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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혜린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7월
평점 :
'데미안'을 처음 읽은 건 스무 살 무렵이었다.
대학생이 된 지 얼마 안 된 시점, ‘자아’, ‘각성’, ‘운명’ 같은 단어들이 몹시 중요하고도 막연하던 시기였다.
그땐 이 책이 마치 어떤 금기를 깨뜨리는 비밀스러운 성경처럼 느껴졌다.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되는 걸까?’
‘내 안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혼란스럽고도 끌리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서른을 훌쩍 넘긴 지금 이 책을 다시 펼쳤다.
그때처럼 반짝이는 충격은 없었다. 대신, 조용하고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문장들이, 그저 흘려보냈던 장면들이, 이제는 더는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이야기 같았다.
싱클레어가 겪는 성장통은 단지 청춘의 통증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조금 일찍, 우리가 언젠가는 모두 겪게 되는 내면의 분열을 통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좋은 아이, 부모의 기대에 맞춰 사는 삶, 타인의 인정을 받는 삶…
그 모든 것들이 하나씩 부서지며, 진짜 ‘나’가 깨어나는 과정.
이제야 그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30대의 나는 더 이상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쉽게 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질문을 계속 품고 가야 하는 게 인생이라는 걸 배워가고 있다.
'데미안'은 그 여정을 너무도 정직하게 그린 책이다.
데미안이라는 인물은 더 이상 외부의 멘토가 아니다.
그는 ‘내 안의 목소리’,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지 않았던 내 모습이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데미안의 말이 오래 남았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이 문장은 더 이상 멋진 문구가 아니다.
지금의 나를 지탱해주는 어떤 명확한 선언처럼 다가왔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알을 깨며 살아간다.
때로는 고요하게, 때로는 고통스럽게.
그리고 그 깨짐 속에서, 우리는 진짜 자기 자신이 되어간다.
이 책은 더 이상 ‘성장’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다.
이제는 어떻게 나 자신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안내서다.
서른을 넘긴 내가 이 책을 다시 읽으며 느낀 건,
나의 삶 역시 이 여정 속 어딘가에 있다는 확신이었다.
별점: ★★★★★ (5/5)
정체성·브랜드·리더십을 관통하는 핵심 프레임을 제시하는 책.
20대에 읽으면 ‘방황’의 언어로 와 닿고, 30대에 다시 읽으면 ‘리더십’의 구조로 해석되는 책.