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스페셜 에디션)
박민규 지음 / 예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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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 한참 이루어지고 정치적으로는 조금은 어지러운 시대, 누군가와의 약속은 시간을 맞춰 나가지 않는한 한없이 기다려야 했고 지금은 사라진 유물인 카세트로 음악을 듣고 라디오에 정성들여 엽서나 편지를 써 보내던 그때, 큰 이변이 없는 한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졸업하면 어디든 취업이 되고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 하나 둘 쯤의 자식을 낳고 사는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 80년대, 그때와 지금이 다른게 있다면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고학력자도 늘어났지만 예전에 당연시 되던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할 만큼 청년들의 취업난은 늘어나고 누구든 스마트폰으로 여러가지를 할 수 있는 시대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와 지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사람들은 여전히 '예쁜 사람'을 좋아한다는 미적 기준인 것 같다. 미녀든 미남이든 다만 시대별로 좋아하는 미의 타입이 변할 뿐. 어릴 때에는 그것이 취향의 문제인 줄 알았다. 조금더 나이를 먹고 세상을 아주 조금은 알았을 때 그것은 취향이 아니라 본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면서도 정작 사람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본능적으로 예쁜것에 끌리기 마련이고 이것은 그저 자신의 속물근성을 감추려는 것에 불과한 이중잣대인 것이다. 예쁜것에 끌리는 것도 물론 사회적으로 너무나 좋지않지만 그보다 더 싫은건 자기는 그러지 않는척 하는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사회적 미의 기준의 잣대에 상처받고 외면 당한 여자들을 위한 연서라고 말하고 있다. 나 역사 그 작대속에 상처받기도 하고 앞으로도 계속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지만 이 소설이 뭔가 위안을 받았다거나 통쾌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뭐랄까. 예전 초판이 나왔을 때 읽었을 때 리뷰를 보니 그냥 너무나 좋다고만 되어 있고 소설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들이 보통의 소설보다 많았다는 것. 이번에 새 옷을 갈아입고 나온 소설을 다시 읽었을 때도 아 정말 문장들이 좋구나 여전히 쓸쓸하지만 뭔가 설레기도 하고, 사랑에 대한 것 외에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였다고 할까. 그런데 뭔가 조금은 마음을 들킨 것 같은 문장들이 많아 읽으면서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을 적지 않게 받았던 소설이다.

학교다닐 때 몰려다니던 친구들에게는 저마다 몇가지씩의 콤플렉스가 있었다. 극단적으로 못생긴 주인공 여자가, 그런 그녀를 사랑하게 된 남자 마저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이 부분에서 살짝 웃음이 나왔다) 그런 여자는 처음 세상의 가혹한 잣대를 인식한 후로 부터 평범한 생활은 할 수 없게 되고 사랑이나 결혼은 포기해야 했던 그녀의 말대로 새상이 만든 장애인 같았던 그녀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음에도 떠날 수 밖에 없게 만들면서 이것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닌 수치와 모멸감이라는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체적이건 아니건 아무렇지 않게 그 사람에 대한 콤플렉스를 대놓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요즘은 어쩌면 작은 의미의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물론 심한 말일수도 있지만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은 그들의 특징을 보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다. 그런 말이나 시선을 받은 사람은 더없이 큰 상처와 고통을 받을 수 있으니까. 주변에서도 실제로 그런 경우를 봤기 때문에 느꼈던 생각이다. 자신은 그저 긁지 않은 복권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도 외모지상주의가 사라저야 한다고 외쳐도 없어지지 않을 빌어먹을 세상의 잣대 속에 살아야 하는 나를 포함한 그녀들에게 이 소설은 그래서 어쩌면 위안, 더없는 연서가 될지도 모르겠다.

핑크빛 눈꽃이 그려진 패브릭 감촉의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온 소설의 결말은 writer,s cut 이전의 것과 이후의 것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결말에 대한 선택을 주었지만 나에게는 어느 결말이건 좋았다. 예전에 읽었을 때에는 눈여겨 보지 않았던 것들이 시간이 지난 후에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이 있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있어 다시 읽어도 새로운 느낌이어서 좋았고 소설속에 소설을 또 그 속에 소설을 읽는 듯한 구성은 한꺼번에 다양한 작품을 읽는 듯 해서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들었던 소설은 부끄럽지도 부러워하지도 않았으면 하는 나를 포함한 모든 그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소설 속 문장들

 

