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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 김정일 이후, 북한은 어디로 가는가
장성민 지음 / 김영사 / 2009년 1월
평점 :
우리에게 북한이란 말 그대로 멀고도 가까운 나라다.
80년대나 90년대 초 대학을 다닌 사람들은 운동권내의 소위 주사파들을 통해서 북한에 대한 정보들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이 보여줬던 북한의 이야기들은 상당부분 과장되고 미화되며 당시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던 모순에 대한 극대화된 표현을 위한 도구였던 것 같다. 반면 반공교육을 받고 자라면서 들었던 북한의 모습은 또 다른 형태였다. 마치 아프리카의 미개발국가의 샤머니즘 지배국가인 것처럼 북한은 늘 그렇게 묘사되었다. 극우가 되었든 극좌가 되었든 그들이 제시하던 북한의 모습은 극단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념적 좌표에서 자유롭게 북한에 접근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장성민 전 국회의원이 쓴 전쟁과 평화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은 비교적 객관적인 자료에 바탕한 냉철한 북한 바라보기의 결과물 이라는 것이다. 물론 부분적으로 작가의 의견을 개진함에 있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충분한 사료와 근거를 들어 북한사회를 바라보았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책은 크게 9개의 파트로 나뉜다.
북한 특유의 통치형태 때문에 정치권력의 정점에 있는 김정일이라는 인물의 개인적 통치행위가 전 국가의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관계로 작자는 김정일이라는 최고권력자를 바탕으로 북한사회를 분석하고 있다. 첫 장에서는 인간 김정일에 관해 바라보고 두 번째 장에서는 현재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김정일의 건강에 대한 문제를 살펴본다. 세 번째 장에서는 김정일 이후의 권력구도에 대한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살펴보고 네 번째 장에서는 김정일이 막후 조정하는 북한식의 독특한 외교방식을 살펴본다. 다섯 번째 장에서는 동북아 평화 나아가 세계평화의 한 축인 북한 핵 문제에 관한 고찰을 하고 여섯 번째 장에서는 다시 김정일 이후의 북한 체제에 관한 여러 가설들을 유추해 본다. 일곱 번째 장에서는 북한과 미국의 관계를 살펴보고 여덟 번째 장에서는 우방이면서도 사이가 멀어져 가고 있는 중국과 북한에 대한 관계를 살펴본다. 마지막 장에서는 작가가 제시하는 한반도의 평화조건을 들어볼 수 있다.
다각적으로 북한 사회를 바라볼 수 있도록 짜임새 있는 주제들로 채워져 있다.
저자가 이 책의 전체를 통해 제시하고자 하는 바는 어떻게 하면 북한을 국제사회의 패러다임에 동참시키면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북한 핵을 해제하고 미국을 통한 우호적인 경제원조를 이끌어 낼 것인가에 대한 고찰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서 나아가 발전하는 북한과 우호적인 미국을 통해 영구적으로 한반도 내에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드러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작가가 제시하는 한반도 문제의 가장 강력한 해결책은 북, 미간 정상회담을 통한 북미 일괄타결안을 제시한다. 간단하게만 생각했던 북미간의 관계는 이 책을 통해 바라본 결과 수많은 역학관계가 얽혀있는 복잡다단한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북한과 미국과의 문제를 넘어 북한과 중국 북한과 일본 북한과 남한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다단한 문제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서로 치밀하게 맞물려 있어 한 두 가지 변수의 등장에 따라 다양한 양태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복잡한 관계들을 일시에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으로 작가는 북미간 정상회담을 통한 북미 일괄타결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최고 권력자들이 결단을 내리면 하위로 내려가면서 그 결단을 구체화시켜 한반도 평화를 고착시킨다는 주장이다.
그렇다. 누군가의 결단이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 이런 저런 계산을 넘어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리고 접근하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를 찾아오는 길인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결단을 내릴 주체가 우리자신이 아니라 너무 먼 나라인 북한과 또한 먼 나라인 미국이라는 점이다.
이 책은 가려져 있던 북한에 대한 새로운 부분들을 자세히 알려준다. 한반도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어두운 역사 때문에 알아야 할 부분까지 가려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마치 아침 신문을 읽는 것처럼(좀 두껍긴 하지만) 자연스럽게 읽히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어려운 용어는 최대한 자제한 작자의 배려가 눈에 보인다. 인간 김정일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도 보이고 일방적으로 북한과 국제정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이유들을 설명하고 있다. 북한이라는 거대한 화두에 쉽게 접근해 가기 위한 충분한 대중서적임이 틀림없다. 아쉬운 점은 군데군데 있는 오타와 미묘한 부분에서의 문법적 실수 등이다. 전문 작가가 아니기에 발생할 수 있는 일이지만 교정파트가 이런 부분을 놓졌다는 것은 아쉽다. 양서의 가치를 조금 낮추는게 아닌가 싶다.
어느날 김정일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그것이 왜 그리 큰 문제인지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책을 통해 본 결과 김정일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고 나면 엄청난 변수와 상황이 돌출되게 되어있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 내의 평화와 통일에 관한 문제이기도 한 것이었다. 역사소설을 읽듯 누가 그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내가 사는 이 사회가 변화해 가느냐의 문제였던 것이다. 그만큼 북한문제는 우리 그리고 나에게 다양한 방면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이 핵을 사수하고자 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단순히 미국에 대한 협상카드로만 생각했지만 핵을 통해 가질 수 있는 지위와 피해가 복잡하고 다양하게 얽혀있다는 것을 이책을 읽고 서야 알 수 있게 되었다. 핵은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정세적으로나 복잡한 위치에 있는 한반도의 상황을 대변해주는 하나의 매개체였던 것이다.
책을 읽으며 줄곧 생각한 것은 한반도 안에 전쟁이라는 악몽이 한 순간에 일어날 수도 있고 영구적인 평화가 정착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정책결정자들의 미묘한 판단에 의해 전쟁이냐 평화냐의 결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한반도 안에 살고 있는 힘없는 소시민의 한사람으로 북이든 미국이든 오판을 통한 섣부른 전쟁은 한 민족의 운명을 어둠으로 몰아넣을 수 는 중차대한 일임을 알았으면 한다.
객관적 실체로써의 북한에 대해 접근하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