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나, 마들렌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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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8개의 단편으로 이뤄진 소설집. 나, 나, 마들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캐릭터들이지만 그들이 맞닥뜨리는 상황과 그때 느끼는 감정과 선택하는 순간들은 결국 우리의 이야기다.


한 편의 이야기마다 결코 예측할 수 없는 전개들로 흡입력이 뛰어나고 책을 덮고서는 무엇 하나쯤은 가슴에 남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박서련 작가가 보여온 세계에서 더욱 확장된 우리의 이야기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기도 한 세상들을 만날 수 있다.

첫 이야기를 읽는 동안 몇 번이나 앞장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읭?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 게 맞아" 하는 의구심을 안고 처음 생각했던 글과 다른 전개로 훅훅 넘어가는 <오직 운전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좀비가 출현한 시대에서 좀비보다 인간을 더 두려워하는 화자가 운전대를 잡고 도망치는 이야기다. 책을 읽으면서 "역시 도망가려면 운전을 할 줄 알아야 하는가"에 쓸데없는 생각을 더하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감염자보다 비감염자에게서 더 다양한 위협을 느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인간이란 결국 좀비보다 못한 것들이란 결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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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로의 변성기>는 젤로의 목소리를 연기하는 성우 오선재가 픽업 라디오스타로 데뷔한 성우돌로 인기를 얻고 있는 후배 이희강에게 묘한 감정을 품으면서 생기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챕터이고 박서련 작가의 상상력의 또 다른 부분을 발견한 곳이기도 하다. 젤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열여덟 살의 소년 악마이기 때문에 50대의 한국 여성이 더빙을 맡는다는 게 쉬이 상상은 안 가지만 혹여 나이가 들면서 목소리가 변할까 싶어 온수에 희석한 석류즙을 마시며 나름 관리하는 오선재의 노력이 뜻하지 않은 일로 변성기를 맞는다는 일이 너무 신선하고 독특해서 좋았다. 아마 이 챕터의 내용은 아래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이 요약될 것이다.

"네가 사랑하는 젤로는 너를 사랑해서 어른이 되어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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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의 경우>의 김수진은 트랜스젠더. 좀 더 입체적인 인물로 묘사하자면 엄마가 되고 싶은 여자. 다른 트렌스젠더들과는 다르게 수술비도 대주고 늘 옆에서 기꺼이 예뻐하고 아껴주는 엄마가 있지만 정작 본인이 엄마가 되는 앞에서 엄마에게 "그거 얼마래니?"라는 물음을 받고 슬퍼서 화내는 여자.

여기서 그것은 김수진 몸에 인공 자궁을 만들고 인공임신을 하는 프로젝트로 이 이야기 또한 박서련 작가의 제대로 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챕터였다.

엄마가 되고 싶은 트랜지스터라니. 과연 이 여자는 엄마가 무사히 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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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하던 소설가의 수업에서 만난 애인 마들렌. 그런 애인을 성추행한 소설가에게 묘한 서운함과 연민을 느끼는 나. 분명 애인을 사랑하지만 소설가에게 느껴지는 이상한 감정으로 '나'는 결국 둘로 쪼개지는 상황까지 만들어진다. 이건 재치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은 건 당연한데 그런 내가 물리적으로 몇 개씩 쪼개져 애인의 재판장에 같이 가는 내가 있고, 소설가를 동경으로 바라보는 내가 있다. 마치 마음을 사과처럼 둘로 쪼개는 것처럼 분열된 내가 있다면. 과연 진짜 나는 누구인가.


이 리뷰에 담지 못한 <한나와 클레어> <세네갈식 부고> <마치 당신 같은 신> 또한 다른 독자들에게는 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신선함을 느끼는 지점은 각기 다르고 그 발화 온도도 엄청난 차이를 보일 것이다. 요 근래 재밌는 이야기꾼을 찾아 여름을 보내고 있는 독자들이 있다면 이 나, 나, 마들렌을 적극 추천한다. 왠지 봄, 가을, 겨울보다는 지금 이 계절에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어 놓고 소파에 누워 한 장씩 읽으면 박서련 작가가 차려놓은 세계로 금방 빠져들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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