젊음은 결국 단파 라디오와 같은 것임을,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모든 연애의 90%는 이해가 아닌 오해란 사실을... 무렵의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스무 살이었고, 좋든 싫든 연애의 대부분을 운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사랑을 이룬 이들은 어쨌든 서로를 좋은 쪽으로 이해한 사람들이라고, 스무살의 나는 생각했었다. p14-15

 

 

사랑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익이었고, 세상의 가장... 큰 이익이었다. 천문학적 이익이란 아마도 이런 걸 뜻하는게 아닐까, 무렵의 나는 생각했었다.
그것은 묘한 경험이었다.
작은 씨앗과 같은 것이었고, 납득할 수 없는 경로를 통해 내면에 스며든 것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던 느낌... 자라던 줄기와 파어나던 색색의 꽃을 잊을 수 없다.  p157

 

 

나는 여전했지만 여전하지 않았고, 예전과 달리 누가 누구와 헤어졌대 누가 누구를 버렸대... 주변의 속삭임에도 마음을 아파하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낫다는 말은, 누군가의 몸 전체에-즉 손끝의 모세혈관에까지 뿌리를 내린 나무 하나를, 통째로 흔들어 뽑아 버렸다는 말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뿌리에 붙은 흙처럼 딸려, 떨어져나가는 마음 같은 것... 무엇보다 나무가 서 있던 그 자리의 뻥 뚫린 구멍과... 텅 빈화분처럼 껍데기만 남아있는 누군가를 떠올리는 상상은... 생각만으로도 아프고 참담한 것이었다. 그런 나무를 키워본 인간만이, 인생의 천문학적 손실과 이익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p157-158

 

 

빛을 발하는 인간은 언제나 아름다워. 빛이 강해질수록 유리의 곡선도 전구의 형태도 그 빛에 붙혀버리지. 실은 대부분의 여자들... 그러니까 그저 그렇다는 느낌이거나... 좀 아닌데 싶은 여자들... 아니, 여자든 남자든 그런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맑히는 거지. p185

 

 

 

그저 인생이란 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 불과한 인간들의 골목... 모든 인간은 투병중이며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를 간호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p214

 

 

사랑은 분명 이 맥주 캔과 같은 거라고 나는 생각해. 뭔가가 터져나올 거란 걸 알면서도 자신을, 또 서로를 흔들게 되는 거지. (중량) 그리고 바라는 거야. 끝까지 마셔주기를... 입만 대고 내려 놓거나, 그런게 두려운 거고... 속에 담겨 있는 자신을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거야. 캔을 말끔히 비움으로써 우리가 맥주의 가치를 인정하듯이 말이야. p218

 

 

외모는 돈보다 절대적이야. 인간에게, 또 인간이 만든 이 보잘것 없는 세계에서 말이야. 아름다움과 추함의 차이는 그만큼 커, 왠지 알아? 아름다움이 그만큼 대단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만큼 보잘것없기 때문이야. 보잘것없는 인간이므로 보이는 것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야. 보잘거없는 인간일수록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세상을 사는 거라구.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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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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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보타이 정장을 입은 작은 체구의 소년이 무대로 걸어나온다. 청중에게 지나치다 싶은 바른 자세로 인사을 한 후 피아노와 연주자 만을 위한 핀조명이 비친 피아노 앞 의자에 앉는다. 등장할 때의 밝은 표정은 의자에 앉은 후 긴장감이 감도는 표정으로 바뀐다. 호흡을 가다듬고 등장할때 손에 쥐고 온 손수건으로 습관인 듯 피아노 건반을 한번 쓱 훑은 후 긴장감으로 자신의 손에 난 땀도 연신 닦는다. 몇 초의 침묵 후 숨을 들이 쉬고 소년은 연주를 시작한다.  연주를 시작한 후 소년은 곡에 심취한 듯 곡의 분위기와 멜로디에 따라 시시각각 표정이 변한다.  두번째 곡이 끝났을 때에는 그랜드 피아노 안쪽에 놓아둔 손수건으로 손은 물론 얼굴에 난 땀도 닦는다. 소년이 얼마나 긴장하고 열정적으로 피아노를 쳤는지 보여주듯이. 20분의 연주을 마친 소년은 등장할 때와 같이 바른 자세로 인사를 한 후 조용히 무대 뒤로 사라진다.  이제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 조성진이 8년전 출전했던 하마마츠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나와 연주한 1차 예선의 모습이다. 최근에 우승을 차지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마지막 오케스트라와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때에는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연주할 때의 풍부한 표정이 그가 얼마나 피아노에, 음악에 심취했는지 보여준다.

