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티 바르게 개는 법 - 어른을 꿈꾸는 15세의 자립 수업
미나미노 다다하루 지음, 안윤선 옮김 / 공명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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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책 분야에서 처음 보고, 내용이 흥미로워 구입했다.
제목도 <팬티 바르게 개는 법>이라니!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대부분의 남편들에게 지침 하는 내용인가? 잠시 생각했지만 의외로 청소년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책이라는 사실.
일본에서 전국 가정교사모임 추천 도서로 뽑혔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내용의 책이길래. 심히 궁금하다.

팬티 바르게 개는 법
: 어른을 꿈꾸는 15세의 자립 수업

 

이 책은 영어교사로 13년간 재직한 선생님이 학생들의 무기력함을 고민하다 일본 최초의 남자 기술 가정과 교사로 재직하면서 실제로 학생들의 변화를 살펴보며 깨달은 내용을 담았다.


처음에는 학생들 모두 꿈이 없고, 의욕이 없다고 생각해 학생들 개인적인 문제로 접근했지만, 상담을 나눠 보며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생활을 제대로 관리하는 법을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나미노 다다하루 선생님은 이 책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진짜 삶을 사는 힘'을 기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4대 자립, 즉 생활의 자립, 경제적 자립, 정신적 자립, 성적 자립에 대해 말이다.
학생들의 행동은 그들 마음에서 나온 게 아니라 생활 태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 후 4대 자립을 알려줌으로써 우리가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기술 가정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생활력을 몸에 익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개척해 가는 인생의 대전제가 되는 것이 '생활력'입니다."

학생들에게 말하고 있지만, 요즘같이 자립성이 부족한 우리 어른들에게 꽤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없어 연애를 못하고, 돈이 없어 결혼을 못하고, 돈이 없어 출산을 미루는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어쨌든 두 발로 이 땅에 서는 힘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 힘은 바로 '자립'에서 시작되지는 않을지.

"'생활적 자립'은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생활을 쾌적하게 꾸려 나갈 수 있는 힘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을 가리킵니다."

부끄럽지만 나는 결혼을 하고 독립을 하고 나서야 스스로 생활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회사에 다닐 때 돈은 벌어 알아서 저금하고 소비 패턴을 길렀지만, 그 외의 집안일(내 방 쓸고 닦기, 내 옷 세탁하기, 티셔츠 개기 등)은 전혀 터치하지 않고 엄마에게 미뤘다.  
아니, 당연히 엄마의 일로 여겼다. 물론 엄마도 나에게 시키지 않으셨다. 결혼하면 다 하게 될 거란 이유로.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다짐한 건 내 자식들에게는 꼭 생활 자립력을 키워줘야겠다는 것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알려주고, 그걸 해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작은 성취감을 차곡차곡 쌓아주고 싶다. 아마 미나미노 다다하루 선생님도 이 점을 생각했겠지.

"모든 것의 기본은 무엇보다 먼저 자립하는 것입니다. 자립하면 행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사실을 부디 잊지 마세요."

자립은 혼자 서 있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사회는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므로 내가 먼저 자립해야 다른 이를 도울 수 있고 서로 배려하며 살아갈 수 있다. 즉, 자립하는 것은 개인의 노력이지만 그 태도들이 모여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오늘은 완벽하게 숙제를 끝냈다든지, 저녁식사를 준비해 주었더니 가족들이 기뻐했다든지, 방 청소를 했더니 기분이 좋아졌다든지 등 소소한 '좋은 일'을 발견할 때마다 자신 안에서는 작은 '자신감'이 쌓여갑니다. 사소한 것 하나가 작은 '자신감의 파편'과도 같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매일 조금씩 쌓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커다란 '자신감'의 산을 이룹니다. 이 산은 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그렇지만 하루하루 커져가는 건 분명합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늘 공부하라고 말한다. 그것이 학생의 본분이라고. 앞으로 무얼 할 것인지 꿈을 키우며 사는 게 먼저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태도는 자립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행하며 자신감을 키우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스로 돈을 버는 학생들은 경제력 자립을 키워 나가야 한다. 하나씩 해내가다 보면 학교 다니는 게 무의미하지 않고,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 실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표정이 없다. 누구보다도 풍족한 혜택을 누리고 있음에도, 부모들이 뒷바라지를 다 해줌에도 무엇인가 부족한 느낌이다. 청소년은 직접 스스로 해봐야 한다. 2시간 공부 시간에 1시간을 딴짓한다면, 그 1시간을 화장실 청소에 할애해 보거나 세탁기 돌리는 방법을 숙지하는데 써보면 어떨까?

