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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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보타이 정장을 입은 작은 체구의 소년이 무대로 걸어나온다. 청중에게 지나치다 싶은 바른 자세로 인사을 한 후 피아노와 연주자 만을 위한 핀조명이 비친 피아노 앞 의자에 앉는다. 등장할 때의 밝은 표정은 의자에 앉은 후 긴장감이 감도는 표정으로 바뀐다. 호흡을 가다듬고 등장할때 손에 쥐고 온 손수건으로 습관인 듯 피아노 건반을 한번 쓱 훑은 후 긴장감으로 자신의 손에 난 땀도 연신 닦는다. 몇 초의 침묵 후 숨을 들이 쉬고 소년은 연주를 시작한다.  연주를 시작한 후 소년은 곡에 심취한 듯 곡의 분위기와 멜로디에 따라 시시각각 표정이 변한다.  두번째 곡이 끝났을 때에는 그랜드 피아노 안쪽에 놓아둔 손수건으로 손은 물론 얼굴에 난 땀도 닦는다. 소년이 얼마나 긴장하고 열정적으로 피아노를 쳤는지 보여주듯이. 20분의 연주을 마친 소년은 등장할 때와 같이 바른 자세로 인사를 한 후 조용히 무대 뒤로 사라진다.  이제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 조성진이 8년전 출전했던 하마마츠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나와 연주한 1차 예선의 모습이다. 최근에 우승을 차지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마지막 오케스트라와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때에는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연주할 때의 풍부한 표정이 그가 얼마나 피아노에, 음악에 심취했는지 보여준다.

첫 구상을 하고부터 12년, 11년의 취재와 7년간의 집필기간, 올해 나오키상과 서점대상을 동시에 수상한 온다 리쿠의 신작 <꿀벌과 천둥>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그녀의 역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실제 2009년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한 하마마츠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배경으로 한(작품 속에서는 요시가에 콩쿠르로 나옴)작품으로 콩쿠르에 출전하는 등장 인물들의 음악적 천재성과 긴장감이 감도는 콩쿠르의 모습, 다양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할 때의 느낌과 감동 등 짧다면 짧을 수 있는 피아노 콩쿠르를 이렇듯 장대하고 촘촘하게 묘사한 작품에서는 여느 미스터리 못지 않는 콩쿠르의 긴장감과 읽는 내내 귓가에 들리는 듯한 피아노 선율과 수많은 클래식의 감미로움 등 여러가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클래식이라고는 문외안인 내가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아마 그동안 듣지 못한 클래식을 다 들어본 듯 하다. 책의 앞에 나온 콩쿠르 프로그램에 나온 참가자들이 연주할 곡만 찾는데 한참이 걸렸다. 이런 '클알못'인 나같은 사람은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면 그저 어려운 음악이거나 단순히 배경이 되는 음악 또는 귀로 듣는 음악이라는 인식이 있다. 무대에서 화려하게 퍼포먼스를 하면서 열창하는 대중 가수의 콘서트라면 볼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어떤 것보다 현장에서 보아야 할 콘서트는 바로 클래식 콘서트라는 것이다. 책을 읽고 주요 인물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찾아 듣고 콩쿠르의 분위기가 궁금해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영상을 찾아보면서 클래식은 단순히 듣는 음악이 아니라 오감을 자극하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클래식과는 연관이 없어 보이는 꿀벌과 천둥이라는 제목은 소설 속 천재 피아노 소년 가자마 진을 비롯해 화려하게 부활하는 예전의 천재소녀 에이덴 아야, 아야 덕분에 피아노에 입문해 그 재능을 발견하고 천재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마사루, 늦었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콩쿠르에 참가한 다카시마 아카시 그들이 각각 콩쿠르의 무대에서나 평소 자연에서 들었던 모든 소리들이 음악이 되는 것을 느끼고 다른 이의 연주를 보며 푸른 초원의 바람도 느낄 수 있고 광활한 우주도 느낄 수 있다. 비록 영상으로 보긴 했지만 시각적으로도 현장에서의 느낌은 많이 다를 것 같았다. 협주곡의 경우 피아니트스가 등장과 함께 마에스트로와 콘서트 마스터와 결연을 다지는 악수를 나눈 후 곡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연주자의 표정이나 중간중간 지휘자와의 아이컨텍의 모습에서 음악에 심취한 연주자가 느끼는 음악에서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클래식에 대한 나의 시각을 완전히 바뀌게 할 만큼 온다 리쿠의 이번 작품은 비록 진짜 콘서트나 콩쿠르의 현장이 아니지만 그녀가 오랜 세월 구상하고 취재하며 느낀 것과 그녀의 필력이 더해저 작품을 통해 마치 그 현장에 있는 듯한 리얼한 느낌을 살려주었다.  그리고 각각의 인물들이 묘사하는 연주의 모습이나 느낌들을 읽으면서 거기에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읽었는데 정말 그 느낌이 생생히 살아나는 것 같았다.

쓰기에 따라서는 한 단락으로도 끝낼 수 있는 피아노 콩쿠르를 이렇듯 방대한 양의 장편으로 끌어감에도 소설은 빈틈이 없다. 그렇다고 너무 어렵거나 빡빡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잔잔함이나 발랄함, 감미로움이나 격정적인 감정 등과 함께 거기서 강약이 적절히 가미되어 마치 장대한 클래식 한 곡을 듣는 것과 같았다. 그런 만큼 이번 온다 리쿠의 신작은 그 어떤 미스터리보다 긴장감이 넘치지만 그 어떤 로맨스보다 감미로운 느낌의 소설로 역시 온다 리쿠라는 작가의 필력을 여지 없이 보여준 작품이었다. 소설을 읽고 소설 속 곡들을 찾아 듣는 중에 창 밖에서는 매미가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엄청 시끄럽게 느꼈을 소리였지만 듣고 있는 음악과 마치 하나인 것처럼, 그것 마저도 악기인 것 처럼 느껴졌다. 도시에서의 소음이 싫어진다면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과 함께 나만의 연주로 만들어 보며 그녀의 소설에 빠져보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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