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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의 미소 - 노성두의 종교미술 이야기
노성두 지음 / 아트북스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유럽에서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들로부터 많이 들었던 푸념 - "실기는 자신 있는데, 이론 때문에 죽을 지경입니다". 단지 '말빨'의 문제가 아니다. 유수의 미대나 디자인 스쿨에서 한국 출신 학생들의 데생 능력은 단연 최고지만, 그것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마는 예를 종종 본다. 작품으로 말한다는 것도 어느 정도지, 하다못해 작품에 제목을 거는 일조차 이론적 작업에 속할진대, 작품 마다 '무제1', '무제2' 식으로 이름을 붙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이론'이라는 것,
자기 나름의 고유한 경험과 인생관을 여러 가지 컨텍스트 내에서 견주어보고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있는 형태로 제시하는 능력일 것이다. 깊이 있게 성찰해 보고, 그 성찰을 다른 사람들의 사유와 비교도 해 보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득력있게 말하는 능력 말이다. 이런 능력이 어릴적부터 입시 전문 학원- 흔히 공장으로 비유되는-을 거치며 '실기 머신'으로 양성되는 과정에서 얻어질리 만무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성화의 미소'는 서양 문명의 한 근간을 이루는 그리스도교 문화와 서양 인문학의 큰 전통들, 그리고 저자의 고유한 삶의 체험을 잘 버무려 낸 맛있는 비빔밥 같았다. 전통에 강하다는 것, 뿌리를 천착한다는 것, 이것은 대단한 강점이다. 적어도 뜬금없는 소리를 하지 않게 해주는 탄탄한 지지대를 가졌다는 뜻. 동시에 이 전통들을 살아있는 것으로 현재화시키는 데는 저자의 탁월한 입심과 공부내력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은 물론이려니와 '인문학적 교양'을 쌓고자 하는 이들에게 무척이나 유익한 책이 될 듯.
단지 아쉬운 점 세 가지를 들자면,
첫째, 저자의 예술사적 지식에 비추어서 종교학적 언급에는 몇 군데 아쉬움이 있다. 예컨데 장미창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막달라 마리아에 관해서...이런 대목에서 부정확한 '주장'들이 보인다.
둘째, 종교적 텍스트를 읽는데 있어서 저자의 라틴어 지식은 약이면서 동시에 독이 되기도 하는 듯.
셋째, 그래도 명색이 그림에 관한 책인데 인쇄 상태가 좀....내 책만 그런 건지 몇 군데서 색이 번졌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을 상쇄할만큼 충분히 값어치를 하는 책이다. 내 생각으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