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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이랑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3월
평점 :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이랑 지음)
이랑이라는 아티스트에 대해서 그렇게 잘알지 못했고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의 에세이와 만화를 한권정도씩 읽어본 정도? 책 시작에 ‘죽기 살기로’ 쓴 책이라고 말하고 다른 창작물들보다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발표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한다. 지인들의 죽음의 연대기이기도 하다.
이랑의 언니가 2021년 자살했다. 2016년에는 오랜친구 M이 자살했다. 2019년에는 소중한 동갑내기 친구 D가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중 2020년에 사망을 했다. 이랑은 2021년에 자궁경부담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 2023년에는 양쪽 눈에 희귀병 진단을 받고 최근까지 세 차례 수술을 받았다.
책 마지막에는 이랑의 연대기가 적혀 있다. 15세 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자 말자 자퇴를 하고 40세인 지금까지 너무나도 많은 작업을 하며 살아왔다. 그 연대기만 보면 60~70대 작가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정도다. 이랑은 어릴때부터 말하기를 좋아하고 혼잣말을 하다가 노래를 만드는 창작자였다. 혼자 공부해서 검정고시를 쳤고 두번이나 홍대 미대 회화과 입시를 준비했지만, 2번다 실패. 19세에 한예종 영화과 입시를 합격했다. 23세에 임신, 임신중절 수술의 경험이 있었고 웹드라마도 제작하고 영화도 찍고 수업을 하는 선생님이기도 했다. 31세에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노래상’을 수상하고 32세에 학자금대출 전액을 상환했다. 36세에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최우수 포크음반’ 상, 서울가요대상 ‘올해의 발견상’을 수상했다. 2025년에는 20년간 함께한 고양이 준이치가 사망했다. 26년은 그녀 나이 40이다. 영화감독, 음악가, 에세이시트, 만화가, 선생님, 페미니스트, 소설가이다.
그녀에게 집은 억압의 공간이었던거 같다. 맘껏 울수도 없었고 감정을 누르기만 해야하는 곳. 그래서 이랑은 일찍 집을 나왔다. 그러나 언니 이슬은 집을 떠나지 못하고 엄마와 아버지를 챙겼다. 이슬은 중학교때부터 밤을 새워 집에 있는 책들을 거의 읽었고 단국대 사범대에 수석으로 입학한 뒤엔 낮엔 장학생으로 공부하고 저녁엔 아르바이트로 과외하고, 밤엔 클럽에서 춤추며 억압된 감정을 발산했다. 이슬은 20대부터 우울증약을 먹었다. 이랑은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라기보다 힘이 다 빠져 죽은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소진사? 이랑이 일찍이 원가족을 탈출해 거리감을 둔것처럼 언니 이슬도 원가족의 상황들을 모른척하고 외면하고 거리감을 두었다면 이랑처럼 자기 삶을 계속 살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랑이 기억하는 어릴적 엄마는 항상 우울하고 자주 울고 소리지르고 신경질 나 있고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아빠는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을뿐더러 공공연하게 바람을 피우고 가끔 집에 와서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부수는 그냥 괴물일 뿐이라고 기억한다.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이 이랑이 쓴 이야기라면, 부록으로 함께 받은 <이랑 엄마 김경형의 이야기>는 엄마가 쓴 자기 이야기이다. 소책자를 읽어보면 엄마도 아빠도 자신들의 원가족과 거리감을 두지 못했고 원가족의 영향아래 우울하고 힘든 사람이었다.
이랑은 2016년부터 돌연히 시작된 연속된 죽음을 도저히 소화할 수가 없었고 죄책감으로 괴로웠고 무력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 몸과 시간을 바쳐 열심히 도왔다고 고백한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계속 죽어 사라졌다.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게 싫었다. 이전에는 거울을 보는 것, 스스로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온갖 미디어로 기록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무기력하고 지쳐서 더는 볼 수가 없었다. 돕다보니 도움을 청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찾아왔다. 언제가부터 이랑은 ‘돕는 사람’이 되어갔다. 이랑은 모든 사람을 도울수가 없다. 원가족을 탈출해 거리감을 두었던 것처럼 자신에게 아픔을 털어놓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구원자가 될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고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예전에 오은영박사의 프로그램에 나온 홍석천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퀴어계에서는 시조새 겪이다보니 불안한 어린 친구들이 자신에게 고민상담을 끊임없이 털어놓았고 그걸 다 들어주지 못하고 도움이 되지 못하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오은영박사는 홍석천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에게 구원자가 될수 없음을 지적했다. 나도 29년간의 우울증 경험이 있다보니 내게 우울증의 경험을 털어놓는 사라들이 많다. 한번은 생각을 해봤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중에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생길수도 있지 않을까. 냉정하지만 그건 내 잘못도 아니고 내가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줄수는 없다는걸 인지해야 한다. 이랑의 가난, 죽음, 불안과 고통을 직시하며 말과 노래의 쓰임을 고민하는 아티스라고 자신을 말하지만 자신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들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한계를 직시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이랑이라는 아티스트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생각에 유튜브에서 이랑을 검색해서 이랑의 음악과 인터뷰를 찾아 보았다. EBS 스페이스 공감을 봤다. 음악이 좋았다. 이랑이 말하듯 예술은 구원이 될수 없고 위로를 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게 예술의 기능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타인의 아픔에 공명하는 것은 좋지만 그 한계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언니 이슬은 엄마와 아빠의 아픔에 공명해서 그 책임감으로 그렇게 열심히 살다가 소진사를 했다. 그래서 안타깝고 슬펐다. 이랑의 동갑내기 친구가 암투병을 할때 그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프로젝트 때문에 1년을 쉼없이 일했고 오히려 친구랑 함께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한다. 가난한 이랑이 가난한 친구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1년을 정신없이 일하다가 소진되었다. 그때 당시에는 친구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 생각해서 그렇게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매진하기 보다 친구랑 시간을 더 보냈어야 했나라고 질문하고 회의한다.
이랑의 작업실에는 오랜시간동안 써온 일기장 노트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무언가 오래 기록하는 행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한번씩 그 일기장을 들쳐보면 하지 못한 작업들이 너무나도 많다고 한다. 이랑은 참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아티스트이고 나이가 들어가며 더 성숙한 아티스트가 되어갈 것 같다. 인터뷰에서 본 이랑은 할 일정들이 너무 많은 빡빡한 스케줄의 아티스트였다. 어떻게 그런 많은 일정들을 소화할수 있는지 경이롭게 느껴졌다. 지인들의 죽음을 목격했고 자신도 자궁경부함 수술을 받았고 시력도 안좋아졌으니 이제는 자기몸을 돌보며 느린속도로 작업하는 아티스트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40대의 이랑을 보고 싶고 50대 60대의 이랑을 보고 싶다. 많은 이들을 위로하는 아티스트로 오래 보고 싶다. 자신을 돌보고 살피고 위로하는 작업도 동시에 같이 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