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마음 -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 이야기
이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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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고 이렇게 반가웠던 적이 있었는가.
<사는 마음>이라니..!
도대체 뭘 산다는거지?
인생을 산다는 건가? 물건을 사는 게 맞나??

부제목 나를 돌보는 반려 물건 이야기의 카피 한 줄이 내 마음을 확 이끌었다.
요즘 소비욕 폭발하고 있는 시점에서 미니멀라이프는 다음 생애나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던 때에 딱 맞는 책 선물 :)

<사는 마음>의 이다희 작가님은 아버지의 권유로 번역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오래도록 곁에 두고 사랑한 물건에는 추억이라는 이름의 영혼이 깃든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사고 싶은 물건 모두를 소유하자고 합리화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곁에 있는 물건들이 나를 어떻게 지켜주고 지탱해주는지 알 수 있는 에세이다.

이 책은 목차만 봐도 앞으로 어떤 물건들의 이야기를 만나게 될지 알 수 있다.

책장, 바이올린, 웨딩드레스, 찻잔 , 맥, 의자, 그릇, 가방 등등 단어만 읽어도 솔깃한 물건들이 많고 실제 책을 읽으면 '오~ 이런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니?' 하고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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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업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이 식탁은 자연스럽게 업무용 책상이 되었다. 혼자서 쓰기에 너무 크지만 그래서 좋다. 뭐랄까, 사치스럽다. 마치 혼자서 킹사이즈 침대에 자는 기분이다. 비워 둔 공간에서 느껴지는 호화로운 분위기가 있다. 책상에 앉으면 기분이 좋다. 책상에 앉아 있는 근무 시간의 상당 부분은 해외 클라이언트를 위한 업무에 할애한다. 이 일은 때로 흥미롭지만 대체로 반복적이고 따분하다. 하지만 손때가 묻어 더욱 사랑스러워진 책상 덕분에 견딜만 하다.(p85)


책상은 내게도 참 중요한 공간이다. 물건이 아니라 공간으로서 존재하는 이유는 이곳에서 나의 일과 창작물과 자유 혹은 외로움과 쓸쓸함이 모두 있기 때문이다. 책상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은 나를 경제적으로 또 감성적으로 돌보기 때문에 작가처럼 큰 책상을 사치스러운 마음으로 즐겁게 쓴다면 행복할 것 같다. 사치는 지루한 일상을 반짝이게 만드는 잠깐의 일탈이지만 이 잠깐이 며칠의 지루한 날들을 견디게 하는 큰 힘이 되기도 하니까.
이런 점에서 큰 책상의 아름다움은 쓸모의 효용을 넘어 그 존재만으로 나를 돌본다.

작가분의 마음과 추억이 깃든 그래서 오래 오래 곁에 머물고 싶은 물건들 중에서 '집'은 끝판왕이 아닐까?

직접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작가님 부부는 본인들이 원하는 바를 명확히 알았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좋은 건축설계소를 만났다.

이 챕터를 읽는 동안은 내 마음도 일렁일렁하면서 좋은 집에 대한 기대가 부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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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안에서 주로 무얼 할 것인지 적었다. 조용한 카페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번역 작업을 할 수 있고, 글빚에 허덕이는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서 작업할 수 있는 카페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우리가 종종 작은 연주회를 열 수 있어야 한다고도 적었다. (중략) 그리고 무엇보다 그 문서에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담으려고 했다.(p167)


위의 문장에서 제일 마음이 울컥했다. 저런 마음으로 집을 짓는거구나. '함부로 집을 지어서는 안 되는 거구나'. 집은 우리 자체이며, 우리의 삶과 영혼을 담는 지구에서 가장 안락하고 편한 장소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작가님이 어떤 마음으로 집을 짓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고, 실제 집을 다 짓고 나서 그곳을 바라볼 때 느끼는 행복감과 마치 예술품처럼 느껴지는 사명감을 지켜내고자 집의 곳곳을 관리하고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삶도 응원하게 됐다.

자본주의 시대에 소비없는 생활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고 해서 물건을 안 사기란 매우 어렵다. 인생을 산다는 게 반드시 의식주만으로 이뤄지는 건 아니고 마음이 기대고 용기를 얻고 힘을 내는데 무용한 것들이 유용한 경우는 너무 많으니까..

그래서 아마 <사는 마음>을 읽고 나면 내 옆에 있는 물건이 꽤 다정해 보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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