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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막심 고리키 지음, 최윤락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대학 1학년 때 선배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5년 후 다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당시 내가 어떤 느낌을 받고 무엇을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세월이 조금은 지나서 다시 접하게 된 이 소설은 내게 당혹감을 안겨 주었다. 이렇게 재미있고 감동적인 책을 왜 나는 도서목록에 넣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나는 머릿속에 도서목록을 만들어 놓고 있는데 거기엔 나의 애장품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예를 들어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라든지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김승옥의 '환상수첩' 같은 것들이 쭈욱 적혀 있다.)
비록 첫 번째엔 이 소설의 진수를 맛보진 못했지만 두 번째 마저 놓칠 수 없겠다는 마음으로 아주 천천히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너무나도 많은 생각이 내 머릿속을 교차하고 들쑤셔 놓았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대목에선 난 무엇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나? 나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에게 가치관이라는 것이 있는가? 주장이 아닌 일관된 가치관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나에게 질타하는 대목도 있었다. 너, 너무 인생을 쉽고 안락하게 살아가는 거 아냐? 타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냐? 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겪어야할 고통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건데? 하고 무섭도록 나 자신을 질타하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20세기초기에 전 세계에 불어닥친 사회주의 혁명은 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 감성을 가지고 있는 나에겐 너무 도식적이고도 현실감 없는 교과서의 한 페이지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학1학년 때와는 달리 지금은 노동을 해야만 먹고 살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고통과 고달픔을 느껴본 나이기에 당시 노동자들이 감수했어야할 모욕감과 박탈감이 내 가슴을 메어지게 하고 목구멍 어딘가에 불덩이가 솟구쳐 오르게 했다. 고리끼는 '어머니'를 마치 에이젠쉬떼인의 '전함포템킨'처럼 창작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대학 1학년 때 보았는데 나에게는' 어머니'와 '전함포템킨'을 구별할 능력이 없었다. 고리끼는 러시아 민중의 비참한 밑바닥 인생을 함께 겪으며 이들이 누려야할 대가가 그들의 손에 쥐어지는 정당한 사회를 희망한다. 그는 고통에 허덕이며 주저앉은 민중들이 일어서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다. 그렇기 때문에 익명으로 살아가던 어머니 닐로브나가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건들과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이 자명하게 보일 때 위대한 인격체로 부활하는 것은 바로 고리끼의 바램이자 가치관이다.
그의 소설 문장하나 하나에는 쓴맛이 배어난다. 그것은 무미건조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자극적이지도 않다. 쓴맛이 난다. 글자들이 살아나 어느새 내 눈앞에는 사모바르를 들고 페치카로 걸어가는 어머니가 보인다. 그리고 달변인 안드레이가 빠벨과 얘기를 하고 있다. 어머니는 어느새 러시아의 황량한 겨울 들판을 걷고 있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 바람에 휘날리는 검은색 숄. 말라비틀어진 수목들.
역사를 정리된 사건으로 보지 말자 라고 내 자신에게 다시 한번 다짐한다. 세상 무슨 일이든 경찰서 조서처럼 일목요연하지 않다고 내 자신에게 상기시킨다. 그리고 다수가 말하는 정설이 된 주장을 너무 신봉하지 말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