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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의 문장이었다 - 겹쳐서 비로소 완성된 이야기
문탁네트워크 외 지음 / 문학의숲 / 2026년 7월
평점 :
우리는 서로의 문장이었다(문탁 네트워크)
부너미가 결혼한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읽고 쓰는 공부 모임이라면, 문탁 네트워크는 친구와 함께 삶의 비전을 찾아가는 인문학 공동체이고 용인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문탁 네트워크에서 함께 공부하고 고민한 글들을 함께 모은 책이다.
긴호흡의 글이라 좋았다. 10년, 20년이 넘는 시간을 두고 나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돌아보고 들여다보고 해석한 글이라 묵직했다. 열 분의 저자가 두 편씩 글을 썼고, 두 분의 저자가 한 편씩 글을 썼다. 1부는 나이듦을 공간과 몸의 변화로 살펴본 글이고, 2부는 일자리와 인간관계에 대한 변화를 다룬 글이었다.
봄즈음에 박조건형 연대기를 정리해본 적이 있다. 2023년, 2024년에는 매일매일 재미있고 신나게 지냈던 것 같은데, 2025년부터 올해 초까지 뭔가 맥이 빠진 느낌이 들어서 왜 그럴까 하던 차였다. 2025년 추석즈음에 <좋은 사람 자랑전>을 썼는데, 그 작업이후로 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지 않은 내가 뭔가를 하지 않는 느낌이 계속 들어서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하는데 하는 생각만 했었다. 왜 그림을 계속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를 물었다. 지금도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지만,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은 내가 이제는 내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대체 왜 2023년, 2024년은 에너지틱하게 느꼈고, 그 이후는 그렇지 않게 느꼈는지 파악하고 싶었다. 내 블로그 시즌2에는 2007년(31세)부터의 기록이 세세히 남아 있다. 블로그 시즌1은 해킹당해서 날라가 버렸다. 블로그 시즌1은 아마 2005년부터 쓰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온라인 상에는 현재부터 19년 전 과거의 일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내 기록의 습관은 20대 중후반부터 시작되었다. 그 블로그 자료들을 보며 한해한해를 정리해봤다.
나는 우울증의 시간을 29년간이라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우울증으로 누워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연대기를 정리해보니 누워있었던 시간은 10대, 20중반까지였다. 그 이후의 시간은 그렇게 하루종일 누워만 보냈던 적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이다.(물론 우울증이 심해지면 일상생활이 너무 힘들고 죽고 싶은 생각을 습관적으로 했었다.) 연대기를 정리하면서 나름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었다. 그리고, 참 많은 것들을 시도해보고 경험해왔구나 싶었다. 애쓰며 살았다는 생각에 기특했다. 이라영 작가의 <쇳돌>도 몇십년에 걸친 여러 사람들의 직업 연대기를 쫓는 작업이라서 인상적이었다.
책에 이런 문구가 있다.
“별일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다.”(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에서 따온 문장)
우리 모두 일을 하면서 산다. 자신이 일한 시간들을 종이에 적어 연대기로 정리해보면 모두가 자신을 대견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쉬운 직업은 없었다. 별일이 있는 건 아니라고 해서 우리는 우리가 특별하지 않다고 여긴다. 별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렇지는 또 않은, 그 이야기들을 각자가 주목해주었으면 좋겠다. 3년째 하고 있는 그림일기 작업도 어쩌면 그런 일환에서 하고 있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일주일을 한달을 돌아보면 특별한 것 없이 평범하게 사는 것 같다. 그런데, 그림일기를 그릴려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일매일이 소재거리로 넘친다. 내 일상속에서 이야기를 발굴하는 시선을 기르는 훈련이라고 할까. 별일이 없다는 건 과연 누구의 시선일까? 대단하고 엄청난 일을 하고 많은 돈을 벌고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는 삶만이 멋진 삶이라고 우리가 배워온 것은 아닐까. 세상은 나의 일상을 별일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시선을 거부하고 나의 시선으로 내 일상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내 삶은 내게는 특별하니깐.
<우리는 서로의 문장이었다> 또한 긴 호흡으로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추적하고, 그때의 선택은 과연 나의 선택이었는지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질문해 본다. 그때 내가 몰랐던 것은 무엇이었고 이제서야 그때의 시간을 무엇이라고 말할수 있을지 해석해본다. 모두들 잘 살고 싶어 하지만, 어떤 삶의 방식과 형태가 잘 사는 것인지 탐구하지 않는다. 그 ‘잘’의 의미가 추상적이라 각자에게 ‘잘’의 의미는 다를 것이다. 그 모호함을 뚫고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지 고민하고 구체적으로 그려본다. 정답은 없고 어떤 선택이 더 좋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계속해 나가는 과정이 나답게 살도록 도우리라는 믿음은 든다. 12명 저자의 삶의 이야기는 스펙트럼이 참 다양했다. 나랑 너무 달라서 별세계의 이야기처럼 읽은 글도 있고, 나의 고민과 맞닿은 글도 있었다.
나는 지방에 살고 있고, 집값이 높지 않은 곳에 운좋게 저렴하게 집을 구매를 해서 공간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는 크게 쓸게 없을 것 같지만, 내가 일했던 시간들에 대한 정리는 한번 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때의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고, 그 직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무엇을 어려워 했고, 그 시간속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는지. 나의 관심사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들도 달라졌을 것이다. 우울증은 내 삶을 관통하는 긴 시간의 이야기라 나의 부모, 또 그 부모의 부모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할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 우울증 에피소드들을 열 편 정도 적었던 적이 있지만, 그것보다는 한 호흡으로 그 시간들을 정리해보면 새롭게 발견하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서로가 서로에게 문장이 되어주고, 경청하는 독자가 되어주고, 함께 고민하는 동료가 되어주는 지금의 부너미가 참 좋고 반갑다. 문탁네트워크에서 이런 밀도 높은 글들을 만들어낸 걸 보면 부너미에서 오래오래 느슨하게 공부 공동체로서 함께 공부하고 싶어진다. <우리는 서로의 문장이었다>는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글이라 읽으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다섯 분의 작가님과 만날 시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