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정지아 외 지음, 이제창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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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누구에게도 공감받을 수 없을 종류의 눈물이 차오르는 날도 있었다.

나는 내 눈물의 방향을 정할 수 없어 가끔은 화가 났고 대개는 고독했다.



가끔 책의 얼굴과 제목이 심각하게 잘 들어맞을 때, 나는 작가도 아니고 편집자도 아니면서 희열을 느낀다.


세상의 모든 책이 무수한 고민과 여러 타진 끝에 나온 결과물인건 당연하겠만 그 중에서 독자에게 첫인상을 남길 표지와 제목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책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방황하는 소설은 처음 물성으로 손에 잡힌 걸 보자마자 딱 알 수 있었다.

심상치 않은 이야기가 있겠구나. 물론 작가진을 보더라도 그 믿음은 타당한 근거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밝고 난해한 이야기보단 우울하고 난해한 이야기에 몰입이 훨씬 잘 된다. 살면서 누구나 경험하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과 우울한 감정을 글로 읽었을 때 우리는 희열을 느끼고 더 깊은 감정의 땅으로 파고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이번 미디어 창비에서 나온 방황하는 소설은 그런 의미에서 추천되는 소설이다.


총 7명의 작가의 글로 엮었다. 모두 다 아는 작가도 있고 나만 모르는 작가도 있고 우리 모두 몰랐던 작가도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작가의 타이틀보다 그들이 내놓은 이야기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견디고 있는 세계는 때론 낯설고 그 지점에서 만나는 여러 갈래의 방향은 방황하는 자들의 것이 된다.


요즘애들(박상영)

이 책에서 가장 많이 공감하며 읽었던 챕터다. 단어도 그 핫하다는 '요즘애들'

이제 나는 조직에서 저런 요즘애들을 단속하는 자리에 있고 나이 또한 예전애들에 속하지만 나도 한 때는 누군가의 '요즘애들'로 불리면서 사회 초년생을 거쳤던 시절이 있었기에 이 내용에 크게 몰입했던 것 같다.


남준은 뉴스 앵커가 된 신입기자로 일하다가 우연히 예전 첫 직장에서 함께 근무했던 '은채'를 만났다. 스물 여섯 살에 잡지사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남준은 은채와 함께 드립커피를 내리고 고목나무에 물을 주는 업무를 하며 그녀와 가까워졌다. 그러나 문제는 사수의 부당한 업무지시와 알 수 없는 태도로 남준과 은채의 사회생활이 힘들어지고 결국 그 상황을 버티지 못한 남준은 퇴사를 하게 되었는데..


"황은채와 나는 인턴 시절 팔십만 원의 월급을 받으며 매일 아홉시 반부터 이르면 저녁 여덟 시, 늦으면 열한 시까지 일했다. 한 달에 한두 번씩은 무조건 밤을 새워 마감을 했다. 점심과 저녁 식대가 따로 나오지 않아 식비나 출퇴근 교통비를 제하면 남는 돈이 없었지만 괜챃았다. 이 시기를 버티고 나면 더 나은 삶이 펼쳐지게 될 거라는 희망이 있었으니까. 방황하는 소설-요즘애들(박상영)



"사수 배서정의 디렉션은 일관성이 없었다. 어떤 날은 인터넷 게시판에나 적합할 만큼 신조어를 많이 쓰는 발랄한 무드를 요구하는가 하면, 가벼운 톤으로 기사를 써 가면 문장에 중량감이 떨어지고 수식이 지나치게 많다고 평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어김없이 매거진C의 성격과 잘 맞지 않는다며 다시 써 오라고 지시했다. 아무리 과월호를 뒤져보고 선배들이 쓴 기사를 외우듯 읽어봐도 매거진 c다운 게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방황하는 소설-요즘애들(박상영)



우리는 모든 처음의 시기에 필연적으로 방황을 한다.

첫직장, 첫부모, 첫키스(..는 아닌가???)

여하튼 특히 학생의 신분을 떼고 처음 돈을 받는 프로의 세계, 사회생활로 들어오면 좋아하는 직업을 선택했든, 돈을 봤든, 되는대로 들어왔든간에 방황은 디폴트 값이다.

"지금 이 일이 나랑 맞나?" "이렇게 하는건가?"


업무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돌발적으로 이뤄지는 사회조직 언어를 처음 배우면서 부딪치고 깨지는 순간이 오고야 마는 것인데 그 시간을 지나고 있는 청춘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빛나고 반갑다. 그런 의미에서 남준과 은채의 시간은 가장 어두운 시기에 낮게 떠 있는 별같은 이야기였다.



월계동 옥주(김은희)

이 소설은 내가 아는 동네, 월계동이 나와서 관심이 일었고 옥주의 방황에 눈길이 갔다. '방황'이란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다른 말을 찾아본다면 '관계'가 떠오를 정도로 우리가 그토록 많은 낮과 밤에 방황하는 이유는 관계의 부재 때문일 것이다.


'옥주'는 부모의 이혼으로 가족들과 흩어지고 연인과도 헤어진뒤 중국 유학을 떠났다. 낯선 곳에서 그녀는 어떻게든 탄탄한 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 사람들과 어울리려 노력했고 우연히 만난 중국인 '예후이'와 친구가 되고 또다른 친구들과 옥주가 예후이에게 중국어 과외를 받게 되면서 함께 어울리게 된다. 그러던 중 여름 방학에 예후이의 고향집에 다같이 여행가게 되었는데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들을 옥주는 지켜보고 그들과의 관계 또한 무너지게 되면서 다시 한번 실망하지만 그 시간은 옥주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옥주는 여행하면서 많은 것들을 애도했다. 이제 식구들이 월계동에 다 같이 모일 날은 없고 자신의 스무 살 시절과 관련된 많은 이들도 떠나 버렸다는 것을. 읽어버린 사람들을 다른 사람으로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비로소 상실은 견딜 만해졌다.

방황하는 소설-월계동 옥주(김금희)




예전에 누군가 '방황하는 청춘'은 아름답다고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옛날의 일일뿐, 흔들리는 청춘은 더 단단해지지 못하고 바람에 쉽게 날아가는 형상이 되어버린 꼴이다. 누구는 나약하다고 말했고 또 다른 누구는 사회가 이렇게 만들어놨다고 하지만 정작 흔들리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방황' 속에서 삶의 방향을 자주 맞춘다.


깨진 유리파편처럼 이리저리 튀어오르는 감정 속에 방황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결코 나쁘지 않은 건 이런 이유에서다. 각자의 세계에서 힘껏 고독하다 보면 방황과 상실에서 차오르는 알 수 없는 종류의 희망을 마주할 수 있다.


세상은 온통 뿌옇게 보였다. 누구도 그녀에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 주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막연함을 느껴다. 막연한 두려움, 막연한 슬픔, 막연한 외로움,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 시간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길을 돌고 돌아 집으로 갔다. 그렇게라도 시간을 버리고 싶었다. 방황하는 소설-파종(최은영)



새해에 방황하는 소설을 읽어서 더 좋았다.

모든 사람이 희망에 대고 저마다의 소원을 비는 시간이 있다면 반대로 모든 희망을 놓고 세계 밖으로 숨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후자의 사람들과 함께 여전히 남아 있는 혼란스러운 감정 안으로 파고들며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삶을 시간을 걷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방황하는 소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던 각자의 슬픔을 이 책과 함께 나눠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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