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남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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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려지는 '히가시노 게이고'. 우연히 만난 첫 작품에서 강렬한 인상을 전달받아 출간 된 모든 작품들을 찾아 읽게 만들었던 그 때로부터 10년이 훨씬 지났다. 긴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새로운 작품을 출간하며 출판계에 영향력을 미칠 뿐 아니라 예전 작품들이 재출간되어도 베스트셀러가 될만큼 건재하는 중이다. 모든 작품이 좋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동시대를 살면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어 참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좋아하는 작가 중 한명이다.


모든 작품들을 챙겨 읽었다고 생각해서 신작이 나오면 (가끔은 제목이 바뀌어 나오는 까닭에) 예전 작품인지 내용을 떠올려보곤 한다. 2007년에 이어 이번에 재출간된 '숙명' 역시 읽은 줄 알았으나 떠오르지 않는 내용에 놓친 작품을 잡았다는 기대감으로 만나게 되었다.      


유명 대기업 UR전산의 대표이사인 '나오아키'가 병환으로 임종을 맞이하자 일찍이 기업경영이 아닌 뇌신경외과 의사의 길을 선택한 나오아키의 아들 '아키히코'를 대신하여 '마사키요'가 UR전산의 다음 대표이사가 된다. 미술품과 골동품등을 모으는 것이 취미였던 나오아키의 유품들을 정리하던 중 오래된 서랍장에서 석궁과 화살이 발견되고 몇 일뒤 마사키요가 그 석궁이 쏜 독화살에 맞아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해당 사건 담당형사인 유사쿠는 사건 조사인 중 한명인 '아키히코'의 이름을 들으며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만났던 한 소년은 만년 1등이었던 유사쿠를 2등으로 밀어내고 모든 면에서 자신만만했던 유사쿠를 점점 의기소침해지게 만들었다. 어느 새 만들어진 둘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견제는 꽤 오랜 시간 계속되었는데... 그렇게 자신의 인생에서 지울 수 없던 아키히코를 사건으로 재회하게 된 유사쿠는 그와의 만남을 앞두고 오랫만에 긴장한다. 


아키히코의 집에 방문한 유사쿠는 그의 아내 '미사코'를 만나고는 큰 충격을 받는다. 유사쿠 인생에서 잊지 못할 단 하나의 사랑이었던 미사코를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어떻게 유사쿠, 아키히코, 미사코의 인연이 이렇게 이어진건지 새로운 의문과 함께 또 한번 아키히코에게 패배감을 얻는다. 


  


유사쿠는 아버지가 병원을 옮겨 수술을 받게 된 그 이후부터 자신의 인생이 누군가 잡아당기는 실처럼 풀려갔다는 미사코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을 오픈하지 않는 남편 아키히코에 대해서, 살인이 일어나던 날 남편의 뒷 모습을 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는 아키히코가 범인이 아닌 것인지, 트릭을 쓴 것인지...살해된 마사키요의 집을 방문한 유사쿠는 그의 서재에서 오래된 파일이 사라졌다는 사실과 그 날 아키히코가 잠깐 방문했다는 사실을 전해받고 우연히 보게 된 한 장의 사진은 그의 마음에 큰 동요가 일으키는데...그 곳은 벽돌병원의 사진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엄마가 없던 유사쿠는 근처 벽돌병원 입원 중이던 엄마같은 '사나에'를 누나로 부르며 따랐다. 정상적인 어른과는 달랐던 그녀였지만 유사쿠에게 평온함을 전해주던 사나에가 어느 날 창문에서 떨여져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유사쿠는 많이 슬퍼했다. 당시 경찰관이었던 유사쿠의 아버지는 사나에 사건을 조사했지만 누군가의 방문 이후 그만두었고 몇 일뒤 사나에의 묘지에 유사쿠를 데려간 기억이 있다. 당시 사건을 기록해 둔 아버지의 일지를 다시 꺼내든 유사쿠는 이번 사건이 과거 사나에 사건과 연관되어 있음을 짐작하고 조용히 자신만의 수사를 이어나간다. 




단순히 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보다 던져진 많은 의문들의 진실이 무엇인지 계속 궁금해하게 한다. 마음을 열지 않는 아키히코의 속내는 무엇인지, 미사코의 인생을 잡아당기는 실의 실체는 무엇인지, 유사쿠에게 특별한 사나에씨는 어떤 존재인지, 왜 마사키요가 죽음을 당하게 된 것인지...그 의문들은 종장에 이르러 하나씩 풀어준다. 끊을 수 없는 운명처럼 오랫시간 견제해 온 아키히코와 유사쿠의 대결을 숙명이라고 하기에는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모든 진실이 드러났을 때 '숙명'이라는 제목은 강하게 다가왔다.


이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에서 뇌의학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많았지만 다른 이야기로 또 다른 메세지를 전달해준다. 지금보다 훨씬 과거에 쓰여졌음에도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는 것도 대단했고 초창기 작품들에 반해 빠져 읽었던 추억때문인지 예전 작품들을 만났을 때 주는 향수와 감동들을 전해받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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