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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이자벨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8월
평점 :

1977년 하버드 로스쿨 진학을 앞둔 21살의 샘은 입학하기 전 몇 달간 파리에 머물 생각으로 미국을 떠나온다. 호텔에 머물며 알게 된 폴을 통해 서점에서 열리는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샘은 그 곳에서 번역가로 일하는 36살의 이자벨을 만난다. 왼손 4번째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끼고 있는 그녀가 전해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 샘은 오후 5시 이자벨의 사무실에서 만날 약속을 하고 둘은 즉시 사랑에 빠진다.
병으로 갑자기 떠난 어머니, 과묵한 아버지와 냉정한 새어머니 도로시 사이에서 외로웠던 샘과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상류사회에 속하면서 각자의 정부를 인정한 채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이자벨의 공허함은 서로로 인해 채워져간다.
일주일에 두번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이자벨이 정한 규칙대로 만남을 이어가며 격정적인 사랑에 빠져들지만 남편을 떠날 수 없는 이자벨과 파리를 떠나야 하는 샘은 정해진 시간이 모두 끝나자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며 이별한다.

샘은 로스쿨과 인턴생활로 바쁜 일상을 보내는 중에도 이자벨을 떠올리고 두 사람은 편지를 통해 서로의 소식과 마음을 전하며 그리워한다. 잠깐의 시간이 허락되자 샘은 이자벨을 만나기 위해 다시 파리로 향하고 언제나처럼 오후 5시 그녀의 사무실에서 재회한다.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산후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이자벨에게 상처받고 그녀의 정부로 머물러야 하는 현실을 다시 확인하고 돌아온 샘은 약속한 다음 만남 대신 레베카와의 사랑을 전한다.
레베카와 새로운 삶을 계획하지만 여전히 마음 속에 이자벨이 자리잡고 있는 샘!! 샘의 사랑을 인정하면서도 질투하는 이자벨!!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두 사람은 긴 시간에 걸쳐 헤어진 듯 다시 연결된다.
윤리적이지 않고 이어질 듯 어긋나는 둘의 관계는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는 면도 있지만 21살과 36살의 연하의 남자와 연상의 여자. 프랑스어를 못하는 미국 남자와 영어를 할 줄 아는 프랑스 여자. 미혼인 남자와 남편이 있는 여자. 나이, 지역, 상황 모두 쉽지 않은 조건에서도 인생의 딱 한 사람으로 서로가 빛난다면 얼마의 시간이 지나도 얼마나 떨어져있어도 그 사랑은 선명할지도 모르겠다.
샘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이자벨이 그 순간 왜 그런 판단과 결정을 하게 했는지 덜 드러난다. 어떤 결론을 맞이할지 내내 집중하게 했던 책의 마지막은 샘의 머릿 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지났을 그 모든 순간들처럼 나에게도 평생 지워지지 않을 단 하나의 사랑을 나눈 샘과 이자벨이 시간들을 스쳐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