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게 읽은 책.제목만으로도 궁금증을 일으킨 책.여자의 성별만으로 차별이 비일비재하게 존재하던 시대에, 여성 작가들은 어떻게, 어디서, 글을 썼을까?
내가 모르는 작가도 많았지만 그런 것을 떠나, 그녀들의 서재를 훔쳐보는 일이 더욱 흥미로웠다.
목차만 봐도 대략 이야기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작가들이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지, 어떤 이유로 글을 쓰는지 알 수 있는 제목들.
아무래도 내 눈길을 이끈 건 '식탁 위에서 지어진 시' 부분이다. 결혼과 육아를 동시에 담당하는 여성 작가는 쉽게 부엌을 떠날 수 없었을 테고, 그로 인해 식탁만이 자신의 공간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튼튼한 나무로 만들어진 커다란 책상에 앉아 우아하게 글을 쓰는 건 남성 작가들의 몫이었을 그 시대를. 여성 작가만의 특유한 섬세함과 생활력으로 견뎌온 것은 아닐지.
나의 책상에서 맘껏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제한적 공간을 뚫고 자유롭게 창작을 펼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도 글을 끄적이게 되었다. 블로그에서도 일상의 기록을 남기긴 하지만,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하기엔 다른 곳이 필요했다. 결혼 생활의 위기, 개인의 우울함, 이기적인 사회 등에 대한 일기 같은 글을 적고 나면, 대나무 숲에서 소리를 지른 듯 시원함을 맛보곤 했다. 비록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글을 쓰지는 않지만, 글이 갖고 있는 치유력을 알기에 나만의 책상이 있다는 행복을 충분히 공감한다.
집에서도 단정한 옷차림과 깨끗한 화장을 하고 경건하게 글을 쓰는 작가들. 엄격한 자기만의 규율, 혹은 자유분방한 행동으로 저마다 글감의 소재를 찾고 이야기를 꿰어 나간다. 나는 특이하게 자신에게 엄격한 작가들에게 끌린다. 내가 그렇지 못 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
아침엔 아이들과 남편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새벽 조용한 시간에 글을 쓴다는 몇몇의 여성 작가들의 모습은 닮고 싶기도, 존경스럽기도 하다. 절제된 상황에서도 자신의 창작을 위해 노력하는 태도에서 의지를 굽히지 않고 꿋꿋하게 작가로서의 직업을 유지하고자 하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넓은 책상에 흐트러진 서류들, 타자기, 한 손에 든 담배까지 작가의 아우라를 만드는 모든 요소가 사진 한 컷에 담겨 있다. 안락한 방, 적당히 시끄러운 공공장소, 어두운 거실 등 자신에게 잘 맞는 곳에서 자신만의 싸움을 이겨내며 세상을 담을 수 있는 문장을 만들었던 작가들을 생각하면 신비스럽기도, 멀리서 응원을 보내게도 된다. 부디 풍부한 언어 세계를 위해 좀 더 자신의 공간을 지켜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