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방 예찬 - 차마 말하지 못했던 부부 침대에 관하여
장클로드 카우프만 지음, 이정은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 부부는 지난 겨울 잠시 각방을 썼었다. 가장 큰 이유로는 남편이 깊게 잠을 못드는 이유였고, 소소한 이유를 덧붙이자면 나의 코골이(코 고는거 처음 앎;;) 때문이었다. 남편은 괜찮으니 따로 자지는 말자고 했지만 다음날 일찍 출근하는 남편에게 조금이나마 질 높은 수면을 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각방을 자처했다. 사실 작은 방이 안방보다 더 따뜻해서 나한테 좋기도 했지만 ^^;

 

하지만 정말 좋았던건 결혼 후 처음으로 가진 나만의 이불이었다. 우리는 킹 사이즈의 침대를 나눠 쓰지만 남편과 누우면 혹여라도 깰까봐 잘 뒤척이지 못했고, 양 팔을 마음껏 뻗지 못해 늘 웅크리고 잤어야 했다. 그런데 혼자 자니까 마음대로 자세를 취하며 잘 수 있었다. 그게 뭐라고, 참 좋았더랬다. 그래서 '부부는 한 침대라는 공식'을 벗어나 잠시 외도를 하니 기분이 은근 좋았다. 물론 지금은 다시 한 침대를 사용하고 있지만 ^^; 아무래도 아직 신혼인데 각방을 쓰는 건 이상하다는 생각이 크기 때문이다.

 

각방예찬은 수십쌍의 커플들의 실제 사례를 들어 여러 유형의 각방 예찬과 한방 예찬을 들려준다. 책 제목이 각방을 선동하는 것 같지만 사람의 유형은 저마다 다르므로 홀로 잠들지 못하고 꼭 상대방이 옆에 있어야 안심하고 잠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래서 침대가 갖는 의미를 무궁무진하게 알려주고 싱글과 커플의 침대 차이점도 말해준다. 싱글에게 침대는 안락함인 동시에 외로움을 일깨우는 공간이라면, 커플에게 침대는 사랑의 유희 장소이자 다투거나 이별했을 땐 더없이 서늘한 공간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머무르는 침대는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각방예찬에서는 다른 예보다는 부부 관계에서 더 많은 시선을 보낸다. 언제부터 부부는 한 침대에서 자야 했는지, 왜 우리는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도 배우자에게 선뜻 각방을 쓰자고 말하지 못하는지, 실제 각방을 쓰면 참 좋다고 느끼는데도 이 자유로움을 포기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역사부터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며, 깊고 다양하게 알려준다.

 

사실 우리 부부는 아직 결혼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아이도 없어서 각방을 꼭 써야한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지만, 가끔 내 멋대로 침대 구석구석에 내 몸을 맞춰 자보고 싶은 때가 있다. 인간에게 식욕보다 중요한건 수면욕으로 잠이 충분히 충족되지 않으면 하루가 매우 피곤하므로 짧더라도 질좋은 수면을 취하고 싶은게 당연하다. 그래서 나는 가끔 각방을 써보는 건 어떨까 생각을 해본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부부 모두에게 기분 좋은 잠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도 있기 때문이지만 실제로 남편에게 말을 해본 적은 없다. 왠지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고, 반대로 상대방이 나에게 그런 말을 했더라도 의아한 생각이 들 것 같기 때문이었다. 아마 우리 부부에게  당분간 각방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늙고 자식이 모두 독립해서 방이 남는다면? 글쎄, 두고볼일이지.

 

각방예찬 책에서도 각방을 쓰는 부부는 자녀를 독립시킨 50대 부부들이 많았다. 남편의 코골이, 맞지 않는 수면리듬, 개인의 취미 활동(잠자기 전의 독서, 휴대폰 사용 등)의 다양한 이유로 함께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의무를 깨버린 것이다.

 

"남편은 일흔둘이고 저는 예순이죠. 25년 산 끝에야 침대를 따로 쓰기 시작했고, 6년전부터는 각방을 써요. 각자 더 편하게 자려고요."

사실 각방을 쓰면 제일 걱정되는 건 부부간의 애정도일 것이다. 스킨쉽이 적어지는 건 아닌지, 은밀한 대화가 없어지진 않을지 등 서로의 애정이 식지 않을까 고민스럽지만 실제 각방을 쓰는 사람들은 오히려 각자의 침실을 은밀한 공간으로 인식하여 새로운 기분을 느낀다고 털어 놨다. 자연스레 사랑의 감정은 더 올라가거나 그대로 유지되다고 말하면서.

"인터뷰에 응한 모든 이가 각방을 써도 부부간의 애정이 약해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한마디로, 각자 편하게 자게 된 이후로는 정말 살맛 나요! 불평하며 깨는 일도 더는 없고요. 저녁에 각자 자기 침대로 들어가기 전에 짤막한 애정 어린 휴식 시간도 더더욱 즐기죠."(파니) "그런다고 해서 우리 사랑이 방해받는 일은 없어요. 오히려 자기 침대로 서로를 초대하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카트린) "정말 좋죠.! 둘다 밤을 잘 보낼 수 있고 저녁 또는 아침에 서로 연애하듯이 만날 때면 더 행복해요."(로제르)"

그러나 각방을 쓴다고 배우자 모두 행복하거나 편한 것은 아니다. 남편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자는데 갑자기 아내가 '당신의 코골이 때문에 난 늘 잘 수가 없어'라고 말한다면 남편 입장에서는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 맞은 것 같을 것이다. 자기는 늘 잘 잤으니까. 그것도 푹. 그래서 각방을 쓰자고 하는 아내를 이해할 수 없고 오히려 배신감까지도 느낄 수 있다. (상대방이 날 싫어하게 된건가? 하는 의심이 가장 먼저 든다) 그래서 부부간의 각방 문제는 아주 조심스럽고 깊은 대화를 통해 오랫동안 다뤄져야 하는데,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일은 매우 어렵고,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일도 복잡하다. 하지만 부부는 결국 '함께'이면서 '혼자'다. 궁극적으로 제일 행복해야 할 관계가 그 둘이고 편안한 믿음이 쌓여야 하는 것이다. 집집마다 모양이 다르듯, 부부 방마다 속사정이 있다. 그러므로 부부이기 때문에 '밤의 공유'가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져야 하는게 당연하다. 그래야 앞으로 부부 관계가 더욱 건강해 질 수 있을테니까.

그래서인지. 각방예찬이라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 속엔 이 질문만 그려졌다. "앞으로 우리 부부는, 얼만큼의 거리를 갖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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