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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한시 - 빛과 어둠을 만나는 시
안대회 지음 / 태학사 / 2014년 10월
평점 :
우리 시의 바탕은 당연히 선조들이 1천년 이상 써 온 한시(漢詩)이다. 그런데 한문이 더 이상 일상의 문자로 사용되지 않게 되면서 한시 또한 자연스럽게 그 사명이 소멸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의 뿌리가 한시에 닿아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옷차림이나 생활 용품이 모두 서구의 근대적 산물로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 속에 흐르고 있는 한국인의 유전자가 바뀔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요컨대, 한시는 더 이상 창작으로서의 가치는 상실했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감상의 대상으로서, 또 새로운 창작의 바탕으로서 그 존재가치가 남아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폐기처분하기 바빴던 것이다.
안대회 교수는 다양한 한문 전적들을 오늘 우리의 정서와 삶에 닿을 수 있게 번역하고 풀이하여 책으로 내놓은 대표적인 한문학자이자 이 시대의 문인이다. 그가 최근에 내놓은 '새벽한시'는 우리가 흔히 이름을 들어본 시인들뿐 아니라 전혀 이름이 생소한 시인들의 시들도 많이 수록되어 있다. 시에 대한 풀이뿐 아니라, 시인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시 속에 구현된 시인의 생각을 헤아려보고 오늘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삶을 비추어볼 수 있게 하는 통찰력 깊은 해설을 더하였다. 100명의 시인들이 쓴 다양한 주제의 다양한 시들을 읽어보면 그 안에서 우리 조상들의 생각과 삶의 태도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그야말로 100인(人) 100색(色)의 모습, 100태(態)를 볼 수 있다. 이 시편들을 통해서 우리는 단순히 조상들의 삶과 생각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그것을 어떻게 아름다운 시로 형상화했는지를 볼 수 있다.
좋은 문학 작품 하나는 사람의 일생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적어도 한 사람의 감성을 일깨워 자신의 삶과 생각을 한 번 쯤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새벽한시'는 나에게 그런 책이었다. 나름대로 재주를 자부했으나 번번이 그 '재주'를 시험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작은 이익에 얽매어 스스로 그 재주를 천하게 만들었다는 반성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경험을 한 사람의 시를 만났다. 얼마나 반갑고도 위로가 되었는지... 그리고 새삼 내가 스스로 자부한 '재주'라는 것이 실은 얼마나 교만하고 같잖은 것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긴 시간도, 깊은 생각도 필요치 않았다. 그저 시 한 편이면 충분했으니까.
심심풀이라 해도 좋다. 멍하니 소파에 모로 누워 시시덕거리는 TV의 코미디 프로나 쳐다보거나, 전철이든 버스든 어디서든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세상 일에 눈과 귀를 막아버리고 사는 대신 시를 읽어 보자. '개권유익(開卷有益)'이라 했다. 책을 열면 그 안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5분이나 10분이면 시 한 편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다행히 지은이는 그 시와 시에 대한 해설을 친절하게 들려주고 있다. 그속에서 지은이가 미처 하지 못했거나, 내가 더 하고 싶은 얘기들을 생각해보고 나의 해설을 덧붙여 본다면 그 책은 두 배, 세 배의 이익을 줄 것이다.
너무 유명하거나 지위가 높지 않아 만만한 시인들의 시가 '새벽한시' 속에 있다. 그러니 너무 유명하거나 높지 않은 우리에게 그것은 안성마춤이다. 그속에서 위로 받고 그속에서 힘을 얻고 그속에서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