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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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 36세 노처녀 후루쿠라.

어릴 때부터 좀 독특한 아이였기도 하다. 싸움을 말리기 위해 싸우는 두 친구에게 삽을 휘두루는 주인공은 악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빨리 상황을 종료시키기 위한 최선의 행동이었다. 이러다 보니 부모님과 여동생은 평범하지 않은 후루쿠라가 늘 걱정이었고, 후루쿠라는 이런 걱정 속에서 튀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리라는 다짐을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보단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선택해 첫 사회생활을 하며, 정해진 매뉴얼만 있으면 겉보기엔 평범한 점원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안심한다. 시즌에 맞도록 상품을 진열하고, 바코드에 찍힌 액수를 계산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굴러가는 편의점 안 세상이 주인공에겐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공간이다. 후루쿠라는 이렇게 질서 정연하고 정해진 규칙이 존재하는 편의점에서 진정으로 다시 태어난다. 점원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내면 모두들 자신을 '평범한 사람'으로 보기 때문이다.

 

"왜 편의점이 아니면 안 되는지, 평범한 직장에 취직하면 왜 안 되는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완벽한 매뉴얼이 있어서 '점원'이 될 수 있어도, 매뉴얼 밖에서는 어떻게 하면 보통 인간이 될 수 있는지, 여전히 모르는 채였다."

"아침이 되면 또 나는 점원이 되어 세계의 톱니바퀴가 될 수 있다. 그것만이 나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편의점 점원이 된 이후로는 부모님도 자신에 대해 좀 안심하는 눈치고, 고향 친구들과의 교류에서도 적절한 연기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후루쿠라에게 편의점 점원이란 버거운 현실 세계를 가까스로 벗어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가면 같은 것이었다.

어느 날 편의점에 이상한 아르바이트생이 들어온다. 늘 입에 불평불만을 달고 살고, 편의점에서 일하는 직원을 모두 얕잡아 보는 시라하. 이 세계에 대한 불만을 후루쿠라에게 쏟는다.

 

 

"그래서 깨달았어요. 이 세상은 석기시대와 다를 게 없다는 걸. 무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은 삭제되어 갑니다. 사냥을 하지 않는 남자,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 현대 사회니 개인주의니 하면서 무리에 소속되려 하지 않는 인간은 간섭받고 강요당하고, 최종적으로는 무리에서 추방당해요."

여성에게 기생하며, 뒤에 숨어 그저 조용히 숨만 쉬며 살고 싶다는 시라하에게 후루쿠라는 결혼을 제안한다. 갑자기 웬 뜬금없는 소리냐 하겠지만 후루쿠라는 단지 물리적인 계약 결혼을 말한 것이다. 이 점에서 의외로 자신과 맞지 않은 세상과 타협하는 인물은 그나마 주인공이지 않을까 싶은데, 사회에서 두 남녀가 결혼을 했다고 속이면, 자연스럽게 '아, 이들은 문제없는 평범한 사람이구나'를 어필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 같다. 그녀는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자신이 평범하게 연애하고 섹스하는 36세 여성으로 연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야 그렇겠죠. 처녀인 채로 중고가 된 여자가 지긋한 나이에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 것보다는 남자와 동거라도 해주는 편이 훨씬 정상적인 거라고, 여동생도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친구들에게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다 말한 뒤) "다들 내가 비로소 진정한 '한패'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쪽에 잘 왔어, 하고 모두 나를 환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얼떨결에 후루쿠라가 사하라와 사귀고 있다는 말이 편의점에서 돌자 다들 후루쿠라에게 점원 이상의 관심을 갖는다. 언제 호감을 가지게 됐는지,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는지,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든지 등의 개인적인 정보가 마구 흐르게 된 것이다. 이에 후루쿠라는 더 이상 편의점 점원이 아닌 여성, 보통 사람으로서의 기대를 받게 되고, 이것에 대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다. 그 전의 직원끼리 대화는 일적인 이야기, 간단한 날씨 이야기에 국한되어 어느 정도 컨트롤이 가능하고 흉내내기도 쉬웠는데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 오니 후루쿠라는 자신이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가게의 '소리'에 잡음이 섞이게 되었다. 모두 같은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두 주머니에서 제각기 다른 악기를 꺼내 연주를 시작한 듯한 불쾌한 불협화음이었다."

 

"손님들만은 변함없이 가게에 오고, '점원'으로서의 나를 필요로 해준다. 나와 같은 세포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모두 차츰 '무리의 수컷과 암컷'이 되어가고 있는 불쾌함 속에서 손님들만은 나를 계속 점원으로 있게 해주었다."

 

보통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이 세상에서 후루쿠라는 편의점 점원으로 계속 생존할 수 있을까?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다 보면 '아, 결국 그렇게 되는구나'라고 알게 되는데 좀 씁쓸하면서도 다행이다 싶었다. 웬지 그런 결말이 후루쿠라에게 제일 잘 어울린달까.

 

우리는 때에 따라 변화를 강요받는다. 결혼한 여자는 아이를 낳아야 하는 정해진 순리가 있는 것처럼, 결혼한 남자는 당연히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약속이나 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의미 없는 시선과 굴레들에 묶여 산다.  마치 편의점에 정해 놓은 매뉴얼같이. 그래서 이 세계가 마치 편의점처럼 보이는 까닭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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