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의 책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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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운이 강했다. 아우라라고 해야할까. 신들이 나오는 책을 읽더니 뭔 귀신 시나락 까먹는 얘기냐 싶겠지만 처음 책을 마주 했을 때 그런걸 느꼈다. 아마 내가 읽은 책 중에 가장 강력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래서 무슨 기운을 느꼈다는 거냐면 바로 노잼의 기운. 아니 난 정말 진지 궁서체 아니 명조체로 하는 얘기임. 뭐 그런거 있지 않은가. 표지만 보고도 뭔가 재미있을 것 같다 아니다의 느낌. 물론 최근에는 소설이든 영화든 뭔가 겉만 호기심을 끌게끔 하고 노잼인 경우가 많아서 이런 느낌도 까봐야 알때가 많다. 한국소설에서 SF라는 장르에 대한 기대감은 제로 였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책을 다 읽은 지금은 말하자면 딱 표지의 그림과 띠지의 문구, 제목 이 세가지가 딱 맞아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 수 없는 그림들, 장르를 구분짓기 애매한 띠지의 문구들. 그리고 '미쳤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과연 좋은 쪽으로 미친걸까? 아님 그 반대일까? 나 조차도 이 소설의 영향 때문인지 의식의 흐름대로 텍스트가 나열되는 느낌이다.

우선 신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면 나는 종교는 없지만 신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신은 존재하지만 실제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런데 신이 파충류를 닮은 형태를 띠고 강림하기까지 하여 인간 세계를 돌아다닌다니. 정말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읽는 도중에 생각해보니 우주의 어느 별에 사는 변신 로봇이 인류 역사상 중요한 사건마다 함께했고 천둥을 관장하는 신이 지상으로 내려와 전쟁을 벌인다는 상상도 하는데 이런 상상이라고 못할게 뭐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신들은 한 인간에게 인류를 구할 마지막 구원자라는 임무를 준다. 그 구원자는 지구가 멸망할 임계점의 계기가 되는 시점(과거)으로 돌아가 잘못된 매듭을 풀고 자신의 숭고한 희생으로 인류를 구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어디선가 본듯한 평범한 SF 판타지 이야기 같지만 사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정확하게 내용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상태다. 책을 거의 2/3쯤 읽었을 때에야 대충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정도였다. 이게 말하자면 이 책의 단점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전체적인 스토리는 나쁘지 않았고 아니 뭐 재미있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야기의 흐름상 너무 내용을 파악하기 힘든 구성이다. 뭔가 중구난방의 느낌. 평행우주니 타임리프니 하는 것들이 이야기의 흐름에 떠다니지만 그런 시간의 파악이나 흐름도 해설을 읽고 나서 알았다. 뭔가 친절함이 필요하다는 느낌이다. 단순하고 쉽게 읽히는 소설을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이 읽으면 내용파악이 너무 힘들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폰트를 다르게 해서 이야기의 화자나 시점을 다르게 한 점은 알겠지만 그것마저도 뭔가 더 혼란스럽게 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텍스트도 너무 작고 빽빽해서 처음에 읽기 전에는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책을 무사히(?)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처음에 기대치가 낮아서인지 스토리만 놓고 보자면 꽤 흥미로웠던 소설이다. 처음에는 어떤 스토리인지 파악하기도 힘들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앞의 내용과 퍼즐을 맞추면서 읽어나가는 재미도 느껴졌다. 소설의 해설에 이 소설은 여러 이야기의 자투리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브리콜라주 형식의 소설이라고 했다. 실제로 해설에 보면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것들의 참고자료를 볼 수 있는데 어려운 말은 잘 모르겠지만 기존의 이야기들의 조각들을 모아 만들어낸 이야기이지만 식상하지 않고 무척 새롭고 놀라운 느낌이다. 그리고 혼돈의 카오스 같은 스토리에서 물흐르듯 매끄럽게 읽히는 필체라서 글을 읽는 자체는 막힘이 없다. 지금도 누군가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글을 쓴 작가는 모든 내용을 파악하고 썼을까? 왠지 아닐걸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소설은 SF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한국 소설에서 새롭고 신선하며 놀라운 스토리를 경험할 수 있는 소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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