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밀리건 - 스물네 개의 인격을 가진 사나이
다니엘 키스 지음, 박현주 옮김 / 황금부엉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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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나 당신 주변의 사람이 강간이나 납치 등의 범죄 피해자인데 정신병등의 이유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빌리 밀리건을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바로 이것이었다. 내 주변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빌리 밀리건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이 빌리 밀리건을 용서할 수 있을까? 아무리 다중인격이라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죄값을 치루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를 누가 허락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이러한 편견을 가지고 빌리 밀리건을 읽기 시작했다. 그를 이해하려하기보다는 그가 저지른 범죄에 중점을 두면서 말이다. 아무래도 내가 여자이다보니 강간이나 납치와 같은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아무런 제약없이 무죄를 선고받고 길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정말 그가 정신이상자인지 아니면 그렇게 꾸미려 하는 것인지 모른채 그저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말에 따라 그가 무죄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니 말이다.

 

빌리 밀리건은 납치 강간등으로 기소되었지만 해리성 정체장애 즉 다중인격 판정으로 인해 무죄를 선고 받는다. 그리고 이 책은 그가 어떻게 해서 다중인격이 되었는지 다중인격이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다중인격으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상황들을 보여줌으로써 좀 더 객관적으로 이 사건을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하는 책이다.

 

다중인격의 특징으로는 기억상실을 꼽을 수 있다. 즉 자신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아가 벌이는 일에 대해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빌리 밀리건의 경우 24개의 인격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니 누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 더 설명할 수 없었던 부분이 많았다. 또한 다중인격이라는 말처럼 그의 몸 속에 있는 24개의 자아는 인격체로 불리기보다는 그 자체로서 인정받기를 원했다. 즉 24개의 자아는 각각 독립된 객체로서 사고하는 방식, 말하는 방법, 성별, 나이, 고향까지도 각각 달랐다.

 

처음 재판을 받을 때만 해도 그의 인격은 10개로 분리된 것처럼 나왔지만 무죄 판정을 받고 치료감호를 받으면서 그의 자아가 24개로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24개로 분리된 데에는 어릴때 의붓아버지의 학대에 의한 것임이 밝혀진다. 그리고 그가 치료를 받으면서 어릴 때 학대를 당했던 일로 인해 그의 자아가 분리된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자신과 같은 이가 생기지 않도록 어린이 학대방지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의 인격 안에는 어린이나 여자아이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또한 어릴때 의붓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했던 만큼 성인 남자를 대할때는 두려움을 동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의붓 아버지는 이 사실을 끝까지 부인한다. 자신은 빌리를 학대한 적이 없다고 언론에 밝히고 있다. 물론 빌리와 같이 살던 당시 빌리의 엄마와 형, 동생을 통해 그 사실을 반박하고 있긴 하지만 의붓아버지를 직접적으로 만나서 서술한 것이 아니기에 어떻게 보면 객관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재판상으로 서술된 것이기에 어느 정도 사실성은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빌리는 자신의 자아가 분리된 것은 의붓아버지의 학대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그 전에도 분리된 자아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면 꼭 의붓아버지 때문이라기보다는 자기방어적 요소가 많아보인다. 즉 자신에게 해를 가할 것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것을 회피하고자하는 방어기제로서 다중인격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또한 이 책에서는 빌리가 치료감호를 받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 상황에서 억압이 많을수록 더더욱 인격분리가 일어난다는 사실은 이러한 방어기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빌리밀리건의 사건이 유명해진 이유는 언론과 정치권의 개입 때문이다. 그들은 빌리 밀리건의 사건을 공개함으로써 다중인격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었고 빌리 밀리건을 이해하려하기보다는 그것을 이용하려했던 흔적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이 책을 통해 보는 언론과 정치권의 모습은 역시나 약자를 이용하는 강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한편의 논문 같다고 해야하나 아님 객관적인 신문사설 같다고 해야하나 그런 느낌을 받았다. 어떤 감정적인 언어보다는 그저 다중인격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서 그런 상황이 되었는지 등을 조심조심 설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판단을 독자 스스로가 내리길 원하는 것 같다. 처음 이 책을 보기 전만해도 빌리 밀리건이 행한 범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내가 이제 빌리 밀리건에 대해 그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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