"자기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가족 중 누군가가 해주는 것은 없습니까? 자기가 해야 할 일인데 남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식사 준비, 세탁, 청소, 장보기 등 생활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떠올려보세요. 이 모든 것을 마땅히 '엄마의 일'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는 자기 생활을 스스로 정돈하는 힘, 그것을 '생활력'이라고 부릅니다. 이 생활력이 있으면 매일 기분 좋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웬만큼 사소한 일에는 쉽게 굴복하거나 꺾이는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생활을 꾸려온 자신감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낳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혹은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꼭 읽으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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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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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표지만 보고 흠칫했던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sns에서 몇 줄의 문장을 보고 반해 바로 온라인에서 주문해 읽었다. 생각보다 촘촘하고 사유가 깊은 내용이 많아 한 번에 많은 내용을 소화하기는 벅찼던 책. 사실 표지 색상은 여리여리한 분홍색인데 책 속 내용은 뭐랄까. grey이색이야가 어울리는 것 같다. 결혼 후 자주 울컥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진심을 담아 울컥한 내용 같으니까.

이 책을 소개하는 구절엔 이렇게 나온다.
"이 책에 담긴 싸움 목록은 크게 네 가지다. 여자라는 본분, 존재라는 물음, 사랑이라는 의미, 일이라는 가치"

-저자의 말 중-

내가 가장 재밌게 읽은 챕터는 여자라는 본분과 일이라는 가치다. 결혼 후 여자는 어떻게 변하는가. 여자인가, 아내인가, 엄마인가, 딸인가, 며느리인가. 때에 맞춰 가면을 바꾸며 사는 사람처럼 결혼 한 여자도 그런 건 아닐까. 사실 이 책을 내가 결혼 전에 읽었다면 크게 와 닿지 않았을 것 같다. 사회에서 소소하게 느꼈던 남녀 차별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면서도, 결혼 후 느낀 부부 사이에 벌어지는 차별은 예민하게 반응했고, 때론 울분했다. 왜 사위와 며느리는 다른 걸까. 남자, 혹은 여자 혼자 배우자는 놔둔 채 여행하는 게 뭐가 문제인 건가? 그걸 시댁에 허락을 받았냐는 질문을 왜 받아야 하는 걸까. 물론 결혼하고 난 뒤 얻은 행복감과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지만, 그에 못지않게 발생하는 사소한 문제들은 끊임없이 결혼 생활 주변에 어슬렁거렸다. 그래서 이 책은 결혼 후 느끼는 이상함을 문장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내 삶이 내 살 같지 않을 때 존재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한없이 투명해지려면 계속 말해야 한다. 싸움이 불가피하더라도"

맞는 말인 것 같다. 의미가 옅어지고 존재가 희미해질수록 나에게, 주변에게 묻고 또 물어보면서 말해야 한다. 올해 나의 목표가 '할 말은 하고 살자'인데, 그동안 가만히 있으니 다들 가마니로 보는 걸 겪고 난 뒤 깨달은 삶의 이치다. 할 말은 하고 살자.

"사는 게 총체적으로 낭비라는 걸 인지하지 못할 때는 살림만 미워했다. 살림이. 정확히 가사 노동이 지겹고 하찮게 느껴져서 제발 집안일 안 하고 살길 간절히 염원했다. 지금은 아니다. 좀 나아졌다. 콩나물을 다듬고 깻잎을 씻고 쌀을 씻으면서, 땅에서 난 그것들을 만지면 마음이 순해지고 위로를 얻는다. 바닥 구석구석에 어질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담으며 헝클어진 번뇌를 같이 모아버린ㄷ. 떨어진 단추를 달고 터진 솔기를 꿰매면서 벌어진 마음의 틈을 메운다. 해드는 오후 마루에 앉아 빨래를 반에서 반으로 접으며 미련과 회한을 접는다. 날 괴롭히는 것이 날 철들게 한다더니 살림이 그렇다."

