함께 지내가는 시간이 흐르고 자신의 위치를 인정받고 싶어질때쯤...
불연듯 자신과 아내의 한때가 문득문득 떠오른다.
아내에게 던진 그 한마디가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지...
그리고 요이치가 유키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은 아내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뒤늦게 아내의 남겨진 휴대폰에서 뜻밖에 남겨진 메세지를 보며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는 건 무엇인지..요이치가족에 합류한 채 조금씩 변해가는 사치오는 뒤늦게 아내에게 아주 긴변명을 늘어놓는다.
친하게 지내던 사이에도 갑작스러운 관계의 변화가 생기곤 하는데 그게 어떤 상황의 변화에서인지 감정의 문제인지 여러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나쓰코와 사치오...이 부부는 어느 새 변해버린 상황에 솔직한 감정을 내보이지 못한 채 서서히 그대로 굳어간게 아닐까 싶다. 이미 굳어져서 변경하기조차 무색한...
명예와 풍족함을 얻는 사이 부부간의 관심과 애정을 변해가고...
아내를 잃는 사고를 통해 뒤늦게 아내가 느꼈을 감점을 되짚어버린...
하나를 얻었지만 하나를 잃었고 소중한 걸 잃고 나서야 소중했다는 걸 얻어버린...
만일 사고가 나지 않은채 살아갔다면 두 사람은 무덤덤하게 헤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걸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일상의 이야기를 서술해가는 이 작품을 잔잔한 영화보듯이 따라갔던 것 같다. 늦었지만 그녀의 마음을 되짚어보며 살아있는 동안 그녀의 존재를 기억해주는 것이 긴 변명의 대답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