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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스페셜 에디션)
박민규 지음 / 예담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경제성장이 한참 이루어지고 정치적으로는 조금은 어지러운 시대, 누군가와의 약속은 시간을 맞춰 나가지 않는한 한없이 기다려야 했고 지금은 사라진 유물인 카세트로 음악을 듣고 라디오에 정성들여 엽서나 편지를 써 보내던 그때, 큰 이변이 없는 한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졸업하면 어디든 취업이 되고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 하나 둘 쯤의 자식을 낳고 사는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 80년대, 그때와 지금이 다른게 있다면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고학력자도 늘어났지만 예전에 당연시 되던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할 만큼 청년들의 취업난은 늘어나고 누구든 스마트폰으로 여러가지를 할 수 있는 시대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와 지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사람들은 여전히 '예쁜 사람'을 좋아한다는 미적 기준인 것 같다. 미녀든 미남이든 다만 시대별로 좋아하는 미의 타입이 변할 뿐. 어릴 때에는 그것이 취향의 문제인 줄 알았다. 조금더 나이를 먹고 세상을 아주 조금은 알았을 때 그것은 취향이 아니라 본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면서도 정작 사람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본능적으로 예쁜것에 끌리기 마련이고 이것은 그저 자신의 속물근성을 감추려는 것에 불과한 이중잣대인 것이다. 예쁜것에 끌리는 것도 물론 사회적으로 너무나 좋지않지만 그보다 더 싫은건 자기는 그러지 않는척 하는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사회적 미의 기준의 잣대에 상처받고 외면 당한 여자들을 위한 연서라고 말하고 있다. 나 역사 그 작대속에 상처받기도 하고 앞으로도 계속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지만 이 소설이 뭔가 위안을 받았다거나 통쾌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뭐랄까. 예전 초판이 나왔을 때 읽었을 때 리뷰를 보니 그냥 너무나 좋다고만 되어 있고 소설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들이 보통의 소설보다 많았다는 것. 이번에 새 옷을 갈아입고 나온 소설을 다시 읽었을 때도 아 정말 문장들이 좋구나 여전히 쓸쓸하지만 뭔가 설레기도 하고, 사랑에 대한 것 외에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였다고 할까. 그런데 뭔가 조금은 마음을 들킨 것 같은 문장들이 많아 읽으면서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을 적지 않게 받았던 소설이다.
학교다닐 때 몰려다니던 친구들에게는 저마다 몇가지씩의 콤플렉스가 있었다. 극단적으로 못생긴 주인공 여자가, 그런 그녀를 사랑하게 된 남자 마저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이 부분에서 살짝 웃음이 나왔다) 그런 여자는 처음 세상의 가혹한 잣대를 인식한 후로 부터 평범한 생활은 할 수 없게 되고 사랑이나 결혼은 포기해야 했던 그녀의 말대로 새상이 만든 장애인 같았던 그녀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음에도 떠날 수 밖에 없게 만들면서 이것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닌 수치와 모멸감이라는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체적이건 아니건 아무렇지 않게 그 사람에 대한 콤플렉스를 대놓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요즘은 어쩌면 작은 의미의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물론 심한 말일수도 있지만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은 그들의 특징을 보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다. 그런 말이나 시선을 받은 사람은 더없이 큰 상처와 고통을 받을 수 있으니까. 주변에서도 실제로 그런 경우를 봤기 때문에 느꼈던 생각이다. 자신은 그저 긁지 않은 복권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도 외모지상주의가 사라저야 한다고 외쳐도 없어지지 않을 빌어먹을 세상의 잣대 속에 살아야 하는 나를 포함한 그녀들에게 이 소설은 그래서 어쩌면 위안, 더없는 연서가 될지도 모르겠다.
핑크빛 눈꽃이 그려진 패브릭 감촉의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온 소설의 결말은 writer,s cut 이전의 것과 이후의 것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결말에 대한 선택을 주었지만 나에게는 어느 결말이건 좋았다. 예전에 읽었을 때에는 눈여겨 보지 않았던 것들이 시간이 지난 후에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이 있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있어 다시 읽어도 새로운 느낌이어서 좋았고 소설속에 소설을 또 그 속에 소설을 읽는 듯한 구성은 한꺼번에 다양한 작품을 읽는 듯 해서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들었던 소설은 부끄럽지도 부러워하지도 않았으면 하는 나를 포함한 모든 그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소설 속 문장들
젊음은 결국 단파 라디오와 같은 것임을,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모든 연애의 90%는 이해가 아닌 오해란 사실을... 무렵의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스무 살이었고, 좋든 싫든 연애의 대부분을 운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사랑을 이룬 이들은 어쨌든 서로를 좋은 쪽으로 이해한 사람들이라고, 스무살의 나는 생각했었다. p14-15
사랑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익이었고, 세상의 가장... 큰 이익이었다. 천문학적 이익이란 아마도 이런 걸 뜻하는게 아닐까, 무렵의 나는 생각했었다.
그것은 묘한 경험이었다.
작은 씨앗과 같은 것이었고, 납득할 수 없는 경로를 통해 내면에 스며든 것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던 느낌... 자라던 줄기와 파어나던 색색의 꽃을 잊을 수 없다. p157
나는 여전했지만 여전하지 않았고, 예전과 달리 누가 누구와 헤어졌대 누가 누구를 버렸대... 주변의 속삭임에도 마음을 아파하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낫다는 말은, 누군가의 몸 전체에-즉 손끝의 모세혈관에까지 뿌리를 내린 나무 하나를, 통째로 흔들어 뽑아 버렸다는 말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뿌리에 붙은 흙처럼 딸려, 떨어져나가는 마음 같은 것... 무엇보다 나무가 서 있던 그 자리의 뻥 뚫린 구멍과... 텅 빈화분처럼 껍데기만 남아있는 누군가를 떠올리는 상상은... 생각만으로도 아프고 참담한 것이었다. 그런 나무를 키워본 인간만이, 인생의 천문학적 손실과 이익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p157-158
빛을 발하는 인간은 언제나 아름다워. 빛이 강해질수록 유리의 곡선도 전구의 형태도 그 빛에 붙혀버리지. 실은 대부분의 여자들... 그러니까 그저 그렇다는 느낌이거나... 좀 아닌데 싶은 여자들... 아니, 여자든 남자든 그런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맑히는 거지. p185
그저 인생이란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 불과한 인간들의 골목... 모든 인간은 투병중이며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를 간호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p214
사랑은 분명 이 맥주 캔과 같은 거라고 나는 생각해. 뭔가가 터져나올 거란 걸 알면서도 자신을, 또 서로를 흔들게 되는 거지. (중량) 그리고 바라는 거야. 끝까지 마셔주기를... 입만 대고 내려 놓거나, 그런게 두려운 거고... 속에 담겨 있는 자신을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거야. 캔을 말끔히 비움으로써 우리가 맥주의 가치를 인정하듯이 말이야. p218
외모는 돈보다 절대적이야. 인간에게, 또 인간이 만든 이 보잘것 없는 세계에서 말이야. 아름다움과 추함의 차이는 그만큼 커, 왠지 알아? 아름다움이 그만큼 대단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만큼 보잘것없기 때문이야. 보잘것없는 인간이므로 보이는 것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야. 보잘거없는 인간일수록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세상을 사는 거라구. p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