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어른
이옥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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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런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지나온 세월 동안의 경험과 기억들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한다.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민코프스키는 이와 관련하여 ‘체험되는 시간 (Le temps vecu)'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동일한 시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듯하지만 각자가 개별적인 체험을 하며 살아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세상과 시간과 공간을 의미한다.


이옥선 작가의 <즐거운 어른>은 동일한 시공간 내에서 유사한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 듯 하지만, 동시에 체험되는 시간 안에서 지극히 개별적인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 대한 에세이다. 특히, 작가는 인생의 선배로서 자신이 살아온 삶을 회고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후배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담은 자신만의 삶의 체험적 진리를 건낸다. 또한, 자신이 겪어온 세상과 체험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옳든 그르든 전혀 새로운 세상이 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니 새로운 판을 짜야 옳다. (p. 26)'고 언급하며 유연한 사고를 보여준다.



<즐거운 어른>을 읽으며 같은 듯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체험되는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한 인간을 조명하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과 동영상을 찍을 수도 있고, 붓을 들고 한땀 한땀 그려볼 수도 있다. 또한, 최근 유행하는 사진을 지브리풍 그림으로 변형해주는 생성형 AI를 활용해볼 수도 있다. 이 중에서 사진과 초상화라는 극명하게 다른 방식의 차이는 한 사람을 바라보는 행위란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사진이 인물의 순간적 속사(速寫)로 한순간의 단면을 담는 것이라면, 초상화는 긴 시간 동안 각각 다른 빛 속에서 일련의 특징, 감정, 생각을 가진 개인의 다양한 모습, 지금까지 한 번도 동시에 드러난 적 없었던 여러 부분을 깊이 있게 담아낸다. 


따라서, 우리가 한 사람을 본다고 할 때 그 행위는 사진을 찍는 행위 보다 초상화 그리기에 가까울 수 있고, 특히 당장 눈 앞에 있는 사람을 볼 때가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과거의 역사와 함께 했던 기억을 같이 떠올릴 때 더욱 그럴 수 있다. 그림에는 한 사람을 일정 시간 이상 바라본 만큼의 시간성이 농축되어 있어, 어딘가 불분명한 선들로 이뤄진 한 사람의 형상이 오랜 시간 그 사람과 만나며 끌어 모은 세부사항들로 합성된 이미지처럼 나타날 수 있다. 각기 다른 시간과 빛을 거치며 덧입혀진 개인적 삶과 역사가 녹아 있는 초상화가 순간의 단면을 정확히 포착한 사진 보다 더 풍부하고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체험되는 시간’은 상대를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이 아닌 영원을 지향하는 초상화의 이미지로 변화시킬 수 있다.



초상화의 또 따른 매력은 초상화의 주인공 (그려지는 대상)이 어떤 사람이고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지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훌륭한 화가일수록 사진의 매력을 넘어서는 대상의 아름다움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옥선 작가는 훌륭한 화가이다. 현재의 세상의 스냅샷을 바탕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진사가 아니라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 또한 변화되는 세상을 어떻게 맞이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나가야 하는지 독자들에게 조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실과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연약하고 불완전한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 앞에서 용기를 가지고 상황에 대응하고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 쉽다. 하지만 어쩌면 그러한 불완전함과 취약성이야말로 각자의 개별적 상황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분모가 아닐까? 신뢰와 사랑, 자발적인 책임이 동반된 관계를 구축하고 용기와 위로를 나누는 것은 서로의 결핍과 불완전함을 일정 부분 해소해줄 수 있는 심연과 어둠의 해독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절망속이라 해도 함께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진정시키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뢰와 공감을 기반으로 진실된 관계를 구축하고 서로 연대하며 살아갈 수 있다.