첫 구상을 하고부터 12년, 11년의 취재와 7년간의 집필기간, 올해 나오키상과 서점대상을 동시에 수상한 온다 리쿠의 신작 <꿀벌과 천둥>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그녀의 역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실제 2009년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한 하마마츠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배경으로 한(작품 속에서는 요시가에 콩쿠르로 나옴)작품으로 콩쿠르에 출전하는 등장 인물들의 음악적 천재성과 긴장감이 감도는 콩쿠르의 모습, 다양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할 때의 느낌과 감동 등 짧다면 짧을 수 있는 피아노 콩쿠르를 이렇듯 장대하고 촘촘하게 묘사한 작품에서는 여느 미스터리 못지 않는 콩쿠르의 긴장감과 읽는 내내 귓가에 들리는 듯한 피아노 선율과 수많은 클래식의 감미로움 등 여러가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클래식이라고는 문외안인 내가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아마 그동안 듣지 못한 클래식을 다 들어본 듯 하다. 책의 앞에 나온 콩쿠르 프로그램에 나온 참가자들이 연주할 곡만 찾는데 한참이 걸렸다. 이런 '클알못'인 나같은 사람은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면 그저 어려운 음악이거나 단순히 배경이 되는 음악 또는 귀로 듣는 음악이라는 인식이 있다. 무대에서 화려하게 퍼포먼스를 하면서 열창하는 대중 가수의 콘서트라면 볼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어떤 것보다 현장에서 보아야 할 콘서트는 바로 클래식 콘서트라는 것이다. 책을 읽고 주요 인물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찾아 듣고 콩쿠르의 분위기가 궁금해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영상을 찾아보면서 클래식은 단순히 듣는 음악이 아니라 오감을 자극하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클래식과는 연관이 없어 보이는 꿀벌과 천둥이라는 제목은 소설 속 천재 피아노 소년 가자마 진을 비롯해 화려하게 부활하는 예전의 천재소녀 에이덴 아야, 아야 덕분에 피아노에 입문해 그 재능을 발견하고 천재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마사루, 늦었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콩쿠르에 참가한 다카시마 아카시 그들이 각각 콩쿠르의 무대에서나 평소 자연에서 들었던 모든 소리들이 음악이 되는 것을 느끼고 다른 이의 연주를 보며 푸른 초원의 바람도 느낄 수 있고 광활한 우주도 느낄 수 있다. 비록 영상으로 보긴 했지만 시각적으로도 현장에서의 느낌은 많이 다를 것 같았다. 협주곡의 경우 피아니트스가 등장과 함께 마에스트로와 콘서트 마스터와 결연을 다지는 악수를 나눈 후 곡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연주자의 표정이나 중간중간 지휘자와의 아이컨텍의 모습에서 음악에 심취한 연주자가 느끼는 음악에서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클래식에 대한 나의 시각을 완전히 바뀌게 할 만큼 온다 리쿠의 이번 작품은 비록 진짜 콘서트나 콩쿠르의 현장이 아니지만 그녀가 오랜 세월 구상하고 취재하며 느낀 것과 그녀의 필력이 더해저 작품을 통해 마치 그 현장에 있는 듯한 리얼한 느낌을 살려주었다.  그리고 각각의 인물들이 묘사하는 연주의 모습이나 느낌들을 읽으면서 거기에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읽었는데 정말 그 느낌이 생생히 살아나는 것 같았다.

쓰기에 따라서는 한 단락으로도 끝낼 수 있는 피아노 콩쿠르를 이렇듯 방대한 양의 장편으로 끌어감에도 소설은 빈틈이 없다. 그렇다고 너무 어렵거나 빡빡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잔잔함이나 발랄함, 감미로움이나 격정적인 감정 등과 함께 거기서 강약이 적절히 가미되어 마치 장대한 클래식 한 곡을 듣는 것과 같았다. 그런 만큼 이번 온다 리쿠의 신작은 그 어떤 미스터리보다 긴장감이 넘치지만 그 어떤 로맨스보다 감미로운 느낌의 소설로 역시 온다 리쿠라는 작가의 필력을 여지 없이 보여준 작품이었다. 소설을 읽고 소설 속 곡들을 찾아 듣는 중에 창 밖에서는 매미가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엄청 시끄럽게 느꼈을 소리였지만 듣고 있는 음악과 마치 하나인 것처럼, 그것 마저도 악기인 것 처럼 느껴졌다. 도시에서의 소음이 싫어진다면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과 함께 나만의 연주로 만들어 보며 그녀의 소설에 빠져보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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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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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베크만의 전작들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이번에는 어떤 캐릭터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갈까 기대를 하게 된다. 개성강하고 때론 까칠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감동까지 주는 이야기꾼 프레드릭 베크만의 이번 작품은 그래서 조금 의외였다. 아니 반전이라고 해야할까. '동화'같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소설은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와 그런 할아버지 곁에서 하루하루 이별을 준비하는 손자 노아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판타지적 신비로움과 환상, 동화 같은 아름다운 필체가 기억과 망각이라는 슬픈 감정들과 어우러져 한편의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스토리가 이어진다.  