정말 딱 맞는 말이다. 나는 엄마가 왜 화를 내면서도 그렇게 방바닥을 닦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지 몰랐다. 그 행위가 엄마의 속을 달래주는 것도 모르고.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살림을 살아보니 알겠다. 어쩔 수 없이 하지만, 하면서 묘하게 편해지며 빨려 드는 것이 바로 살림인 것을. 나는 이것을 육체 노동의 기도라고 부르는데, 하나씩 정리하며 해야할 일을 하다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때가 온다.
대부분 집안일은 여성의 몫일 것이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도 여성이 훨씬 많이 가사 노동을 한다고 하니, 여성의 일은 안과 밖에서 끊임이 없다. 하지만 살림에서 느낄 수 있는 이 마법 같은 기분을. 대부분의 여성은 공감하겠지.

"젊은 날 자유하고 성찰하며 살았던 사람은 자기 삶을 짓누르는 나쁜 공기를 금세 알아챈다. 이것은 위대한 능력이다."

이곳, 저곳에 글을 쓰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가끔은 너무 깊이 들어가 결국은 부정적인 잡념들로만 채워질 때도 있지만, 그런 것들도 결국은 나를 이루는 에너지라고 생각하면 버릴 것이 없다. 이렇게 사유하고 성찰하는 일이 나를 알아가는 일임을 알기에. 그래서 나중에 도움이 되리라는 확신으로,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기록해 본다.

그러는 의미로 오늘은 처음으로 '모닝 라이팅'을 시작했다. 물론 이게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나쁜 짓이라도 하는 게 낫다"

돈과 명예를 떠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되면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 계속 집에 있다고 하더라도 손을 쉬게 하지 않고 머리를 써서 조금이라도 새롭게 살려고 노력해야겠다. 위문장을 보고, 눈이 번뜩였다. 나라는 존재를 잃지 않기 위해, 투명해지도록 싸우자.

"사는 동안 존재를 확장하려는 노력은 멈출 수 없겠지만 순한 양처럼 주어진 시간에 복종하고 싶다.
어디로든 끝 간에는 사라질 길. 그저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이 책에서 느껴지는 은유 작가는 대범한 여성 활동가인 것 같지만, 또 어떻게 보면 순하디 순한 여성인 듯도 하다. 또 언어를 모아 사랑하는 문장을 만드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 이 책의 매력이 있다면 바로 이것. 평범한 바람이 간절해지는 것.

"생의 시기마다 필요한 옷이 있고 어울리는 색과 취향이 있듯이 삶의 체형에 맞게 인연도 변해간다."

결혼한 여자가 바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학생이었다가, 직장인이었다가, 아내였다가, 엄마가 되는 시기마다 챙겨 할 것들이 생기고 바뀌어야 할 것들이 늘어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바로 '나 자신'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필요하면 싸워서라도 쟁취해야 하는 게 바로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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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울 것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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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임경선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맨 처음 '태도에 관하여'라는 책을 읽고 팬이 되기 시작해 모든 책을 섭렵한 후 책을 넘어서 SNS로까지 작가를 따라다니며 종종 새 책의 소식을 접해 왔다. 트위터에서 간혹 신작 에세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과연 어떤 내용의 책일까 매우 궁금해하며 1월을 기다린 것 같다. 그렇게 열렬히 기다리던 책은 바로 '자유로울 것'. 싱그러운 초록색 표지에 아주 잘 어울리는 제목의 이 에세이는 임경선 작가가 생각하고 정의하는 '자유의지'에 대한 여러 이야기다. 전작 에세이에서는 우리가 살면서 추구해야 하는 태도에 대해 풀어 놓았다면, 이번에는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삶의 태도인 '자유'라는 주제로 매우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낀 것이 있다면 '자유라는 가치는 내가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작가가 증명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타인이 나에게 부과하는 것이 아닌,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내가 능동적으로 찾아야 하는 것이 바로 '자유'라는 것임을 말이다.