"죽기전 아무도 더 많은 돈을 벌지 못한 것을 후회하거나 더 많은 권력을 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고 더 행복한 상태로 살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p. 38)



인간은 매순간 죽음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다 종국에는 모두 소멸하는 존재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간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퇴보하고 소멸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죽음을 예정하고 있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과 그러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 인간적 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존재와 소멸의 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정글과 같은 삶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절망속이라 해도 함께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진정시키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자각과,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인정’ 그리고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다. 그것은 환경의 제약 속에서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흐릿하게 잡힐 듯 떠오르는 희망에 대해, 삶의 온기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누구나 자신이 짊어져야 할 생의 무게가 있는 법' (p. 113)이고,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인생은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p. 114)라는 것, 그리고 '자유로운 인간이 된다는 것은 아무런 기대 없이, 스스로의 명랑성과 가벼운 마음가짐에 기대는 것' (p. 49)이고 '인생살이에서 보통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선량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제일 좋은 것' (p. 113)이라는 작가의 말에 개인적으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러면서 고고학자가 되어 내 자신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되돌아보고, 화가가 되어 나와 '체험되는 시간'을 맺어 온 사람들을 제대로 바라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무엇보다도 현재의 우리가 존재하게 한 과거를 기반으로 가뿐하고 유연하게 의미 있는 현재를 보냄으로서 미래를 대비하자는 작가의 말은 한동안 살아가는 지침이 될 것 같다.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갔거나 지나가고 있거나 지나갈 것들이다. 그러니 인간끼리의 관계를 너무 심각해하지 말고 가뿐하게 생각하고 유연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게 좋지 않겠나 싶다." (p.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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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왕 형제의 모험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장편동화 재미있다! 세계명작 4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김경희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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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는 "평범한 동화책이 아니다. 내 방의 벽에 기대앉아 오래 울었던 것을 기억한다."는 서평을 남겼다. 책을 읽기전에는 왜 한강 작가는 이 책을 평범한 동화책이 아니고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지만 책을 읽고나서 한강작가의 서평에 격하게 공감하는 나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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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왕 형제의 모험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장편동화 재미있다! 세계명작 4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김경희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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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 삐삐를 기억하는가? 삐삐 롱 스타킹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캐릭터이다. 야무지게 두 갈래로 땋은 빨간 머리, 주근깨투성이 얼굴에 짝짝이 긴 양말. 뒤죽박죽 별장에 새로 이사 온 삐삐 롱스타킹은 새로 사귄 단짝 친구 토미, 아니카와 함께 우당탕탕 즐겁게 생활하는 말괄량이이자 귀엽고 순수한 소녀이다.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과 <사자왕 형제의 모험>으로 대표되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들은 아동문학의 고전으로 일컬어지고 있고, ‘어린이책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 스웨덴 아카데미 대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린드그렌의 작품들은 원작 동화에서 그치지 않고, 영화와 연극, TV 드라마 등으로 수많은 국가에 번역되었고 재구성되어 널리 활용되고 있다.



어린시절 삐삐에게 빠져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린드그렌이 써낸  34권의 읽기책과 41권의 그림책, 이를 통해 쌓아간 그녀의 명성에는 인지를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하며 그녀가 동화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추천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 책을 쓴 작가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선물한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라는 걸 알고 정말 놀랍고 반가웠다. 그리고 그녀가 동화책 작가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 활동가였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린드그렌은 어린이와 여성, 동물과 같이 약하고 억압받는 존재들을 위해 목소리를 낸 활동가였다고 한다. 특히 어린이와 동물의 권리를 지지하고 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는데, 그녀 자신이 여성으로서 또 미혼모로서 사회적 폭력에 부딪친 젊은 시절을 보냈고, 이를 통해 얻은 경험들을 통해 외롭고 약한 존재들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언어로 승화시켰다.