부고를 들은건 고3 때 한창 야간 자율학습을 할 때였다. 조부모 중에 유일하게 내가 태어난 후에도 살아계셨던 할머니는 마지막에 약간의 치매를 앓으시다가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갑작스러운 소식이었고 이별을 준비할 시간같은 것도 없었다. 그래도 손자들은 잊지 않으셨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놓고 싶지 않았던 노아의 손처럼. 점점 작어지는 기억의 광장에는 마지막까지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이 가득하다. 먼저 떠난 사랑하는 부인과의 첫만남의 순간, 아들 테드와의 기억, 손자와 주고 받은 아무 쓸모없는 선물들.. 하지만 기억의 광장은 점점 작아지고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는 주머니속 처럼,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하고 없어진 가장 중요한 인생의 한 페이지처럼. 망각이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처럼 마지막까지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은 의지대로 잊지 않을 수 있을까? 각자의 기억의 광장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을 것 같다.

문득 이별이란걸 하루하루 연습하면 정작 이별의 순간에는 그 슬픔이 작아질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직까지 큰 이별을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어쩐지 그럴것 같지는 않았다. 나에게 전해진 갑작스러운 이별에서는 슬픔보다는 놀라움과 어떨떨함이 먼저였다. 노아처럼 만약 이별이 분명히 다가옴을 하루하루 느낀다면 오히려 슬픔은 더 커지지 않을까. 그리고 하루하루 다가오는 이별에는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곁에서 하루하루 슬퍼하기 노아처럼 보다는 아직 잊지 않은 기억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았다. 소설은 분명 할아버지와 손자의 이별을 이야기하지만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에서의 동화같은 필체와 아름답도 감성적인 일러스트가 그 슬픔마저 망각속으로 가져가는 듯 해서 읽은 내내 슬픔보다는 조용한 미소가 떠오르는 소설이었다.

 

 

여우야 도서 체험단 이벤트에 당첨되어 무료로 제품을 제공받아 후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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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클래식 - 김용택의 필사해서 간직하고 싶은 한국 대표시 감성치유 라이팅북
김용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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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도깨비에 의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시리즈가 오리지널과 플러스에 이어 우리나라 대표 시인들의 고전 시를 역은 '클래식'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이 책은 시를 읽는 것 뿐 아니라 직접 시를 필사를 해 봄으로서 시를 더욱 마음깊이 느낄 수 있는 감성 치유 라이팅북이다.

이 책에 실린 시들은 교과서에도 실리기도 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시들이 많다. 하지만 교과서에 실려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다지 진지하게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릴때의 나는 고전시는 어렵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런 시들을 이번에 천천히 읽으면서 직접 필사를 해보니 새로운 감정들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옛 시들이, 옛  우리글들이 이렇게나 아름다웠나를 말이다. 가슴이 뻐근해져올 정도로 좋고 눈물이 그렁거릴 만큼 설레이는 시들이 가득했다. 고전이나 클래식이라고 불리우는 작품들이 지금까지 사랑 받는 이유는 분명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들을 필사하면 좋은 점들은 일단 시를 천천히 읽게 된다. 그러면서 시가 가진 의미나 시어들의 의미, 멋들이 그냥 읽을 때와는 다르게 다가 왔다. 그리고 일단 손으로 쓰다 보니 저절로 글씨에 신경을 쓰게 되고 조금더 예쁘게 쓰려고 하다 보니 여러번 써보거나 읽게 되었다. 그럼으로 더 시를 이해하고 느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여기 실린 시인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인 윤동주의 시를 필사해보았다. 짧지만 좋은 시!







예쁜 시어들이 너무 좋았던 김영랑 시인의 시. 지금 여름에 더 와닿는 것 같은 시이다.

