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빛이 있었다
임영태 지음 / 창해 / 2000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
우리의 기억속에 유폐된 고통들을 돌아볼때 그것의 모습은 살아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만약 우리의 머릿속에 기억이라는 작고 소중한 샘물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메마른 사막과 같이 될 것이다. 기억은 현재의 내가 과거를 재구성하는 행위이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기억속에 존재하는 인물들이나 사건들은 한 없이 신비스러울수도 있고 눈물겹게 아련하기도 하고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분노스럽기도 하다. 결코 되돌아 갈 수 없는 과거 속에서 존재하는 그것들은 신기루 그 자체다. '그래 우리는 그때 사람이 아니었어. 어떻게 그런 비참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이런 독백은 과거를 벗어난 현재에나 가능한 것이다.
사람은 과거를 나름대로 정리해야지만 살아갈수 있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좁게 말하면 소설이, 넓게 말하는 모든 글과 예술이 과거에 대한 자기 정리라고 말할 수 있다.
'비디오 보는 남자'
이 소설을 읽은 후 신문에 실린 서평과 주위 사람의 소감을 들어보니 많은 의견이 어떤 영화가 생각 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좀 꼼꼼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이 전달하려는 메세지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려 한 사람이라면 이 의견에 고개를 저을 것이다.
소설은 여자, 깡패, 시인 이 세사람의 주인공의 만남이 비극적인 사건을 맞이 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어떠했고 그들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에 데해 소설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깡패가 여자를 죽이고 그녀를 사랑한 시인과 깡패는 절망하게 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러한 회상 형식 때문에 한편의 영화가 생각 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형식상의 기교밖에 그 의미가 없다. 깡패가 여자를 죽였을때 그 어떤 비감도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이 소설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세밀하게 기록된 이들 세사람의 자기 독백이다. 얼마나 치밀한지 깡패 마저도 깡패 답지 않은 독백을 한다. 아무리 보잘것 없는 사람도 자기자신에게는 솔직한 사람이 되는 법이다. 누가 감히 타인의 인생을 순탄한 삶이라고 판정내릴 수 있겠는가? 여자, 깡패, 시인은 고통 가득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닌 나는 고통받고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작가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다시 누군가를 만나 사랑할 수 있을까?'
작가 임영태는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에서 보여주던 간결하한 문체에서 변모한 모습으로 <달빛이 있었다>를 풀어간다. 단어하나하나에 정성을 가득 들여 풀벌레 소리와 달빛을 받으며 조용히 흐르는 강물과 외로운 사람들을 형상화 시킨다. 사건으로 그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즉 이들 세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외로움에 가득한 독백과 한밤 중에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존재의 증거를 찾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