린드그렌은 1980년대 후반 수의사 크리스티나 포르슬룬드(Kristina Forslund)와 함께 스웨덴의 여러 일간지에 공장식 축산을 비판하는 기고문을 실었고, 동물에 대한 더 나은 대우를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결국 이들의 활동은 후에 ‘린드그렌 법(Lex Lindgren)’이라고도 불리게 된 법의 제정으로 이어졌다. 린드그렌의 80세 생일에 발표된 이 법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동물 복지 관련 법이었다고 한다. 1994년 린드그렌은 “자연에 대한 사랑과 배려, 정의와 비폭력, 소수에 대한 헌신”이라는 공로로 ‘올바른삶재단(The Right Livelihood Foundation)’으로부터 대안 노벨상을 수상했다. 2002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스웨덴 정부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 문학상(Astrid Lindgren Memorial Award)’을 제정해 그 업적을 기리고 있으며, 2005년에는 린드그렌의 필사본을 비롯한 관련 기록들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다시 <사자왕 형제의 모험>으로 돌아오면 앞서 언급한 한강 작가의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한강 작가는 한 강연에서 이 책에 대해 "평범한 동화책이 아니다. 어느새 해가 져서 캄캄해진 내 방의 서늘한 벽에 기대앉아 오래 울었던 것을 기억한다."는 서평을 남겼다. 왜 한강 작가는 이 책을 평범한 동화책이 아니고 가슴을 치는 울림이 있다고 언급했을까?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책의 제목에 언급된 것처럼 용감하고 멋진 외모를 가진 형과 못생긴 외모와 연약한 육체를 가진 한 형제가 겪은 모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상실과 결핍을 가진, 또 상처를 받은 어린 영혼들이 모험을 거치며 스스로의 상처와 결핍들을 치유해가는 과정은 독자들에게도 그러할 용기와 힘을 불어넣는다. 또한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절망과 두려움에 맞서면서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는 꿈과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은 아이들에게는 물론 성인들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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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시간 교유서가 다시, 소설
김이정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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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내에서 적대적으로 공존하는 하나의 민족, 두 개의 한국, 이 민족적 비극의 기원은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국독립과 남북분단이라는 우리 민족이 겪은 고통스러운 기억과 그 이후의 역사적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이는 민족적 비극의 근원인 동시에 올바른 현실인식을 기반으로 한 통일 민주국가 수립 이라는 민족사적 과제 달성의 단초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비극적 시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 시기가 현재 우리사회의 지형을 형성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소설 <유령의 시간>은 이 엄혹한 시기를 겪으며 역사의 주변인으로서 삶의 기반과 정체성의 혼돈을 겪으며 항상 막연한 불안과 긴장을 강요당해온 우리 사회의 소외된 자들과 국가의 안전과 사회의 안녕 유지라는 명목으로 행해졌던 국가의 폭력과 부조리를 조명하고 있다. 한 국가의 국민이라는 것의 의미는 국민국가의 틀 안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삶의 기반이 있으며, 고유의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조국이자 고국이며 모국인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조국과 가족 구성원에 대한 분열로 국가를 넘어선 저 어딘가에서 자신의 근원을 찾아야 하는 자에게는 삶의 의미는 전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들에게 이상적인 조국은 모든 형태의 부조리가 일어나지 않는 곳이지만,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기 때문이다.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물줄기 속에서도 인간은 자신이 믿는 사상과 신념에 따라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걸음을 내딪는다.


"가난허고 무식헌 것들이 믿고 의지헐 디 웁는 판에 빨갱이 시상 되먼 지주 다 처웁애고 그 전답 노나준다는디 공산당 안헐 사람 워디 있겄는가요. 못헐 말로 나라가 공산당 맹글고, 지주들이 빨갱이 맹근당께요." (소설 태백산맥 中)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은 사상의 생몰(生沒)을 잘 표현하고 있다. 태백산맥의 무대인 벌교는 당시 오만의 읍민들 중 팔할이 농민이었고, 그 농민들 중에서 구할이 소작인이었다. 벌교뿐만이 아니라 해방 당시 한국은 전 농가의 86%가 소작농이었고, 전농지의 64%가 소작지였을 정도로 농업은 핵심적 경제기반이었고 인구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갑오농민혁명, 일제하의 소작쟁의에 이어 토지제도의 모순이 당시 주요 사회갈등의 원인으로 등장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민중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농민들은 지식을 통해 현실의 모순구조를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삶을 통해, 체험을 통해 그 문제상황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고, 시대 상황 속에서 이데올로기 대립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개인적 동기는 사회갈등으로 구체화되었고 이는 다시 집단적 이념으로 확장되었다. 소설 속 문서방의 한 맺힌 외침은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 <위대한 개츠비> 中에서 –


