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화로운 삶
헬렌 니어링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보리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은 독자에게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을 피력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찮은 책이라고 느낄수도 있고, 단순한 수필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글쓴이의 꼼꼼함은 여기저기서 베어나온다. 무엇에 대한 꼼꼼함이냐고? 봄에는 무엇을 먹었고, 그 양식들을 보관하는 방법과 그것들을 어떤 조리법으로 먹는 것이 가장 즐거웠는지를 말한다. 그리고 밭에서 일할 때의 자세와 연장 다루는 법, 이웃과 농기구를 서로 빌려가면서 밭을 경작했다는 얘기까지 세세히 적어놓았다. 나는 이 책을 책방에서 골랐을 때 요즘 들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답답함과 함께 그것을 해소해보고자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이 글의 저자 둘은 그것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주리라는 믿음으로 이 책을 고른 것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이 글은 마치 내가 귀농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듯 세세한 방법들을 일러준다. 먹을거리 장만하기, 집짓기,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기, 그리고 시골에서 살아가는 어려움 등 읽으면서 '이런 책이었구나' 라는 약간의 기막힘과 놀라움을 자아내는 책이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점점 마음이 따스해지고 삶에 대한 희망이 생기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도시에서 항상 무언가를 소비하며 살아가는 우리도 가치있는 것들을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믿음을 주는 이 책은 지금 나에겐 너무나도 소중하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생산활동이 때로는 성서러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내 삶은 시간을 조금씩 파먹으며 닳아간다. 그리고 그 시간을 바침으로 나는 하찮은 물건들을 생산한다. 그것들은 값싼 감상일수도 있고, 한 번 쓰고는 싫증나서 버려질 물건 일수도 있다. 그리고 노년에 가선 나를 배신할 뺀지르르한 내 자식들일 수도 있다. 도시에서의 내 삶이, 문명 사회에서의 내 삶이 결국은 그렇게 될 거란 걸 알았기에 나는 그렇게 뭔가에 목말라 하지 않았을까?
헬렌과 스코트의 겸손하고 성실한 삶에 대한 자세는 이 책 어디에서나 찾을 수가 있다. 그들은 그들의 실험적인 삶이 절대로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들이 일구며 살았던 버몬트 숲을 20년이 흐른 후 떠난다. 그곳에 관광 단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들의 힘은 너무도 미약하여, 그들이 그 숲을 떠난 후 다른 곳에 정착한 지 50년이 흘러 한국의 서점에도 그들의 책을 읽어볼 수 있을 정도다. 70년이란 세월동안 세계는 더욱더 그들로부터 멀어져 갔다. 하지만 그렇게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그들의 삶이 진정한 조화로운 삶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