 

최근처럼 자유라는 단어를 이토록 또렷하게 의식하며 살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근래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련의 불행한 일들 때문이다. 내가 제아무리 개인의 생활 속에서 자유를 추구하며 산다고 해도, 보다 근본적인 의미의 자유로움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두 다 무용지물이다. (중략) 자유와 존엄을 박탈당한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나는 틈날 때마다 한 명의 시민으로서 저항을 해나갔지만, 개인적 인간으로서 나는 지금 내 자리에서 가급적 맑은 정신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었다. -서문-

 

이런 마음가짐으로 탄생된 책이 이 책이다. 비록 주변은 어두울지라도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자유를 조금씩 찾아가는 과정일 수 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주어진 상황에서 본인이 진정 자유로워지기 위해 찾은 책, 영화, 인물들에 조근조근 말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나만의 자유를 얻기 위한 힌트를 찾아 생각해 볼 수 있다. 내가 자유롭고자 마음먹는다면 '어디에 있더라도 나는 자유로울 수 있다'라는 것을.
이 책에서 내가 찾은 '자유로 가는 방법'은 바로 '작은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는 것. 그래서 뒤돌아보면 작은 자국들이 땅에 오롯이 남겨진 것을 바라보는 일'이다.

 

아무튼 일은 실제로 경험해보는 것 말고는 결코 그 적성도를 알 방법이 없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무리를 해야 기회가 열린다. -P 95-

 

맞는 말이다. 내가 이 일이 맞는지,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에 대해 이것저것 머릿속으로 혼자 재고 있는 것보다는 직접 일에 뛰어들어 내 몸으로 직접 확인해 볼 수밖에 없다. 비록 그 일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일단 하는 동안에는 아무 의심 말고 그저 푹 발을 담가보는 것밖에는 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임경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단단하고 속이 꽉 찬 사람들은 꾸미거나 과장할 필요가 없다. -P135-

 

올해의 나의 목표 마음가짐이다. 단단한 내실을 만드는 것. 살다 보니 단단한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간다. 외향이 화려한 것은 결국 허세인 뿐이고, 바람에 쉽게 흔들리는 것이란걸. 하지만 단단한 내공을 쌓는 일은 무척 어려운 법. 많은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들고 그것들을 통해 삶의 방향에서 흔들릴 때 지탱할 수 있는 무언가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그래서 올해는 책을 좀 더 많이 읽고, 쓰는 기록을 남겨 보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로울 것'이라는 책은 첫해를 시작하는데 참 잘 어울리는 책이다. 대개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히는 편한 에세이지만 그 속 내용은 조용히 차곡차곡 내 머릿속과 마음속에 남아 하나의 태도를 이루게 된다. 가령 성실하고 꾸준하게 일하고 싶다는 마음. 결혼했지만 서로 구속하지 않고 각자의 그늘을 존중하며 살고자 하는 다짐 같은 것을.

 

나는 기본적으로 주인 혼자서 직접 운영하는 가게에 대한 믿음과 호감을 가지고 있다. 사장님은 친절했지만 손님들과 적절한 거리를 두었다. 먼저 말을 걸거나 다가오지 않았다. 말없이 자신이 만드는 커피에만 집중했고 한가할 때는 주로 조용히 책을 읽었다. -P110-

 

