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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와 파도 -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우수상 수상작 ㅣ 창비교육 성장소설 8
강석희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3월
평점 :
《꼬리와 파도》를 읽는 내내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보다야 덜하지만 분명 존재했던 이상한 소문들과 어른스럽지 않았던 선생들.
그런 시대에서 여학생들은 나름대로 몸 처신과 소문에 대해 대처해야 했고, 평범한 남학생들은 약육강식의 세계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학교는 공부하고 사회성을 기르는 교육의 장이었지만 정작 그 속에 있는 학생들에겐 더없이 무섭고 서늘한 벗어날 수 없는 세계였을 뿐이다.
프롤로그부터 눈을 떼지 못하고 이야기에 흡입되면서 읽었다. 온라인 수업에서 선생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취했던 제스처가 페미니즘의 행동이 되어 남학생들에게 이유 모를 질타를 받기 시작하고 그런 무서움에 놀라 아이들이 무경 선생님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이야기는 과거로부터 시작되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우리가 겪어왔을 혹은 방조한 채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무경과 지선은 친한 친구다. J 여자중학교에서 함께 축구를 하면서 호흡을 맞추고 서로 노력하고 격려하며 함께 커나갈 자신들의 미래를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J 중학교 축구부원들이 합숙하는 곳에 합류했고 한 남학생이 지선에게 몹쓸 짓을 하려다 J 여자중학교 축구부 코치 전근세에게 발각된다.
지선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라며 달래주던 전근세 코치 덕에 지선은 무성했던 소문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를 너무 믿었던 탓인지 전근세 코치에게 당한 추행에 의해 더 깊은 나락으로 빠지고 만다. 무경은 이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지선을 설득해 전근세 코치를 벌주려 했지만 우리가 예상하는 바와 같이 어쩐지 여학생들에게 이상한 프레임이 씌여지고 소문에 소문이 꼬리를 물면서 남자들에게 가해진 벌은 사임이었고 축구부 와해였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를 왜곡된 말들이 유령처럼 부유했다. 전근세는 건강상의 문제로 사임 의사를 밝혔고 학교는 서둘러 받아들였다. 그 사이 안창현과 관련된 이야기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말들이 만드는 파도는 멈출 줄 몰랐다. 무경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고 지선은 더 다쳤다. 무경과 지선은 습관처럼 자책을 했다. 믿지 말걸, 그러지 말걸, 하지 말걸, 가만히 있을걸. 파도는 해일이 되어 두 사람을 덮쳤다.(p63-4)
무경과 지선의 에피소드뿐 아니라 예찬과 종렬의 이야기, 황동수와 서연의 이야기, 현정과 미란의 이야기는 디테일은 다르지만 결은 비슷한 상황에서 그들의 감정이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어떻게 선생이란 사람들이 그토록 몹쓸 짓을 제자에게 할 수 있는지, 가스라이팅을 아주 자연스럽게 어른이랑 명목으로 어린 제자들에게 서슴없이 해왔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험을 비춰봐도 그런 선생들은 그때도 있었다.
시대는 바뀌었는데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꼬리와 파도》의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상황이 바뀌지 않을지언정 사람은 변한다. 작은 균열과 틈 사이로 연대가 생기고 공감이 늘며 서로 지켜주려는 용기가 커진다.
결국 혼자의 길을 걸어왔지만 때로는 옆에서 기다리고 또 다른 길목에서 만나 함께 나누었던 이들의 이야기가 혹여 지금 홀로 어떤 문제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을 친구들에게 위로가 되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