김이정 작가의 <유령의 시간>을 읽으며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상실과 결핍, 몰이해라는 인간의 한계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계 속에서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한 조각의 진실과 삶의 의미를 구하려 애쓰는 '인간'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조망하는 시선이 서로 닮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설 속 화자는 아버지의 삶을 한 마리 새우로 표현한다. 그 새우는 양식장의 바람 부는 호지 밑에서 온몸으로 물결을 버텨내던 한 마리 등 굽은 새우였고, 세상 누구보다 뜨겁고 격렬했지만 오랫동안 차갑고 어두운 곳에 갇혀버린 새우였다. 이 소설을 통해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물줄기 속에서 차갑고 어두운 현실을 견뎌내며 자신이 믿는 지향점을 따라 뜨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던 삶들이 다시 조명 받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를 통째로 집어삼킨 사상이란 것도 결국 인간에 대한 지극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냉정한 과학의 시선은 감정과 열정, 자유, 해방감 등 이 모든 것을 절제하고 억눌러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람이 가장 사람다운 순간은 사랑과 감정, 열정과 자유를 한껏 꽃피웠을 때가 아니던가?

"솔직히 난 어떤 사상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생각은 안드네. 다만 어떤 게 더 인간적인 제도냐의 문제겠지." (p. 134)

"뭐든지 뜨거운 마음으로 해야 돼. 공부를 해도 뜨겁게 하고 연애를 해도 마음을 다 바쳐야 돼. 그렇지 않으면 의무감만 남고 사는 게 재미없어." (p.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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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들의 수프 - 셰프의 독서일기
정상원 지음 / 사계절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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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프 정상원 작가의 신작 <글자들의 수프>를 읽었다. 그의 전작 <탐식수필>'쉐프가 빚어낸 파인 워딩의 세계'라는 추천사처럼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이란 주제를 가지고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그만의 새로운 세계를 빚어낸 정상원 작가의 '미식 탐험기'였다. 책의 부제 '미식 탐험을 위한 안내서'가 말해주는 것처럼 그는 맛을 창조해내는 쉐프로서, 또 맛을 탐미하는 미식가로서 그동안 쌓아올린 빛나는 체험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기적과도 같은 경험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펜을 들었다. 고백하건대 책에 소개된 탁재형 PD의 예언(?) 처럼 나도 책을 읽은 후 참지 못하고 <르꼬숑>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 정상원 작가의 신작 출간 소식이 반가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정상원 셰프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베테랑 셰프이면서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탐구하는 사람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문학에 관심이 많은 그는 기억의 도서관', '셰프의 아뜰리에' 등의 코스요리를 만들어내었고,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마들렌과 홍차를 모티브로 하는 메뉴도 개발하였다. 사실 본 작의 제목인 <글자들의 수프>도 그가 소설가 로맹가리를 오마주하여 만들어낸 요리의 이름이기도 하다. 요리재료인 오렌지와 단호박은 같은 노란색이지만 전혀 다른 맛과 무게감을 가진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를 상징한다.

 


"저자는 셰프로서 미학과 세계관, 인문주의를 관통해내는 최고의 도슨트다" - 변상욱 전 CBS 대기자 -

 


맛에 대해 탐구한 인류의 역사처럼 시대를 관통하는 고전 속에는 수많은 음식 이야기가 등장한다. <글자들의 수프>는 정상원 작가가 고전들에서 직접 길어올린 작가들의 음식에 대한 철학을 정상원 작가의 개인적 체험과 버무려서 독자들에게 감칠맛 나게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음식과 미학, 인문학을 집대성한 최고의 도슨트라는 변상욱 전 CBS 대기자의 평가에 고개가 끄떡여진다. 놀라웠던 건 문학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깊이였다. 토박이말에 대한 지식 뿐만 아니라 국내외 고전을 탐독한 세월의 깊이가 느껴졌다. 또한, 이를 토대로 한 문학적 표현들이 에세이에 잘 스며들어 있었다. 나름 문학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자부했던 나였지만, 김승옥 작가가 SF 소설을 썼다는 건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궁금해 하는 분들을 위해 잠시 소개하면, 소설의 제목은 <50년 후 디 파이 나인(D.π.9) 기자의 어느 날>이고, 자율주행 자동차 귀요미 19가 등장한다.)  정상원 작가의 차기작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그리고 작가와 음식과 문학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꼭 있었으면 좋겠다. ‘미칠 설렘과 못 미친 아쉬움은 오롯이 시작한 자의 몫이라는 정성원 작가의 말처럼 최고의 도슨트와 함께 맛에 대해 탐미하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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