이 외에도 김용택 시인이 뽑은 숨어있는 명시도 몇 편 실려있는데 그동안 알지 못했던 많은 좋은 시들을 알게 되어 더욱 좋았다. 필사를 통해 전에는 알지 못했던 옛 시들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이번 클래식 버전은 힐링이 필요한 나에게도 소중한 누군가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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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의 책
김희선 지음 / 현대문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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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운이 강했다. 아우라라고 해야할까. 신들이 나오는 책을 읽더니 뭔 귀신 시나락 까먹는 얘기냐 싶겠지만 처음 책을 마주 했을 때 그런걸 느꼈다. 아마 내가 읽은 책 중에 가장 강력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래서 무슨 기운을 느꼈다는 거냐면 바로 노잼의 기운. 아니 난 정말 진지 궁서체 아니 명조체로 하는 얘기임. 뭐 그런거 있지 않은가. 표지만 보고도 뭔가 재미있을 것 같다 아니다의 느낌. 물론 최근에는 소설이든 영화든 뭔가 겉만 호기심을 끌게끔 하고 노잼인 경우가 많아서 이런 느낌도 까봐야 알때가 많다. 한국소설에서 SF라는 장르에 대한 기대감은 제로 였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책을 다 읽은 지금은 말하자면 딱 표지의 그림과 띠지의 문구, 제목 이 세가지가 딱 맞아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 수 없는 그림들, 장르를 구분짓기 애매한 띠지의 문구들. 그리고 '미쳤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과연 좋은 쪽으로 미친걸까? 아님 그 반대일까? 나 조차도 이 소설의 영향 때문인지 의식의 흐름대로 텍스트가 나열되는 느낌이다.

우선 신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면 나는 종교는 없지만 신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신은 존재하지만 실제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런데 신이 파충류를 닮은 형태를 띠고 강림하기까지 하여 인간 세계를 돌아다닌다니. 정말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읽는 도중에 생각해보니 우주의 어느 별에 사는 변신 로봇이 인류 역사상 중요한 사건마다 함께했고 천둥을 관장하는 신이 지상으로 내려와 전쟁을 벌인다는 상상도 하는데 이런 상상이라고 못할게 뭐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신들은 한 인간에게 인류를 구할 마지막 구원자라는 임무를 준다. 그 구원자는 지구가 멸망할 임계점의 계기가 되는 시점(과거)으로 돌아가 잘못된 매듭을 풀고 자신의 숭고한 희생으로 인류를 구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어디선가 본듯한 평범한 SF 판타지 이야기 같지만 사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정확하게 내용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상태다. 책을 거의 2/3쯤 읽었을 때에야 대충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정도였다. 이게 말하자면 이 책의 단점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전체적인 스토리는 나쁘지 않았고 아니 뭐 재미있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야기의 흐름상 너무 내용을 파악하기 힘든 구성이다. 뭔가 중구난방의 느낌. 평행우주니 타임리프니 하는 것들이 이야기의 흐름에 떠다니지만 그런 시간의 파악이나 흐름도 해설을 읽고 나서 알았다. 뭔가 친절함이 필요하다는 느낌이다. 단순하고 쉽게 읽히는 소설을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이 읽으면 내용파악이 너무 힘들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폰트를 다르게 해서 이야기의 화자나 시점을 다르게 한 점은 알겠지만 그것마저도 뭔가 더 혼란스럽게 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텍스트도 너무 작고 빽빽해서 처음에 읽기 전에는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책을 무사히(?)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처음에 기대치가 낮아서인지 스토리만 놓고 보자면 꽤 흥미로웠던 소설이다. 처음에는 어떤 스토리인지 파악하기도 힘들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앞의 내용과 퍼즐을 맞추면서 읽어나가는 재미도 느껴졌다. 소설의 해설에 이 소설은 여러 이야기의 자투리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브리콜라주 형식의 소설이라고 했다. 실제로 해설에 보면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것들의 참고자료를 볼 수 있는데 어려운 말은 잘 모르겠지만 기존의 이야기들의 조각들을 모아 만들어낸 이야기이지만 식상하지 않고 무척 새롭고 놀라운 느낌이다. 그리고 혼돈의 카오스 같은 스토리에서 물흐르듯 매끄럽게 읽히는 필체라서 글을 읽는 자체는 막힘이 없다. 지금도 누군가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글을 쓴 작가는 모든 내용을 파악하고 썼을까? 왠지 아닐걸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소설은 SF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한국 소설에서 새롭고 신선하며 놀라운 스토리를 경험할 수 있는 소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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