이 구절을 읽을 땐, 임경선 작가의 소설 '나의 남자'에서 나오는 주인공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카페 운영을 오롯이 맡고 있는 주인공은 그 육체적 노동에 믿음과 매력이 동시에 존재했다. 아마 내가 느낀 건 '움직임에서 나오는 꾸준한 성실함' 같은 거였을 거다. 원래는 게으름의 정석이었던 내가 결혼을 하고, 집의 모든 소소한 일까지 하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부지런해야 했다.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는 큰 틀 아래서도 얼마나 작게 챙겨야 할 게 많은지. 내가 해 보니까 알겠더라. 자잘한 육체적 노동은 성실함의 표준 같은 것이란걸. 결코 부지런하지 않으면 움직임이 없는 걸 주부가 되어서 깨닫게 되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가치를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전업주부의 노동 대가를 지폐로 따지면 꽤 많은 금액이라는 기사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느끼는 무의미를 의미 있게 바꾸기 위해선 나의 시선을 바꾸어야 한다. 내가 이 노동을 그냥 가치 없음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내가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이 쓴 <한겨레 > 칼럼의 한 구절이 위로가 되어준다.
"삶은 할 일로 채워지는 것이지 안정과 성취는 실상 존재하지 않는 관념이다."
멈추고 만족하며 안주할 수 있는 지점은 애초에 어디에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중략>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나의 페이스를 지켜가면서 조금이라도 더 깊은 글을 가급적 오래도록 써나가는 일, 오로지 그것만이 누가 뭐래도 설레는 일이기 때문이다.

-P281~282-

 

직장을 다닐 때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기획한 일을 알아봐 주고 그것이 많은 이익을 남기길 원했다. 하지만 늘 불안하고 걱정의 연속이었던 시절. 매일 한 달을 미리 내다보며 살아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아슬아슬했을까. 아마 지금의 나라면 하루에 충실할수록 미래의 한 달이 좀 더 여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르는 미래에 끊임없이 고민하고 대비하는 것보다 내게 주어진 하루의 일을 정기적으로 마치고 그 안에서 작은 성취감을 맛보는 게 훨씬 안정된 시간임을 지금은 알기 때문이다. 내 생각엔 임경선 작가도 그런 시선을 독자에게 던지고 싶었던 것 같다. 작가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지금, 이곳에서 자신의 할 일을 그저 묵묵히 해내라고. 그 자리를 지키라고 말이다. 때론 누군가의 뜨겁고 불편한 응원이 아닌, 차갑지만 차분한 응원이 훨씬 마음에 들 때가 있는데, 바로 이 책이 그런 응원의 문장이다.

 

나는 임경선 작가의 단순한 시선이 좋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말을 복잡하고 무겁게 하지 않고 심플하고 명쾌하게 전달하는 것.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이런 메시지가 와 닿기도 쉽고, 특히 나같이 미련 많고 과거에 집착이 강한 사람일수록 작가의 단순함과 명쾌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책이 좋다. 계속 읽다 보면 태도와 생각의 유연함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책은 명절에 읽기 정말 좋은 책이었다. 아마 명절만 되면 이곳저곳이 아프고 괜히 속병이 생기는 주부들이 틈틈이 이 책을 끼고 읽었더라면 시댁에서 보내는 날이 그리 어렵고 불편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왜? 어디에 있든, 우리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수 있는 존재임을 알 수 있으니까. 복잡한 고부 관계, 괜히 남처럼 생각되는 남편과의 거리를 그대로 인정하고 며느리로서, 아내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해냈다면 그것만으로 자유에 다가서는 한 걸음을 떼기 시작한 건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유로울 것' 임경선 에세이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일상에서 캐치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나도 어렵지 않게 자유를 위한 실천을 할 수 있게 된다. 자유라는 것은 거창한 게 아니다. 내가 할 일을 끝내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여유롭게 책을 읽는 것. 이것이 '작지만 확실한 나의 자유'다.

 

자유란 무엇일까.
내 마음과 영혼이 시키는 일을 내 몸이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가장 편안한 상태일 것이다. -서문-

 

추천 대상: 자유롭고 싶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는 것 같은 사람.
작가의 다른 도서 추천: 태도에 관하여, 나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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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의 마성의 중국어
배정현 지음 / 혜지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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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서 동영상 보면서 열심히 잘 배우고 있습니다 !! 혼자 보는 동영상 강의지만 뭔가 함께 배우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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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이별 문학과지성 시인선 489
류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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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좋은 시집 읽었습니다. 약간은 우울한 감정이지만 그 안에서 인생에 대한 최선을 느낄 수 있는 시집입니다. 쉽게 읽히는 시집을 읽고 싶다면, 어떻게든 이별,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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