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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헤 1
미카 왈타리 지음, 이순희 옮김 / 동녘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는 이집트. 그러나 이집트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다. 그저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그리고 왕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알뿐 그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면 내가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몇 년전 람세스라는 책을 통해 어느 정도 이집트를 알게 되었지만 그것이 다일 뿐 더 이상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없다.
호기심에 보게 된 책 시누헤.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책의 표지로만 봐서는 왠지 왕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 같아 더욱더 호기심이 증폭된 책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은 왕이 아닌 왕의 의사였던 시누헤의 이야기이다. 그의 눈으로 본 그 당시 생활상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겨져 있다.
의사 센무트의 아내 키파는 갈대배에 실려 떠내려 온 아기를 발견하고 그를 데려다 키운다. 키파는 아이에게 옛날이야기의 주인공 이름을 따서 시누헤라 짓는다. 옛날 이야기 속의 시누헤는 파라오의 궁정의사였는데 왕궁의 무시무시한 비밀을 엿듣게 되어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먼 이국땅으로 도망을 가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그 나라 왕의 딸과 결혼하여 이집트로 금의환향하게 된다. 이러한 전설 속의 인물의 이름을 가지게 된 주인공의 삶은 그리 평탄해보이지 않는다. 물론 소년시절의 이야기에서는 별로 남다를 것이 없지만 청년시대에 접어 들면서 그의 생활은 그다지 순탄해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네페르네페르네페르를 만남으로 그의 인생은 180도로 달라진다. 이 여인을 만남으로써 자신을 키워준 부모에게 몹쓸 짓을 하게 되고 끝내는 부모님의 죽음까지도 보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하여 그는 이집트에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되었고 그의 노예 카프타와 함께 여러나라를 전전한다. 이 와중에 그의 친구 호렙헴이 주변국들을 다니며 그 정세를 알아봐줄 것을 부탁함으로 그는 바빌론, 힛타이트, 미탄니 등 여러나라를 돌아다닌다. 물론 그가 의사라는 점을 이용했기 때문에 그의 생활은 그다지 궁핍하지 않다.
바빌론 가짜왕 축제때 만나게 된 여인 미네아를 사랑함으로 크레타까지 가게 되지만 이 여인을 죽음에서 구해줄 수는 없었다. 사랑하던 여인 미네아를 잃고 그는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일들도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한편 이집트에서는 새로 왕이 된 아케나톤이 이제까지 아몬 신을 섬기던 전통을 부정하고 아톤을 신으로 추앙하려한다. 탐욕으로 얼룩진 아몬 사제들과 귀족들에 염증을 느낀 그는 아톤의 제국을 건설하려 수도를 테베에서 아케나톤으로 옮긴다.
아톤의 사상은 그 당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상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다는 사실,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모든 일들을 해결하는 것 등은 지금으로선 당연히 여겨지는 사상들이지만 그 당시로선 이러한 사상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또한 아톤 사상을 받아들임으로써 백성들의 삶이 더 피폐해졌기에 백성들은 오히려 옛날을 더 그리워하게 된다.
그리하여 아톤 사상을 부르짖던 파라오를 독살하고 이전의 아몬을 섬기던 때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때 시누헤 또한 네페르네페르네페르에게 복수를 하지만 복수는 오히려 그녀를 이전보다 더 부유하게 만들어준다. 처음 그녀에게 복수를 할때만 해도 통쾌했던 그였지만 그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파라오를 자신의 손으로 독살했지만 누구보다도 파라오의 사상을 이해했던 시누헤였기에 그의 남은 생엔 파라오의 사상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려한다. 물론 호렙헴의 저지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모든 역사 소설이 이렇다면 참 읽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의 내용을 죽 늘여뜨려 놓은 듯한 느낌에 소설을 읽으면서도 쉽게 그 이야기에 동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이라면 람세스 이전의 이집트와 이집트를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을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할만하다. 또한 시누헤가 여러 나라를 둘러보며 그들의 문화와 사상들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고대엔 어떻게 살았는지 이 책을 통해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그러나 조금은 씁쓸함이 남는 소설이었다. 반드시 선한 의지가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소설이었다. 아무리 좋은 제도일지라도 백성들의 삶을 더 궁핍하게 만든다면 그것이 좋은 제도가 될 수 없다는 사실과 아톤의 사상을 백성들과 귀족들, 아몬 사제들, 그리고 각 나라에 서서히 주입시킬 수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하게 된 소설이었다. 즉 위로부터의 개혁이 아닌 진정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이루어졌더라면 아톤의 사상을 피력하던 파라오도 독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