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서툰 사람들(고선규 지음)부제는 ‘불가해한 상실 앞에 선 당신을 위한 심리학자의 애도 강의’ 이다. 29년의 우울증 기간동안 죽고 싶은 생각을 많이 했었다. 우울증이 심해질때면 늘 자살 생각을 했었다. 여기서 ‘자살’이라는 단어를 일부로 쓴 것은 이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터부시 되지만, ‘자살’이라는 단어는 더욱 더 터부시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죽음’이나 ‘자살’이라는 단어를 쓰기 꺼리는 것은 그것을 이야기하고 다루는 일이 두렵고 무섭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우울증 기간이 길다보니 우연한 기회에 책을 읽으며 ‘자살사별자’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자살한 사람 주변의 사람들을 ‘자살사별자’라고 일컫는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터부시 되는 사회이기에 자살사별자들은 자신의 슬픔을 제대로 이야기 하기가 더욱더 쉽지 않다. 자살사별자들 또한 심적 고통을 오래오래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고선규 선생님을 알게 된 건 고선규 선생님의 <우리는 모두 자살사별자입니다>라는 책을 통해서이다. 얇은 책자인데 우리 사회에 ‘자살사별자’ 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책이다. 그리고 이어서 <여섯 밤의 애도>라는 책을 읽었다. 애도 작업을 하고 있는 다섯분의 자살사별자들과 함께 여섯 밤의 애도 시간을 가진 책이다. 우리 사회는 타인의 고통을 인내하는 걸 힘들어하는 사회이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자신의 슬픔을 온전히 다 이야기하지 못하게 오히려 입을 닫아라고 외치는 사회이다. 물론 누군가의 아픔을 바라보는 일은 힘든 일이다. 쉽게 조언하고 시간이 약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빨리 회복되어 그들의 고통을 오래 보고싶지 않은 마음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는데 그 치유와 회복이 어떻게 빠를수가 있겠는가. 누군가는 3년만에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돌아오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10년이 지나도 힘들어 한다. <슬픔이 서툰 사람들>은 애도와 상실에 대한 영화 열편을 골랐다. 영화속 주인공들이 내담자가 되어서 상담 선생님에게 자신의 사연과 고민을 털어놓으면 고선규 선생님이 상담실에서 내담자를 대하듯이 영화주인공에게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세번째 챕터에서는 영화속 주인공과 관련된 상실과 애도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 준다. 열편의 영화중 두 편만 본 영화였다. <아무르>를 예전에 봤을때는 존엄한 죽음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는 상실과 애도를 타인들과 함께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관점으로 제시해주어서 좋았다. 고레에다 히코카즈의 장편데뷔작인 <환상의 빛>도 상실과 애도의 측면에서 다시 반추해보았다. 집에는 넷플릭스와 쿠팡 OTT만 있어서 그중에 블랙 미러 시리즈2의 “돌아올께”편을 봤고, 쿠팡에서 1400원 대여를 해서 <매스>를 짝지랑 같이 봤다. 나머지 여섯 편도 기회가 있으면 보고 싶다. 에필로그 글에서 영화 <스틸 라이프>를 소개해 주셨다. 런던 구청에서 일하는 공무원 존 메이는 무연고 시신을 처리하는 업무를 한다. 존은 무연고 시신들의 사연을 찾아 정성을 다해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지만 구청입장에서는 아무도 찾지 않는 시신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다는 이유로 그를 해고한다. 사회에서 지워진 존재들. 정상적이지 않다고 여겨져 무시되는 사람들. 우리들은 사회에서 버려지지 않으려 무단히 애쓰고 괜찮은 척 연기하며 살아간다. 사회에서 지워진 존재에 대한 애도는 어떻게 보면 내 안의 그런 요소들에 대한 애도이기도 하다. 얼마전에 읽었던 <양양>에서 가족의 역사속에서 지워진 고모의 흔적을 추적하던 감독님의 모습도 존이 하는 역할과 비슷하게 여겨진다. 죽음은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오는 것이 아닌데도 늘 외면하며 살아가다가 어느날 막닥드리게 되면 당황하고 억울해 한다. 짝지랑 나랑 건강하게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지만, 어느날, 1년 혹은 2년뒤에 짝지에게 큰 병이 생길수 있음을, 내가 어느날 시한부 선고를 받을수 있음을, 짝지나 나 중에 크게 다쳐 장애가 생길수 있음을 한번씩 생각해 본다. 우리 모두 오래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그건 이 세상 누구도 알수 없는 일이다. 내 부모의 죽음을 생각해 보고 돌아가시기 전 까지 어떻게 애도하고 상실을 받아들일지 미리 공부해둘 필요가 있다. 부모의 죽음을 형제들과 미리 이야기하는 것은 부모에 대한 무례가 아니다. 잘 이별하기 위한 준비이고 돌아가시기 전 까지 충분히 사랑하고 시간을 잘 보내려는 노력이다.279페이지에 있는 고선규 선생님의 글로 리뷰를 마무리 하려고 한다. “죽음은 본질적으로 ‘관계적 사건’ 입니다. 사별자들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의 슬픔을 안전하게 담아낼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상실의 슬픔이 억눌리지 않게 관계속에서 철철 흘러나오길 바랍니다. 슬픔이 흐를 수 있는 사회는 악하지 않습니다. 슬픔이 흐를 수 있는 관계는 치유적입니다. 상실의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을 마주하고 다시 꺼내어 충분히 아파한 뒤 기꺼이 살아낼 용기를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저 역시 계속 애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